▲ 택배연대노조가 최근 숨진 택배노동자 고(故) 김원종씨를 기리고, CJ대한통운을 규탄하기 위해 17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행진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사진 : 뉴시스]
▲ 택배연대노조가 최근 숨진 택배노동자 고(故) 김원종씨를 기리고, CJ대한통운을 규탄하기 위해 17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행진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사진 : 뉴시스]

택배노동자의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CJ대한통운 40대 김원종씨를 비롯하여 불과 일주일 사이에 3명이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올 들어서만 10번째 사망사고이다. 지쳐 쓰러져 죽을 때까지 일을 한다니 채찍만 없을 뿐 고대 노예나 다름없는 참으로 잔인한 죽음이다.

문제는 이것이 예견된 사태라는 데 있다.
공짜노동, 장시간노동, 신속노동, 저임금노동, 불안정노동이라는 5중고에 코로나19로 폭증하는 배달물량을 소화하다보니 예년에 비해 사망률이 3배나 증가했다. 5만여 택배종사자들이 지금 멀쩡하다고 볼 수 없는 심각한 지경이다.
택배노동자들은 주당 71시간, 야간·초과근무가 일상화됐지만 순소득은 약 234만원 수준으로 시간대비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택배배송업무는 실제 7~8시간이나 택배업체는 거의 6시간 정도의 분류, 상‧하차 작업에 택배노동자를 공짜로 부려먹는다. 결국 하루 노동은 13~16시간으로 늘어난다. 숨진 한진택배 김씨는 하루 420개의 물량을 배달했고 새벽 4시까지 일했다고 카카오톡에 남겼다. 20년 경력의 택배기사 김원종씨는 매일 하루 14~15시간 일했다. 심할 경우 3분에 한 가구씩 배달을 해야 한다. 초보자나 배송구역이 넓은 노동자는 끼니를 거르면서 뛰어다녀도 배송을 다 마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게다가 코로나19로 배달물량은 예년 평균에 비해 30%가 늘었고, 추석명절 시기에는 50%나 폭증했다.

택배노동은 분류·상차·하차·운송·배달 작업을 진행하는데, 여기에는 하청·특수고용·단기 고용 등 온갖 비정규직이 다 몰려있다. 쿠팡에서 일하는 일용공이었던 장씨가 정규직이 되고 싶어 오후 7시부터 새벽 4시까지 야간조로 근무하면서 신속배송시간을 맞추기 위해 강도 높은 실시간 노동을 하다가 쓰러진 비극에는 바로 이러한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CJ대한통운, 한진택배, 쿠팡은 대표적인 택배물류재벌들이자 코로나사태의 최대 수혜자이다. 그런데 이들이 사죄와 책임은커녕 택배노동자의 사인을 놓고 과로사를 인정하지 않거나 모르쇠로 나오는 파렴치함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을 조작한 정황까지 나오고 있다. 당장 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고, 처벌할 것은 처벌해야 한다. 그리고 공짜노동의 원흉인 장시간 분류작업문제를 해결하고, 산재보험 적용제외신청제도 자체를 폐기하는 것은 시간을 끌 문제가 아니다.

▲ 한진택배 택배기사 김동휘 씨가 세상을 떠나기 4일 전 동료에게 보낸 SNS 메시지 [사진 : 택배연대노조]
▲ 한진택배 택배기사 김동휘 씨가 세상을 떠나기 4일 전 동료에게 보낸 SNS 메시지 [사진 : 택배연대노조]

그러나 택배물류산업이 계속 확대되는 조건에서는 보다 구조적인 특단의 대책을 내와야 한다. 마치 코로나19 중환자에게 복합집중처방을 가하듯이 택배산업과 택배노동전반에 대한 집중적 대책을 정부와 정치권이 앞장서서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30대 40대 건장한 노동자들이 쓰러지는 비극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시장적 측면에서 산업구조의 변화를 반영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법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신속하게 입법해야 한다. 
생활물류는 디지털화와 비대면 시대 국민들의 일상을 책임지는 필수산업이 되었지만, 탈법이 횡행하고 과로사가 속출해 왔다. 기존 화물운수법은 대형·중량의 기업 간 화물운송산업물류에 적용되는 법으로 소형·경량의 소화물을 배송하는 생활물류 관련조항이 아예 없거나 예외조항으로 되어 있어 사각화되어 있다. 이에 이미 20대 국회에서 발의되었으나 처리하지 못했고, 최근에는 노동조합, 정부여당, 시민단체가 입법협약식까지 맺은 만큼 택배·퀵·배달 생활물류산업의 특징을 반영하고 해당 노동자들의 보호조항을 일정하게 담은 생활물류서비스산업법을 차질없이 의결해야 한다.
 
다음으로 중대산업재해를 일으킨 기업과 대표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사용자가 노동자를 과로사하게끔 방치한 것은 중대 과실이다. 최근 잇단 창고화재사건 등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살인기업에 대한 처벌은 거의 없거나 미약한 형편이다. 제도적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통해 고의·중과실을 응징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에게 저항권을 주는 것이다.
지금 택배노동자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 응당 누려야 할 노동3권을 특수고용노동자라는 핑계로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 물류재벌들이 마음놓고 공짜노동을 시키고 과로사로 내모는 중요한 이유는 택배노동자들이 중층적 다단계 비정규직 고용구조속에서 일하고 있고 자본의 횡포에 저항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도 주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택배노동자들의 연이은 과로사에 가장 큰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은 택배노동자 자신이다. 그들이 자기문제를 풀 수 있는 손발을 묶어 놓았으니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 이건 반칙이다.
노동자들에게 권리를 주면 무슨 큰 일이 일어날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큰 일은 지금 택배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로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전태일법이라고 불리우는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권리는 마땅히 주어야 할 그들의 당연한 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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