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정부 기밀문서로 본 ‘5.18과 미국’(2)

미국정부 기밀문서로 본 ‘5.18과 미국

미국인 탐사전문기자 팀 셔록은 91년부터 10여년에 걸쳐 정보공개청구로 확보한 3,530쪽짜리 기밀해제 문서를 2016년 광주광역시에 기증했다.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은 2018년 1월 8일부터 7월 6일까지 6개월에 걸쳐 번역사업을 마쳤다. 이 자료들은 1979~1980년 한국의 정치와 인권상황 및 5‧18민주화운동 관련 미중앙정보국(CIA), 국방정보국(DIA), 국무부와 주한 미국대사관 등 관계기관의 정치, 외교, 군사, 인권 분야 정보 보고서이다. 완역본 전문 중 중요한 부분 몇 가지를 3차례 나누어 소개한다. 참고로 모든 문서는 일부 발췌한 것이며, 발췌한 문서의 밑줄은 기자가 표시한 것이다. 최근 미국정부가 한국정부에 전달에 신규공개문서 140쪽은 입수하는대로 추가 보도하도록 하겠다.

(1) 미국의 광주개입 부인, 사과 거부
(2) 광주항쟁을 ‘폭동’으로 인식
(3) 10.26에서 5.18까지 미국의 주요 행보

 

▲ 5.18 광주항쟁은 '소요', '고정간첩 침투' 등으로 왜곡보도한 당시 언론
▲ 5.18 광주항쟁은 '소요', '고정간첩 침투' 등으로 왜곡보도한 당시 언론

 

한국정부에서 광주항쟁에 대한 공식명칭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이다. 그러나 미국 역시 광주항쟁을 ‘폭동’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정황들이 보고서 곳곳에 나타난다.

제목: 광주폭동. 80년 5월 22일 10:00 현재 상황

- 20여명의 젊은이들이 한일은행 인근 지하에서 무기를 탈취하고 농성동 일대 집들을 돌아다니며 이날 밤 자신들을 돕지 않으면 폭력을 가할 것이라고 위협하였다 함.
- 폭도들은 모두 칼이나 쇠파이프로 무장하였고 아주 흥분한 상태였음
- 화순탄광에서 탈취한 TNT와 수류탄이 송정읍과 광주 사이에 있는 극락강 다리, 철교, 그리고 송정 고속도로 다리를 파괴하기 위해 광주로 옮겨지고 있음

이 문서의 제목부터가 ‘광주폭동’이다. 대체로 한국 측 첩보자료를 그대로 옮겨적은 듯한 문서로 보이는 이 보고들은 광주시민을 ‘테러’, ‘폭도’로 보는 인상을 짙게 풍긴다. 

▲ 미군에 의한 각종 부대들의 이동배치 상황에 대한 보고내용 문서
▲ 미군에 의한 각종 부대들의 이동배치 상황에 대한 보고내용 문서

2급비밀
작성: 동아시아태평양국-12
참조: (역자 주: 국무부 내 담당부서로 보임)
초안 작성: 동아시아태평양국/한국과: R 그리치 
승인: 동아시아태평양국/한국과: R 그리치
상황실: Seucher
긴급처리 1980년 5월 25일 15:55Z
발신: 국무부장관, 워싱턴 DC
수신: 미국대표부, 제네바, 긴급처리
     주일미국대사관, 동경, 긴급처리
     주한미국대사관, 서울, 긴급처리
     태평양사령관, 호놀룰루, 하와이, 긴급처리
     주중미국대사관, 북경, 긴급처리
참조: 주소미국대사관, 모스크바, 우선처리
2급비밀, 국무부 138557
제네바 대표부는 홀브룩 차관보에게 전달바람. 
행정명령 제12065(국가안보정보)에 의거, 5/25/90 (아마코스트, 마이클)
주제어: 국내치안, 비상대비 및 소개, 미국시민 지원, 대한민국, 미국
주제: 한국 감시단 상황보고 제7호

1. (평문) 다음 내용은 국무부에서 5월 25일 동부시각 09:00 현재(5월 25일 13:00Z) 작성한 한국 상황보고임. 

