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대목을 앞두고 더 바삐 움직여야 하는 노동자, 명절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노동자, 거리에 나와 투쟁하느라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추석을 보내는 노동자들이 있다.

“올해 추석에도 상자에 손잡이는 없었다”

대형마트는 명절을 앞두고 붐비는 곳 중 단연 1등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올해 추석에도 대형마트를 향해 외쳤다. 1년 전과 같은 목소리다. 그들은 ‘상자에 손잡이’를 설치하는데 1년이 넘게 걸리는 현실에 분노했다.

▲ 지난 23일, 서울고용노동부 앞 “상자손잡이 설치에 1년이 넘게 걸려야 합니까?” 기자회견. [사진 : 마트노조]
▲ 지난 23일, 서울고용노동부 앞 “상자손잡이 설치에 1년이 넘게 걸려야 합니까?” 기자회견. [사진 : 마트노조]

마트산업노동조합(마트노조)은 지난해 9월,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함께 5,177명의 마트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설문 결과, 무거운 박사를 들어 올리고 내리며 일하는 마트노동자 중 근골격계 질환을 의심할 수 있는 노동자가 56.3%, ‘실제 병원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는 노동자가 69.3%에 달했다. 중량물 진열작업으로 인해, 1주일 이상 근골격계 질환 증상이 지속되거나 한 달에 1회 이상 증상이 반복된다는 노동자도 85.3%나 됐다.

그래서 마트노동자들은 “무거운 상자에 손잡이를 설치하라”고 고용노동부에 요구해 왔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뜨거운 이슈 중 하나였다. 당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현재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김태년 의원의 관련 질의에 “마트노동자 근골격계 질환을 해결하기 위해 상자에 손잡이 설치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1년이 지났지만 올해 추석에도 상장에 손잡이는 없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4조는, ‘사업주는 단순반복작업 또는 인체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작업에 의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665조에 따르면, 5kg 이상의 중량물을 들어 올리는 작업을 하는 경우 해당 물품의 중량과 무게중심에 대해 안내표시를 하며, 취급하기 곤란한 물품은 손잡이를 붙이거나 갈고리, 진공빨판 등 적절한 보조도구를 활용해야 한다고 돼 있다. 만약 사업주가 이 같은 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같은 법 제67조에 따라 벌칙이 부과된다.

▲ 추석 선물세트 박스들이 마트 물류창고에 쌓여있다. 상자에 구멍은 없다. [사진 : 마트노조]
▲ 추석 선물세트 박스들이 마트 물류창고에 쌓여있다. 상자에 구멍은 없다. [사진 : 마트노조]

1년 동안 변하지 않았던 이유는 “대형마트 사업주들이 책임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마트노조는 “상자에 손잡이를 설치하는 일은 상자제조업체나, 제품을 납품하는 업체에 공정이나 비용의 문제가 발생하게 한다. 상자제조업체는 주문받은 대로 설비를 가동해 상자를 생산하며, 상품을 납품하는 쪽은 대체로 자동화 설비가 돼 있고, 마트노동자가 일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예방의무와 책임이 있지 않다”면서 “마트노동자 근골격계질환 예방 대책을 내놓아야 할 책임은 대형마트 측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형마트 사업주들은 ‘자기의 일이 아니’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대형마트 측은 무인 계산대나 고객들의 편의시설에만 투자하고 있다. 상자에 손잡이를 설치하지 않는 것은 결국 대형마트 측이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선 비용을 들이기 싫다는 의중의 반영”이라고 꼬집었다.

1년을 기다린 마트노동자들은 올해 추석에도 “내년 설 명절까지는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달라”고 고용노동부에 촉구했고, 대형마트 사용자들을 향해 “사용자로서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지 말고 상자 손잡이 설치에 나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명절에도 쉬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명절을 앞두고 떠오르는 노동자, 더 바삐 움직여야 하는 노동자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택배노동자였다. 쉴새 없이 입고되는 명절 선물 물량에,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주문 폭증까지…. 올해 추석도 비껴가지 않았다.

