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괜찮아, 속도보다 생명… 쿠팡 과로사에 멈춰 선 시민들

과로사 없는 택배 만들기 시민대행진 “행복 배달부, 지속할 수 있도록” “로켓만큼 빠르지 않아도 괜찮아” “과로사 전제되는 배송은 끝내야”

2025-11-23     김준 기자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십자각 앞에서 열린 '과로사 없는 택배 만들기 시민대행진'에서 택배 노조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뉴시스

“늦어도 괜찮아, 속도보다 생명”

계속되는 쿠팡 발 산재를 규탄하는 시민들과 택배노조의 끈끈한 연대가 이어졌다. 동료 기사, 한 명의 소비자, 숨진 노동자의 유족, 정당인 등 각자 다른 위치에 선 이들이었지만, 한목소리로 “속도보다 생명이 우선시 되는 사회를 만들자”고 외쳤다.

23일 광화문 동십자각 앞에서는 ‘과로사 없는 택배 만들기 시민대행진’이 진행됐다. 얼마 전 과로로 사망한 고 오승용 씨의 가족들과 연대하기 위한 수천 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윤석열 파면 정국 당시 보였던 깃발들이 과로사 없는 택배 만들기 시민대행진에도 보였다. ⓒ 김준 기자

유독 쿠팡에서만 노동자들의 과로사가 계속된다. 어제인 22일 30대 노동자가 또 사망했다. 배달 노동자는 아니었지만, 화성시 쿠팡 물류센터에서 단순 포장 관련 업무를 맡은 노동자였다. 사망한 당일도 오후 6시부터 새벽 4시까지 근무가 예정돼 있었다.

앞서 유명을 달리한 고 오승용 씨의 아내가 먼저 발언대에 섰다. 그는 “남편이 문을 닫고 출근하던 때가 눈에 선하다”며 “사람 목숨보다 급한 택배가 어디있냐”고 호소했다. “왜 가족을 위해 일하던 사람이 가족에게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게 됐냐” 목소리 높이며 “이제 더 이상 다른 이가 이런 고통을 겪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오승용 씨의 어머니는 “아들은 누구보다 성실한 노동자였고, 더 버티면 괜찮아질 거야 말하며 하루하루를 견디던 노동자였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노동을 보장하고 지켜줘야 할 나라 제도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며 “이 죽음은 우연이 아니라, 제도가 노동자를 버린 탓”이라고 정부를 직격했다.

근조 리본을 차고 올라온 김광석 택배노조 위원장은 “이 리본을 뗄 수 없을 만큼 현장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다치고 목숨을 잃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는 “적어도 제가 겪은 십수년 동안 택배 현장은 지옥과 같았다”며 “새벽 별 보고 나와서 하루종일 종종거리며 밥 한 끼 먹는 것이 사치일 정도로 바쁘게 뛰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택배 노동자는 소비자 시민의 행복 배달부이고 싶다”며 “그러려면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속 가능한 택배 현장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대 발언도 이어졌다. 경기도 부천에서 작은 편의점을 운영한다고 밝힌 이호준 씨는 “택배 노동자 여러분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이 자리에, 비록 업종은 다르지만 늦은 밤을 지키는 동료 시민으로서 연대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고 무대에 오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24시간, 365일 불을 밝혀야 하는 저의 피로감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저 어둠 속에는 어둠 속의 질주는 훨씬 더 가혹하다고 위험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며 “자기 전에 주문하면 눈을 뜨자마자 문 앞에 와 있는 그 마법 같은 편리함은 절대 공짜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건 ‘누군가의 수면을 빼앗고 누군가의 건강을 갉아먹고, 끝내 목숨까지 앗아가는 과로’라는 대가를 치르고 얻어낸 결과”라고 설명하며 “누군가의 과로사가 전제되어야만 유지되는 시스템이라면 그것은 혁신이 아니라 착취”라고 일갈했다.

주 7일 배송이 필요없는 소비자 모임 깃발 ⓒ 김준 기자

택배노조와 연대하기 위해 지난해 겨울부터 ‘주7일 배송이 필요 없는 소비자 모임’을 결성한 정다울 씨도 함께했다. 그는 자신의 깃발에 대해 “이 깃발은 노동자의 삶에 연대하겠다는 일반 시민들을 대변하는 목소리”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의 반대는 쿠팡이나 택배사가 망하기를 바라는 파괴적인 외침이 결코 아니”라며 “노동자가 일하는 회사가 건재하고, 지속할 수 있도록 노동자가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절박한 외침”이라고 말했다. 

정 씨는 “우리의 편리함이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어진다면 우리는 그 편리함을 원하지 않는다고 단호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로켓만큼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 일요일에 배송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끝까지 연대할 것을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