2. (3급비밀) 광주의 상황은 다소 어둡게 변했음. 중도파 시민위원회가 상황 통제권을 상실했고 과격파들이 실권을 장악한 것으로 보임. 인민재판부가 설치되어 몇몇 처형이 있었음. 학생 시위는 혁명정부 설치를 주장하는 미상 무장 과격세력에 의해 전반적으로 대체되었음. 

이 5월 25일 문서 역시 ‘인민재판’, ‘처형’ 등의 믿을 수 없는 사실들, 표현들이 등장한다. 미국 주요 외교기관, 정보기관, 군사기관 등의 보고문서에서 이런 표현을 사용하고 또 사실로 받아들였다면, 5.18광주항쟁에 대한 미국의 인식이 어떠했는지는 더 따질 것도 없어 보인다.

1980년 6월 5일 보고서 일부

7. (삭제) 요약: 본 보고서에는 광주 지역 무장 반란군들의 활동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음. 
8A. (삭제) 세부내용: (삭제) 1개 대대 규모의 무장 반란군들이 광주 인근 산악지대로 도주했음. (삭제) 이어지는 회의에서 (삭제)는 산악지대로 도주한 젊은 무장 반란군들이 이전에 알려진 것보다 더 많다고 했음. (삭제) 전라남도 지역에서 약 2,000여명이 무기를 확보하고 무인지대로 들어간 것으로 보임. (삭제)는 이들 젊은이 대부분이 군 경험이 있거나 학생기초군사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음. 따라서 이들은 무기와 전술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을 갖고 있음. 공산주의자들이 침투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답하였음. … (중략)
그는 만약 계엄령 해제와 합리적인 민주정부 수립이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위 2,000명이 “남한의 군사 독재정권”에 대항해 게릴라전을 벌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음. 그 시점이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이른 가을쯤 될 것이라고 예상하였음.(IF: SFP) 그는 현 시점에서 학생들은 전두환 무력에 대항하기를 두려워하고 있으나 8월말 또는 9월초에 이전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는, 추가적인 학생 소요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음. 

이 내용은 결국, 이른바 ‘광주 폭도’에 대해 최종적으로 북과 연계된 무장혁명이라는 인식으로 연결된다.

이 외에도 5월 26일 첩보 보고는 ‘사회불안 상황에 대한 (한국) 국방부의 개황 설명’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북한 간첩들이 상황을 악용한 사례’로 “(1) 5월 22일 15:00경, 여성 2명을 포함한 적 간첩 5명이 군중 틈에서 과도하게 과격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시위대가 붙잡아 계엄당국에 인계하였음. (2) 5월 23일 06:15경, 서울역 인근에서 주민등록증과 이름을 위조하여 서울 시민으로 가장한 북한 간첩 1명이 이를 의심한 시민 2명의 신고를 받았음. 조사결과 그는 지난 5월 20일 전라남도 남서쪽으로 침투한 진짜 간첩임이 드러났음.... 광주사태가 순진한 학생들의 시위로 촉발되었지만 간첩, 건달, 깡패 등 불순세력이 상황을 악용하여 사태를 공산주의 투쟁 방식으로 확대시켰음을 알아주시기 바라며 일부 외국통신사들의 왜곡된 보도에 호도되지 않기를 강조함”이라는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이들 미국 보고서들은 ‘무장폭도’, ‘인민재판’, ‘공개처형’, ‘시민협박’, ‘산악무장항쟁’, ‘북한간첩사주’, ‘공산주의적 투쟁방식’ 등 전두환 신군부세력이 퍼뜨린 온갖 거짓선전을 그대로 인용하여 유포하고 있다. 

해서 광주와 한국 국민은 다시 미 정부에게 묻는다.
5.18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인가? ‘폭동’인가?
광주시민은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학살당한 선량한 시민들인가? 북한의 사주를 받은 공산주의들에게 넘어간 폭도인가?
미국은 어떤 전제하에서 광주진압을 승인했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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