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윤택 마트노조 이케아코리아지회장… “이케아 노동자들, 이렇게 일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구업체 ‘이케아’. 이케아가 한국에 진출한 지 6년이 됐다.

소비자가 직접 조립·제작하는 DIY(do it yourself) 제품 판매로 한국인들에게도 이케아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광명점, 고양점, 기흥점, 그리고 최근 신규 오픈한 동부산점 등 4개의 매장이 운영 중이다. 방문객 수 또한 어마어마하다. 본사가 있는 광명점의 경우 평일 약 1만 5천 명, 주말 2만5천~3만 명의 고객이 찾는다.

이케아는 상품을 전시하는 ‘쇼룸’과 ‘창고’가 같은 층에 존재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전세계 300여 이케아 매장 중 10위 안에 드는 광명점은 쇼룸과 창고가 다른 층으로 분리돼 있는 스페셜 매장이다. 그만큼 면적이 크다는 얘기다. 실제 방처럼 꾸며놓은 쇼룸 면적만 5만 9000제곱미터로 알려져 있다.

▲ 이케아 매장 모습 [사진 : 뉴시스]
▲ 이케아 매장 모습 [사진 : 뉴시스]

4개의 한국매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1700여 명. 그렇다면 이 드넓은 매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어떨까?

이케아 노동자들, 이렇게 일합니다

이케아 광명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지난달 20일 노동조합(마트산업노조 이케아코리아지회) 출범을 알린 후 열흘이 갓 넘은 짧은 시간 동안, 광명점 560여 명의 노동자 중 240여 명이 조합원이 됐다.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 계기 안에 그들의 노동환경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이케아코리아지회 정윤택 지회장이 입을 열었다.

가장 큰 문제는 ‘근무스케쥴’이다.
이케아 매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주당 근무시간은 16·20·25·28·32·40시간으로 매우 다양하다. 회사는 단시간 노동에 대해 “경력단절 여성, 워킹맘, 은퇴자, 그리고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일찍 커리어를 쌓고자 하는 학생에게 탄력적 근로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이를 장점으로 홍보해 왔다.

문제는 근무스케쥴이 두 달 단위로 정해진다는 것이다. “두 달에 한 번씩 근무스케쥴이 바뀌다 보니 휴가를 쓰려면 적어도 3개월 전엔 미리 이야기를 해야 반영됩니다.” 연월차도 미리 얘기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본사에서 작성한 스케쥴을 매장의 각 부서(세일즈, 물류, 푸드 등)의 팀리더들이 노동자들과 조율해 본사에 제출하면 그 후 최종 근무스케쥴이 나오는 형태다.

▲ 정윤택 이케아코리아지회 지회장
▲ 정윤택 이케아코리아지회 지회장

정윤택 지회장은 주 32시간 일한다. 그러나 근무시간이 고정돼 있는 건 아니다. 4일간 8시간씩 일하거나, 고정된 요일에 일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주엔 금요일부터 토·일·월·화요일 5일 일하고 수·목·금은 쉬었어요. 주 32시간을 채우긴 했네요.” 운이 좋은 거라고 했다. 32시간을 못 채우는 주도 있고, 다른 주는 더 많이 일할 때도 있단다. “하루 9시간 일할 때도 있고, 7시간 일할 때도 있고… 1년 일하는 총시간을 주간으로 나눴을 때, 주 32시간으로만 맞추면 되는 겁니다.” 이케아 내부규정엔 하루 최대 10시 반까지 일할 수 있고, 주 6일 근무까지 가능하다.

자신은 그래도 나은 처지라고 했다. ‘최소 11시간 휴식 보장’은 지켜지지만, 밤 10시 마감 후 다음날 9시에 출근하는 동료들도 있기 때문이다.

