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전쟁, 미·중 간 힘의 균형이 바뀌고 있다
트럼프의 공세, 오히려 미국의 취약성을 드러내다 절제를 택한 중국, 이유있는 전략적 여유를 보이다 강한 목소리가 곧 힘을 의미하던 시대는 끝났다
지난 10월 부산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 이후 양국이 무역 갈등 완화를 위한 조치를 내놓고 있다. 미국은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평균 관세율을 57%에서 47%로 낮추고, 중국은 미국산 대두 구매 재개와 희토류 수출 통제 유예를 결정했다. 미국이 시작한 관세전쟁이 원상태로 되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번 관세전쟁은 미·중 간 힘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분쟁은 단순한 무역 갈등이 아니라 세계 질서의 주도권을 둘러싼 새로운 경쟁의 장이다. 지난 경주 APEC 정상회의장에서 시진핑 주석은 모습을 드러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나타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부재는 미국이 더 이상 다자 무대의 중심이 아님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그가 APEC을 뒤로하고 향한 곳은 워싱턴의 할로윈 행사장이었다.
트럼프는 재집권 이후 첫해부터 다시 관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중국의 불공정 무역을 바로잡겠다”며 2025년 3월부터 중국산 전기차·배터리·태양광 패널에 30~60%의 고율 관세를 부과했고, 이후 반도체·AI 부품·의약품·드론 부품 등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이 공세는 미국 스스로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이미 중국은 수출 의존적 경제에서 벗어나 내수 중심의 거대한 시장을 형성했기에 관세로 인한 충격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반면 미국은 수입 비용이 치솟으며 물가가 오르고, 제조업체의 부담이 커졌다. 예일대 예산정책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의 유효 관세율은 1930년대 이후 최고치인 14%에 달했으며, 가구당 평균 1,700달러(약 230만 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했다.
피해는 특히 농업 부문에서 두드러졌다. 중국은 미국산 대두의 약 80%를 소비해 온 최대 시장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대두 구매를 중단하자 트럼프의 주요 지지층인 농업 부문의 피해가 급속히 확산됐다. 정부 보조금이 투입됐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결국 관세는 세금이다. 무역 상대국에 부과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자국민도 간접적으로 부담하게 된다. 수입품 가격이 오르고 생활비가 상승하면서 실질소득이 줄어든다. ‘중국 때리기’는 외교정책이 아니라 자국민의 지갑을 털어 재정을 메우는 모순된 선택이 되어 버렸다.
중국은 감정적인 대응 대신 차분한 균형을 유지했다. 미국산 대두 구매 중단과 희토류 수출 통제는 이미 사용한 카드이지만, 미국이 다시 관세 공세를 해온다면 언제든 또 꺼낼 수 있는 카드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 중국은 여전히 다양한 선택지를 쥐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중국이 리튬이온 배터리, 구형(성숙 공정) 반도체, 의약품 원재료(API) 등 핵심 분야에서 글로벌 공급망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배터리의 양극재 약 79%, 음극재 약 92%, 그리고 해열·진통제 ‘타이레놀’의 주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의 약 72%가 중국산이다.
이처럼 배터리·반도체·의약품 등 첨단 산업의 핵심 소재 대부분이 중국의 손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은, 중국이 앞으로의 관세전쟁에서 여전히 다양한 카드와 여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 산업은 단순한 제조업 부문이 아니라 첨단기술·보건안보·에너지 체계로 이어지는 전략 산업의 핵심이다. 중국은 이를 직접적으로 무기화하지 않았지만, 필요할 경우 공급 조절이나 수출 제한을 통해 관세전쟁의 흐름을 뒤집을 잠재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반면 미국의 불안정성은 제도적 영역에서도 드러났다. 미국 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의 합헌성을 두고 심리에 착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상경제권한법’을 근거로 대부분의 수입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지만, 하급심은 이를 위법으로 판단했다. 쟁점은 대통령이 의회 승인 없이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를 ‘국가 비상사태 대응’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다. 대법원에서도 재판관들이 대통령의 권한 남용 가능성을 지적하면서 정책의 불안정성은 커지고 있다.
결국 미국은 제조업의 몰락, 공급망 의존, 국내 정치적 불안정성 등 취약한 구조를 드러낸 채 ‘MAGA’로 대표되는 자국 우선주의를 외치고 있다. 반면 중국은 한발 물러서 ‘협력’과 ‘균형’을 강조하며, 절제된 태도로 책임 있는 강대국의 역할을 부각했다. 미국의 공세가 거세질수록 중국의 절제는 더 큰 무게를 얻었다.
관세전쟁은 미·중 간 힘의 균형이 어디로 기울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번 대결에서 드러난 것은 미국의 공세가 아니라 그 속에 감춰진 취약성이었고, 확인된 것은 중국의 방어가 아니라 그 너머의 영향력이었다. 강한 목소리가 곧 힘을 의미하던 시대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