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설1호’ 필화사건 염재만의 <반노> 4

채형복 교수의 ‘한국문학의 필화사건’

2016-07-22     채형복 교수

국내외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한국문학 필화사건들의 전모와 진실을 본격적으로 밝히는 '채형복 교수의 한국문학의 필화사건’ 두 번째 작품은 ‘외설(음란)시비소설 기소 제1호’로 기록된 소설가 염재만의 <반노>다. 

염재만은 1934년 8월23일에 태어나 1995년 12월7일 사망했다. 호는 평곡(平谷)이며, 본관은 파주다. 1953년 충주고등학교, 1959년 서라벌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69년 소설 <떡> 및 <반노>로 문단에 데뷔했으나 이 가운데 <반노>로 필화사건을 겪었다. 다른 소설로는 <느미>1978년)』, <바위병사>(1982년), <죄인 오라 하실 때>(1983년), <늑대와 달>(1983년), <넝쿨>(1984년), <목마른 아침>(1989년) 등이 있다.

 4-2 문학으로 법 읽기, 법으로 문학 읽기

결국 법정공방은 <반노>의 ‘음란성 유무’로 귀결된다. 피고인 염재만의 변호를 맡은 정춘용 변호사는 음란성 판단과 관련하여 다음 세 가지 이유로 <반노>의 무죄를 주장하였다.

첫째, 음란성 판단 기준으로 ‘이교량설(利較量說)'과 '승화설(昇華說)'을 제시하였다. ’이교량설‘이란 “작품 전체의 내용 속에 성의 묘사가 설령 지나칠 정도로 선정적이라 할지라도 예술성이 크면 음란성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학설이며, ’승화설‘이란 “성의 표현이 과도하게 선정적이어도 작품의 전후 문장이나 흐름이나 매듭, 또는 작가의 사상 속에 예술성이 있으면 그 음란성은 승화 소멸된다”는 학설이다.

▲ 영화 '반노' 포스터 [사진 출처 : 카페 '염재만의 작품세계']

어느 학설이든 작품의 음란성을 판단할 때 성 묘사 등 선정성 보다는 예술성이 있다면, 음란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변호인은 이 학설 중 후자에 따라 “어느 구절이 이른바 음란성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러한 성애 묘사에 의한 자극은 작품 주제의 강도에 의해 승화 소실되고 있다. 그 음란성은 작품의 주제를 높이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필요불가결하다고 인정되기 때문에 소설 <반노>는 음란성이 없다”고 변론하였다.

요컨대 정춘용 변호사의 변론 요지는 문예작품은 어느 한 구절만을 따로 떼어서 음란성 여부를 따질 것이 아니라 작품 전체와 관련시켜서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적 묘사에 의한 자극은 작품의 예술성 및 사상성에 의하여 순화되며, 그 자극도 승화 소실되는 것이 보통이다. 어느 일부분을 함부로 삭제한다면 예술성 내지 사상성이 감소되고 훼손되어 작품의 가치가 떨어지게 되는 것이며, 나아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도 빚게 된다.

따라서 본건 소설 <반노>는 종래의 통설에 의한 음란 문서의 요건에도 해당되지 아니한다. 함부로 성욕을 흥분 자극시킨다 하는 요건이 없다. 이 소설에선 특별히 향락본위의 동물적 성행위 다음에는 막막한 허탈과 피로가 따른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성적 쾌감에 얽매인다는 것은 일종의 노예근성임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성행위가 유쾌한 것이라는 그릇된 선입관을 타파하기 위하여 지루하리만큼 과장되게 성희 장면을 묘사함으로써 권태적 효과를 얻는 종시(終是)에, 쾌락에 대한 맹목적 동경심은 마침내 인간의 양심을 짓밟는 폭력으로 화한다는 과정까지를 되풀이하여 서술하고 있다. 

둘째, 영·미의 판례에 따르더라도 본건 소설 <반노>는 음란문서로 처벌할 수 없다. 비록 부분적으로 음란성이 인정된다하더라도 예술적 가치가 인정되는 한 이것은 음란만을 위한 음란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 <반노>는 ‘나’라는 주인공이 인간에 내재하는 성의 노예성에 항거하여 새로운 인간의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하여 드높은 휴머니즘을 추구하되 하나의 인간발견 과정을 통해서 추구하고 구현하려 한 것이다. 이 소설이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 함은 안수길씨의 법정증언을 들어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다.

▲ 연극으로도 만들어진 '반노' 리플릿 [사진 출처 : 카페 '염재만의 작품세계']

셋째, 작품의 음란성은 판매방법이나 독자의 생활 자세와도 관련시켜서 검토되어야 한다. 본건 <반노>는 그 점에서도 성실 건전한 면만 있지 저속한 상업주의거나, 흥미 위주거나, 스토리 위주가 아니므로 음란성이 없다.

검찰과 피고인 간 지루한 법정공방이 오간 끝에 대법원은 <반노>의 음란성을 부정하고 염재만에게 아래와 같이 무죄를 선고하였다.

