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7일 ‘민주통일운동가 고 한충석 추모의 밤’이 삼육대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한충석 서울통일의길 운영위원은 향년 56세로 최근까지 식도암으로 투병하다가 뇌출혈로 쓰러져 끝내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 민주통일운동가 한충석
▲ 민주통일운동가 한충석

고인 한충석의 친형인 한국진보연대 한충목 상임대표는 조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최근 몇 달에 한 번씩 가족 내 상을 치른 한충목 대표였다. 권낙기 선생님, 한상렬 목사님, 통일의 길, 진보연대 등 식구들이 함께했다.

▲ 추모의 밤 행사는 조원호 통일의 길 대표 사회로 진행되었다.
▲ 추모의 밤 행사는 조원호 통일의 길 대표 사회로 진행되었다.

추모식은 평소 고인의 삶대로 소박하게 진행되었다. 

강효식 민족통일애국청년회(민애청) 후원회 회장이 고인의 약력을 소개했다. 그의 약력에서 나타나듯이 그는 자주통일운동의 한복판에서 뒷살림 책임지고 궂은 일을 다해가며 숨은 일꾼으로 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충석 위원은 민플러스에도 많은 기금을 낸 초창기 창립멤버이기도 하였다. 

▲ 강효식 민애청 후원회 회장이 고 한충석 위원의 약력보고를 하고 있다.
▲ 강효식 민애청 후원회 회장이 고 한충석 위원의 약력보고를 하고 있다.
▲ 겨레사랑청년산악회 시절 한충석
▲ 겨레사랑청년산악회 시절 한충석

 

1964년 서울출생
1983년 한양대학교 관광학과 입학
1987년 민족통일애국청년회 창립회원. 이후 조직국장 역임 청년운동 복무
1990년 겨레사랑청년산악회 조직
1999-2001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재정사업단장 역임
           이후민주통일운동 단체에서 다양한 활동
2004년 (사)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창립회원
2004년 615투어대표
2005년 1만2천명 금강산가기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
2006년 서울겨레하나 운영위원 역임
2008년 한국진보연대 후원회 진보사랑 운영위원 역임
2012년 (사)통일의 길 창립회원으로 상임운영위원 역임
2013년 서울통일의길 운영위원 역임
2016년 언론협동조합담쟁이 ‘민플러스’ 창립조합원

추모식에서는 6.15미국위원회에서 보내온 조사가 낭독되었다. 

▲ 추모시를 낭송하고 있는 김병규 한국진보연대 자주통일위원장.
▲ 추모시를 낭송하고 있는 김병규 한국진보연대 자주통일위원장.

고인을 추도하는 시낭송도 이어졌다. “이름없는 꽃”이라는 추모 시구절은 한충석 위원의 생애가 앞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자주통일운동에 헌신했음을 나타내주었다.

▲ 추모발언을 하고 있는 안지중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
▲ 추모발언을 하고 있는 안지중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

안지중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의 추모발언이 이어졌다.

그는 고인은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나누기 좋아하는 그런 분”으로 기억했다. “전국연합이 한국진보연대로 확대개편된 이후 당연히 부채도 계승되어야 함에도 그것은 충석이 형이 고스란히 감당했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나서도 한국진보연대 후원회의 운영위원이 되어 물심양면으로 지원사업을 해주었다는 이야기, 615투어 대표 시기에 금강산관광이 대중화되었고 재정적으로 득이 되는 사업이었는데, 단체로 신청을 하면 수입의 절반을 돌려 주며, 고인이 “단체가 통일운동을 하는 기금으로 써야 한다”고 했던 사연들이 이어졌다.

그는 “형의 생전 모습을 영상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사진을 모았는데 많지 않았다”며, “형은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며 울먹였다.

▲ 추모발언을 하고 있는 박현구 통일의 길 운영위원
▲ 추모발언을 하고 있는 박현구 통일의 길 운영위원

함께 활동했던 박현구 통일의 길 운영위원의 추모발언이 이어졌다.

박현구 위원은 고인을 1990년 봄, 민애청 독립문 지하 모임터에서 처음 만났다. 민애청 조직국장으로, 풍물패를 만들어가는  열정적인 모습을 지켜봤다. 1992년 민애청 자매조직인 겨레사랑청년산악회를 만들어 한달에 한번씩 산에 오르며 조국의 통일을 바라는 많은 노동 청년들과  함께할 수 있는 산악회를 주도적으로 조직할 때도 옆에서 지켜보았다. 

박현구 위원은 “87년, 90년대 투쟁현장, 범민족대회를 비롯한 통일투쟁 현장 등에서 30여년간의 고인과의 추억을 상기하며, 최근까지도 남북경제협력의 미래에 대해 열정적으로 토론했던 날들을 추억하며, 고인의 뜻을 새겨 가자”고 말했다. 

▲ 추모발언을 하고 있는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
▲ 추모발언을 하고 있는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

어렵게 마이크를 잡은 권낙기 선생은 활동가가 운동을 하다보면 이런 소리 저런 소리를 듣기 마련인데, “한충석한테 안좋은 소리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고 회고하였다. 뭐 하나 자기 것을 챙기지 못하고 살다보니, 저리 먼저 간다고 애석해 했다.

한충석, 그를 추모하는 모든 사람은 한결같이 그를 이렇게 기억했다.

“아낌없이 주는 사람”

▲ 민주통일운동가 고 한충석 추모의 밤 행사
▲ 민주통일운동가 고 한충석 추모의 밤 행사
▲ 민주노통일운동가 고 한충석 추모의 밤
▲ 민주노통일운동가 고 한충석 추모의 밤

그는 9월 28일 마석 모란공원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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