올해만 벌써 7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사했고, 추석을 앞두고 50%까지 증가하는 물량으로 인해 또 과로사가 우려되는 상황. 이를 막기 위해 ‘택배 분류작업 인력 투입’을 요구하며 ‘분류작업 거부’라는 특단의 조치까지 내릴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이다. 정부와 택배사의 인력 투입 계획 발표에 따라 분류작업 거부는 철회됐지만, 애초에 약속한 2000여 명 추가 투입도 아닌, 노동조합 조합원이 있는 일부 지역만 선택해 400명을 투입하는 꼼수를 부렸다.

▲ 추석을 앞두고 서울 한 시내의 물류센터에 쌓여있는 택배물량을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추석을 앞두고 서울 한 시내의 물류센터에 쌓여있는 택배물량을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수많은 귀성객을 태운 버스와 승용차가 고속도로를 통과하며 얼굴 맞대는 톨게이트 노동자들. 그들은 1년 전 정리해고돼 한창 투쟁 중이었다. 대법원판결대로 한국도로공사에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투쟁이었다.

귀성객이 몰리는 또 다른 교통수단 ‘철도’. 올해 추석, 철도 자회사 노동자들은 추석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처지다.

코레일네트웍스의 역무원은 3조 2교대 근무체계로 365일 일한다. 철도고객 상담사, 주차관리원, 운전원 등 모두 명절에도 일해야 하는 상황.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명절이 법정휴일로 지정됐지만 이들은 쉴 수가 없다. 대수송 기간, 시민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서 더 많은 인원이 일해야 하기 때문에 휴일을 반납해야 하는 경우다. 자회사 노동자들 상황은 더 서럽다.

공공운수노조는 “원청인 철도공사도 마찬가지지만 인력 배치가 적은 자회사의 경우 역무 업무에는 2인 1조 근무가 기본이 되어야 함에도, 철도공사가 용역계약 시 조당 1명으로 기준을 설정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교대제로 돌아가면서 쉴 수도 없고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추석을 앞두고, 법으로 규정된 휴무일을 ‘명절 당일’에 쉬라며 휴식을 빼앗으려는 소식도 마트노동자들에게 날아들었다. 대부분의 국민이 인지하고 있는 월 2회 대형마트 의무휴업. 지난 22일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매월 격주 일요일로 정해지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이틀 가운데 하루를 명절 당일로 대체하는 내용을 담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체인스토어협회를 필두로 마트 사용자들은 각 지방자치단체에 의무휴업일을 명절 당일로 대체하기 위한 요청을 끊임없이 해왔다. 사용자들은 “명절 시즌 매출의 10∼20% 정도가 명절 직전 마지막 주말에 나온다”면서 “올해 추석 대목을 앞두고도 의무휴업일 때문에 쉬어야 하는 상황이라 아쉽다”고 하는 등 매출 증진을 위해 의무휴업일을 바꿔 달라는 요구를 들이밀었다.

명절 당일의 마트는 고객 수도 줄고, 매출 역시 낮다. 근무 인원도 최소로 운영한다. 이날을 쉬는 날로 하고, 매출을 올려야 하는 추석 전 주말엔 일하라는 것이다. 마트노동자들은 “의무휴업을 변경하는 것은 ‘노동자 휴식권’ 보장과는 인연이 없다. 허은아 의원이 발의한 속칭 ‘명절 휴업법’은 사용자의 입장만을 반영해 마땅히 쉬어야 할 일요일에 노동자들에게 일을 시키겠다는 말과 다름없다”라고 일침했다.

▲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열차에 타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열차에 타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추석에 투쟁하는 노동자도 있다.
720명 정리해고 사태에 대해 실질 오너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여당의 책임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인 이스타항공 노동자들, 희망퇴직과 무급휴직을 강요받다 정리해고돼 투쟁 중인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 올해 말 위탁계약 종료를 앞두고 고용보장 계획을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LG헬로비전 콜센터 노동자들, 무기계약 1년 연장 합의를 무시하고 정리해고를 강행한 코레일네트웍스를 상대로 싸우는 고령의 자회사 노동자들, 특수고용노동자 고용보험법 전면 적용과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농성 중인 대리운전 노동자들, 교육당국의 불성실한 교섭행태를 규탄하고 복리후생 차별해소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농성투쟁을 준비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등.

비정규직이라 차별받고 외면받고, 쉬지도 못하는 추석, 투쟁하는 일상이 되어 버린 추석, 더 서럽게 느껴지는 추석에도 그들은 투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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