첫째, 소설 <반노>의 13장 내지 14장(원판결기재의 공소사실 참조)에 기재된 사실은 그 표현에 있어 과도하게 성욕을 자극시키거나 또는 정상적인 성적 정서를 크게 해칠 정도로 노골적이고 구체적인 묘사라고 볼 수 없다.

둘째, 그 전체적인 내용의 흐름이 인간에 내재하는 향락적인 성욕에 반항함으로서 결국 그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으로 이끌어 매듭 된 경우에는 이 소설을 음란한 작품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대법원의 판결문 자체를 두고 보면 ‘시시하기’ 그지없다. 사실 <반노>는 작가로서 염재만의 첫 소설이고, 남녀 간 정사(情事) 장면에 대한 묘사가 무미건조하고, 지겨울 정도로 단순 반복되고 있다. 이 소설이 “문학작품이라고 말할 수조차 없는 수준 이하의 졸작이며, 아무리 잘 봐줘도 아마추어 작가의 습작이라고 해야 맞는 시시한 소설”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다만 이 소설 관련 필화사건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특정한 시기에 음란물로 낙인찍힌 텍스트가 어떤 방식으로 다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점을 살펴봄으로써 동시대의 문제점과 본질을 이해하는 데 ‘대단히 효율적인 전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조성면, 2005).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필화사건으로 대변되는 문학작품에 대해 ‘법적 제재’를 통하여 공안당국이 가장 쉽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성 문란’이고 ‘외설’이다. 남정현의 <분지>가 ‘이념’에 의해 공안당국의 희생양이 되었다면, 염재만의 <반노>는 ‘성(외설)’을 이유로 국가 주도의 ‘검열’의 대상이 되었다.

▲ '반노'는 서울대가 선정한 역사적인 판금도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사진 출처 : 카페 '염재만의 작품세계']

소설 <반노>의 문학성에 대해서는 “문학작품이라고 말할 수조차 없는 수준 이하의 졸작”이라는 평가와 달리, “알레고리적 상징을 통하여 당대 억업적인 상황을 반영한 소설”이라는 다분히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이 입장은 여성주인공 홍아를 ‘팜므파탈’로 보고, 남성주인공을 성적 대상으로 사육시키는 텍스트 내적 상황에서 “경제 지상주의와 배금주의가 지배하기 시작한 당대 현실의 상징”으로 보고 있다(장두식, 2010). 그래서 ‘홍아’를 두고 떠나는 ‘나’(윤진두)라는 주인공이 추구하는 세계는 “육체의 세계가 아니라 새로운 정신세계이자 추상적인 이상의 세계”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작품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작품에 대해 평가를 하면서 우리는 먼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소설 <반노>를 재출간하며, 염재만은 소설 <반노>는 “제목에서 시사하듯이 성의 노예가 되었던 인물이 섹스의 참뜻은 향락에 있는 게 아니라 자식을 잉태하는데 있음을 깨닫는다는 것이 주제였다”며 법정진술에서 행한 그의 주장에 비해 보다 직설적으로 자신의 창작 의도를 표명하고 있다(1995년 11월12일자 경향신문 인터뷰 기사).

그의 이 말에서 보듯이 이 소설을 쓰면서 작가 자신조차 당대 현실이나 시대 가치를 반영하겠다는 확고한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소설 <반노>에 대한 문학적 평가는 크게 갈리고 있으나 법적 측면에서 이 필화사건이 가지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 면에서 평가할 수 있다.

하나는, <분지> 필화사건에서 남정현은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고 법정 소송을 포기했다. 이와는 달리 염재만은 1심과 2심의 판결에 굴복하지 않고 상고하여 대법원의 무죄판결을 받아냈다. 지루한 법정소송을 거치면서 염재만은 적지 않은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그의 굽히지 않는 작가정신은 문학인들의 귀감이 되었다.

▲ '반노' 추천글 [사진 출처 : 카페 '염재만의 작품세계']

다른 하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대법원의 ‘문학작품의 음란성 판단에 대한 원칙’이 마련되었다. <반노> 이후에도 마광수 교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1995년)와 장정일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1996년)가 외설 혐의로 법정다툼을 벌여야 했다.

이 과정에서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예술표현의 자유와 성윤리에 관한 사회통념은 심하게 충돌했다. 각 사안마다 대법원의 결론은 달랐다. 하지만 <반노> 필화사건에서 확립된 “문학작품은 어느 일부분만을 따로 떼어 평가해서는 안되고, 그 작품 전체와 관련시켜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무죄판단기준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만큼 <반노> 필화사건에서 내린 대법원 판결은 헌법상 보장된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원칙을 제시한 진보적인 판례로 남아있다.  

(이번 주로 필화사건 <반노>를 마치고 다음 주부터는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이 연재됩니다.)

 

채형복 교수는 프랑스 엑스 마르세유 3대학에서 ‘유럽공동체법’을 전공했다. 이와 관련된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현재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있으며 시인이기도 하다. <늙은 아내의 마지막 기도>, <저승꽃>, <우리는 늘 혼자다> 등의 시집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