두 달에 한 번 근무스케쥴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근무 간격과 시간 때문에 친구나 지인을 만나는 건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행사가 되었고, 경조사도 쉽게 갈 수 없는 처지다. “동료들끼리 밥 한번 먹으려면 스케쥴이 들쭉날쭉해 복권 맞추듯, 게임 하듯 일정을 맞춰야 해요.” 회식 참석률이 50% 넘기가 쉽지 않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인데 서로 친해지기 정말 힘들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회사가 홍보한 경력단절 여성, 워킹맘들에게 좋은 탄력근로? 정말일까?
자신이 선택한 단시간 근로로 하루 시간활용이 유용하다는 장점때문에 이케아에 지원한 워킹맘들도, 아이들 학교 행사 한번 참석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시간 근로라 해도 자기 생활을 스스로 조율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아요. 내 의지가 아닌, 회사가 짜놓은 스케쥴에 따라 기계처럼 일하고 있다는 게 직원들의 가장 큰 불만입니다.” 이케아에서 단시간 일하며 투잡을 하거나, 육아와 노동을 병행하고,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을 꿈꾸는 등 ‘안정적인 일과’에 대한 기대는 없어지기 시작했다. 두 달에 한 번 나오는 근무스케쥴에 직원들의 생활이 맞춰져 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갑자기 휴가가 필요할 때 찾는 것은 ‘병가’다. “병가를 사용하는 직원들이 많아지니, 회사에선 병가가 많다고 또 문제를 제기하고….” 회사는 병가 사용에 대한 가이드라인 만들었고, 그러면서 병가 사용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 되고 있다.

이런 근로계약(시간), 근로스케쥴은 1년에 두 번 재협상이 가능하다. 그러나 잘 지켜지지 않을뿐더러, 수정의견을 제출하면 요청사항의 반만 반영되거나 기각될 때가 더 많다.

▲ 이케아 매장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있는 사람들 [사진 : 뉴시스]
▲ 이케아 매장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있는 사람들 [사진 : 뉴시스]

세계적으로 뒤지지 않는 한국매장 매출, 그러나…

낮은 임금 역시 이케아 노동자들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다른 대형마트와 비교하면 이케아는 최저임금과 다름없는 임금을 받는다. 주말에 일해도 휴일수당이 없고, 근속수당은 물론 연월차수당도 없다. 연월차는 모두 소진해야 하며, 근무스케쥴이 작성되기 전, 그러니까 3개월 전 미리 연월차 사용을 이야기해야 가능하다.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사용하지 못하는 연월차가 무슨 소용일까?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매출이 줄자 오히려 회사가 연월차 사용을 재촉하는 상황이 됐다.

“각종 수당을 더해 월급을 보전해주는 방식도 아니고, 특별한 복지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최저시급이 조금 넘는 급여를 받으면서도 격월로 바뀌는 근무스케쥴로 인해 다른 일은 더 할 수 없는 상황이죠.”

임금체계를 바꾸고, 임금을 올려보려고 하면 회사는 ‘생산성’ 문제를 거론했다.
“광명점이 처음 열었을 때 세계 매출 1위를 달성했어요. 최근 오픈한 동부산점도 오픈하는 달에 세계 1위를 찍었습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이케아 매장 중에 탑20에 드는 고매출 매장이 바로 한국이케아 매장입니다. ‘생산성’을 이야기하는 건 말도 안 되죠.” 국가별 매출 순위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게 한국 매장이다. “그런데 돈 얘기만 꺼내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라는 말을 해요. 그 근거자료를 공개하라고 하면 기밀문서 열람 사인을 한 후 자료를 요청한 사람들에게만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케아 광명점은 지난해 KPI(성과지표) 평균 90~93% 이상을 기록했다. 이케아를 방문한 고객이 전시된 제품의 태그에 적힌 번호를 보고 주문을 넣은 후 1층에서 직접 물품을 찾아가는 경우 90% 이상의 손님이 기다리지 않고 물건을 받아갔다는 의미다. 그만큼 일 처리가 빠르고 서비스 만족도가 높다는 것. 하루 평균 매장 방문자 수를 고려하면 다른 나라 이케아 매장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노동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회사 재무팀 주장은 이케아가 해외에 진출할 때 현지법도 준수하고, 임금을 책정할 땐 동종업계 평균 수준으로 한다는 가이드라인이 있다고 들었어요. 방문자 수를 놓고 봐도, KPI지표를 놓고 봐도 세계 탑을 찍는 광명점과 다른 나라를 비교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죠.”

