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CJ대한통운 앞 차량농성하는 택배기사 권용성 씨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 한 대의 화물차량이 서 있다. 지난 2일부터다. 택배 차량이지만, 배송할 물건은 실려있지 않다.

부산 거제 4동에서 택배기사로 일하는 권용성 씨의 택배 차량이다. 코로나 시국에 온라인 주문량이 늘어 한시가 바쁠 택배기사가 부산도 아닌 서울에서 차를 정차해 놓다니. 무슨 사연일까?

▲ 2일부터 택배차량 농성을 시작한 택배기사 권용성 씨. 농성을 응원 온 노동자들의 메시지가 차량 한켠에 적혀 있다.
▲ 2일부터 택배차량 농성을 시작한 택배기사 권용성 씨. 농성을 응원 온 노동자들의 메시지가 차량 한켠에 적혀 있다.

“제가 왜 해고돼야 하죠?”… 바뀌는 해고 사유

그는 코로나 시국에 하루아침에 해고자 신세가 됐다.

CJ대한통운 거제4동 대리점 소장은 권 씨에게 “4월15일 자로 계약해지 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지난 3월12일의 일이다. 소장은 ‘실업급여 부정수급’을 해고 이유로 들어 내용증명을 보냈다. 그러나 권 씨는 해고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저는 ‘특수고용’이라 불리는 자영업 택배기사고, 택배 일을 시작하려면 계약서, 사업자등록증이 필요하고, 이게 준비돼야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입사면접을 보고 나서 바로 사번(코드)이 나왔어요. 고용노동부에선 사번을 받은 날부터 일을 한다고 해석할테니, 그 사이의 기간 동안 제가 실업급여 부정수급을 했다는 거죠….” 그래서 권 씨는 부정수급한 금액을 반납했다.

대리점과 계약서상에서도 해고까지 될 이유가 없었다. 계약서에는 ‘행정처분을 받거나 형사처벌 등을 받음으로써 정상적인 계약이행이 곤란한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지만 이에 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해고 이유가 납득가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권 씨는 3월12일 이후 해고통보의 부당함을 알리면서 평소처럼 일했다. CJ대한통운 중부산지사장에게도 찾아가 부당한 일을 따지면서 사번(코드)을 삭제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코드’는 CJ대한통운에서 내주는 사번이다. 택배기사가 A라는 대리점에서 일하고 싶다면 면접 등의 과정을 거쳐, 대리점 소장이 CJ대한통운에 채용 의사를 알린다. 그 후 CJ대한통운이 사번(코드)을 발급해 주는 형태다. 반대로 계약을 해지하게 되면 대리점장은 CJ대한통운에 퇴사를 알리고 사번을 없애달라고 한다.

권 씨의 사번(코드)은 소장이 계약 만료일이라고 통보한 4월15일 이후에도 삭제되지 않았고, 권 씨는 일을 계속했다.

그사이 소장은 새로운 계약 해지 사유를 들고 나왔다. “5월 1일에는 소장이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냈더라고요. 그런데 신청서에 적힌 계약해지 사유는 실업급여 부정수급이 아닌, ‘업무가 태만하고 CS점수(고객만족도)가 낮다’는 둥 새로운 이유를 제기했어요.”

권 씨는 “저는 CS점수가 낮은 편도 아닌데, 소장이 나를 해고하고 싶어서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이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월급(한 달 치 배송수수료)을 받는 날이었던 5월15일, 소장은 자신과의 계약기간인 4월14일까지 일한 수수료만 계산해 권 씨에게 지급했다.

▲ 지난 10일 CJ대한통운 앞 농성장에서 만난 택배기사 권용성 씨. 이날은 농성 9일차였다.
▲ 지난 10일 CJ대한통운 앞 농성장에서 만난 택배기사 권용성 씨. 이날은 농성 9일차였다.

눈엣가시가 된 이유

권 씨는 소장으로부터 ‘눈엣가시’가 된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대리점의 불법과 비리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었다.

“2018년 입사 초반엔 일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아무것도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임금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옆에 있는 동료와 비교했을 때 한 달에 5천 개의 물량을 배송했는데 그 동료와 내 임금은 50~100만 원 차이가 나는 거예요. 그 동료도 뭔가 이상하다고 말했어요. 수수료 명세서랑 계약서를 다 보여주니까 역시나 계산이 이상하고 잘못된 거였어요.”

권 씨는 CJ대한통운 중부산지사에 찾아가 CJ대한통운에서 대리점으로 내려온 수수료 관련 서류를 요청하고 감사도 요구했다. 노동조합(전국택배연대노조)에도 가입해 해결방법을 찾았다.

“‘택배기사 권리찾기’ 밴드(SNS)에도 글을 올렸더니 다른 택배기사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대리점 소장들이 ‘글 좀 내려달라’고 난리가 난 거예요. 대리점연합회도 우리 대리점(거제4동 대리점)처럼 계산하는 대리점이 없다고 말했고, 지사장까지 해결해 주겠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결국 2018년 연말 ‘수수료 지급에 문제가 없다’던 대리점 소장은 잘못을 인정했고 권 씨는 수수료 차액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거제4동 대리점은 택배기사 수수료 착복만이 아니라 CJ대한통운의 물량만을 배송해야 하는 CJ대한통운 지사와의 계약(전속계약)을 어기고 타 택배사와도 계약해 배송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도 권 씨다.

그는 자신의 ‘노동조합 활동’도 소장에게 눈엣가시가 된 이유일 거라고 짐작했다.

“지난해 조합원을 늘리기 위해 택배기사들을 만나러 다녔고 노조가 생기는 것을 우려했던 다른 대리점 소장들이 우리 대리점에 항의를 했나 봐요. 소장은 ‘왜 나한테 피해를 주냐’고 하더라구요. CS점수를 언급하면서 재계약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압박문자를 보내기도 했어요.”

공교롭게도 권 씨가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3월12일은 택배노조 부산지부를 만들기 위해 후보로 등록한 날이었고, 4월 지부장에 당선된 후 권 씨는 대리점으로부터 최종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 택배연대노조는 2일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열린 '부당해고 철회, 비리대리점장 퇴출, 중부산지사장 징계 CJ대한통운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권용성 조합원의 농성 시작을 알렸다. [사진 : 뉴시스]
▲ 택배연대노조는 2일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열린 '부당해고 철회, 비리대리점장 퇴출, 중부산지사장 징계 CJ대한통운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권용성 조합원의 농성 시작을 알렸다. [사진 : 뉴시스]

“부당해고 원인제공은 CJ대한통운”

권 씨가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농성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CJ대한통운이 부당해고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 그럼에도 거대 재벌택배사가 문제를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CJ대한통운 지사가 타 택배 업체 계약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타 택배 업체 계약은 지사와 대리점 간의 계약해지 사유예요. 이를 알고서도 지사가 대리점과 재계약을 했어요. 대리점이 자신은 안전해졌으니 마음먹고 저를 해고한 거라고 봐요.” 거제4동 대리점의 불법·비리 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이를 문제 삼지 않고 대리점과 2년간 재계약을 진행한 CJ대한통운의 책임을 강조했다.

권 씨는 “원인을 제공한 CJ대한통운이 나서서 부당한 해고를 철회시키고,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대리점과 계약도 해지하고, 대리점과 재계약한 책임자(지사장) 역시 징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 택배차량 위에 올라 해고의 부당함을 알리는 권용성 씨. [사진 : 택배연대노조]
▲ 택배차량 위에 올라 해고의 부당함을 알리는 권용성 씨. [사진 : 택배연대노조]

부산에서 동료들과 하루하루 현장 투쟁을 벌였던 권 씨는 지난 1일 저녁 자신의 택배차를 끌고 서울로 올라왔다. 6월 시작된 무더위 함께 권 씨의 농성도 시작됐다.

“택배기사에게 차는 분신과도 같아요. 차가 없으면 일을 못 하잖아요. 차와 내가 같이 있다는 건 언제든지 일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고, 그런 마음으로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권 씨는 출근시간, 점심시간, 퇴근 시간마다 차량 위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시민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틈틈이 법적 소송자료를 준비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잠도 차에서 잔다.

초등학교 3학년인 10살 아들, 그리고 한창 재롱이 많을 나이인 6살 딸에게 ‘아빠 일하러 간다’고 하고 상경한 그는 “오래 여기 있을 생각이 없다”고, “모든 걸 다해 투쟁하겠다는 결심으로 농성하고 있다”고 했다.

15일은 수수료 지급일이다. 권 씨는 “5월 말까지 일한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거나, 가처분 소송 중이라는 핑계로 ‘법적 판단’을 운운하며 CJ대한통운이 계속해서 수수방관하는 모습을 취한다면 더 강도 높은 투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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