드넓은 매장을 왔다 갔다 하면서, 제품의 포장을 뜯고, 진열하고, 정리하고…. 이런 노동강도를 감당하며 이케아 노동자들이 얻은 것은 족저근막염, 근골격계질환, 허리디스크 등이다. “허리디스크, 손목터널증후군 진단 정도는 받아야 아픈 줄 아는 게 이케아 노동자들의 현실입니다.”

▲ 지난달 20일, 마트산업노조 이케아코리아지회가 출범을 알렸다. [사진 : 마트노조]
▲ 지난달 20일, 마트산업노조 이케아코리아지회가 출범을 알렸다. [사진 : 마트노조]

노동조합을 기다린 사람들

이케아코리아엔 노사위원회라는 논의 테이블이 있다. “일하면서 나타나는 불만, 고충들을 위원회에서 이야기해왔지만, 지난 5년 동안 가장 중요한 ‘생활(스케쥴)’, ‘임금’ 두 가지 이야기는 못 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매장 팀리더와 매니저에게 임금·스케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 ‘본사의 결정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 노사위에서 휴일수당 책정에 대한 논의도 해봤다. 본사에선 승인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지난해에도 이행이 되지 않았고, 올해도 그냥 지나가는 중입니다. 본사에선 지키라고 하는 규정을 ‘한국매장에선 안 지켜도 돼’라는 인식이 있어요.”

들쭉날쭉 근무스케쥴, 강도 높은 육체노동에 적은 임금, 이케아답지 않은 이케아코리아의 관료주의 시스템이 노동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선진국에서 출발한 회사에서 선진적 노동문화를 만들지 않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좋은 것만 선택해서 적용하고 있다는 게 직원들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가치가 있고, 우리가 일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가치를 반영하기 위해 언제나 노력합니다”라는 ‘이케아의 가치’를 이케아코리아 매장이 실현할 의지가 있는지 노동자들은 되묻는다.

그래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조합원들이 생각보다 빠르게 늘고 있어요. 아무 말 없이 가입서를 내밀고 가는 직원들이 상당수예요.” 노동조합이 생기길 기다린 사람들이다. 고양, 기흥 매장에서도 노동조합에 대한 문의가 잦아졌다. 이번 달부터 타 매장을 방문해 설명회도 하고, 가입서도 받을 예정이다.

▲ 이케아 노동조합이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아 조합원 가입서가 쌓이고 있다.
▲ 이케아 노동조합이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아 조합원 가입서가 쌓이고 있다.

“스케쥴 문제를 개선하고 임금을 현실화하는 게 1차 목표입니다. 이케아가 75년 동안 추구해왔던 가치를 한국의 직원들도 누리는 것. 하대 받지 않고, 일한 만큼 보상받는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더 커져야 할 것 같아요.”

더 나아가 “한국에서 인권과 사람을 중시하는 기업문화를 만드는 데 이케아 노동조합이 앞장서고 싶습니다. 다른 회사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게….” 이 역시 노동조합이 힘을 키워야 가능한 문제란 걸 정윤택 지회장은 잘 알고 있다.

그 시간, 정윤택 지회장 옆에서 조합원 가입서를 정리하는 황혜민 부지회장의 손이 분주하다. 노동조합의 힘이 커지는 소리, 짧은 기간 쌓인 조합원 가입서가 증명해주고 있다.

한편, 이케아코리아지회는 코로나19가 확산됨에 따라 “다중이용시설인 이케아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회사에 코로나19 대응 강화를 요청했다. 지회는 자체 방역, 마스크 지급, 격리 및 확진 노동자 공가사용, 임신 중 직원 재택근무, 기저질환 노동자 비대면 업무로 전환 등의 조치를 요구했다.

회사는 “직원들의 안전 보호에 최선을 다할 방침”이라는 입장을 밝혔고, 2일부터 15일까지 2주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매장 영업시간을 단축했다(오전 10시30분~오후 9시). 단축된 근무시간은 유급으로 보장된다. 조합원이 있는 광명점에서 생긴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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