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U 26만 장 공급 약속의 명암

왜 GPU인가? 고성능 GPU와 AI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 미국 중심 패권 전략 속 엔비디아의 ‘AI 허브’

2025-11-06     김강필(인공지능 개발자)

지난 APEC 2025 개최 기간, 엔비디아의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은 한국에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장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한국의 인공지능(AI) 산업이 대규모의 ‘AI 무기’를 확보하는 역사적 기회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삼성, 현대차, SK, 네이버 등 주요 기업과 정부를 대상으로 한 이 대규모 공급 약속은 한국이 자체적으로 인공지능 기술과 인프라를 개발·통제·운영하는 소버린 AI(Sovereign AI) 전략 실현의 발판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젠슨 황이 “전력과 데이터센터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는 공급의 전제조건은 한국 AI 산업의 근본적인 인프라 병목(Bottleneck)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기술 패권 전략에 따른 GPU 공급망에 대한 구조적 종속 심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왜 GPU인가?

기존 중앙처리장치(CPU)가 고급 연산을 순차적으로 처리하는 데 적합하다면, GPU는 단순 연산을 병렬로 처리할 수 있어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하고 추론하는 인공지능 기술에 특화되어 있다.

GPU 수요는 단순한 문자(Text) 기반의 거대언어모델(LLM) 학습 단계를 넘어, AI의 실제 산업 적용이 가속화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AI 모델이 실제 서비스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검증하는’ 추론 단계가 중요해지면서, 여기에 투입되는 컴퓨터 자원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AI 에이전트 시스템처럼 여러 AI가 협업하는 경우 GPU 사용량이 15배 이상 치솟는 현상이 이를 뒷받침한다.

제조업 강국으로 평가받는 한국의 로봇 산업에 GPU는 필수적이다. 현장 환경에 맞는 로봇 훈련(추론)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켜 로봇의 양산 및 현장 적용 속도를 좌우하며, 이는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

법률, 의료 같은 전문 분야에서 기업을 대상으로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이 늘어나면서, 고성능 GPU를 필요로 하는 AI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고성능 GPU와 AI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

젠슨 황이 약속한 GPU 26만 장은 정부 및 주요 기업에 배분될 예정이다. 삼성, 현대차, SK그룹 각 5만 장, 네이버 6만 장, 정부 5만 장으로 구성되어 총 26만 장이다.

막대한 규모의 GPU 공급이 약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급 시기는 인프라 구축에 달려 있다. 26만 장의 고성능 GPU를 동시에 구동하기 위한 전력 용량 확보와 데이터센터 구축은 사실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고성능 GPU를 탑재한 AI 데이터센터는 일반 산업 시설이나 데이터센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전력을 요구한다. 엔비디아의 최신 GPU 칩(예: H100) 하나는 수백 와트(W)의 전력을 소비하며, 이들이 수만 장 모인 클러스터는 일반 중소 도시 하나에 맞먹는 전력량을 필요로 한다. GPU 26만 장 규모는 원자력 발전소 1기의 전력을 전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수준의 부하를 발생시킨다.

또한 데이터센터가 필요로 하는 대규모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발전소에서 센터까지 전기를 끌어오는 송전선로와 변전소를 대대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력 시설 건설은 환경영향평가, 부지 확보, 인허가 절차 등으로 인해 수년에서 10년 가까이 소요되는 장기 과제로, 인공지능 인프라 수요를 즉시 따라가기 어렵다.

고성능 GPU는 전력 소비가 많을수록 발생하는 열(발열량)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 열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면 GPU의 성능 저하 및 고장으로 이어져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다. 이 때문에 냉각 시스템을 설치·운영해야 하는데, 그에 따른 막대한 비용과 추가 전력 또한 소모된다. 즉, GPU의 막대한 전력 소비가 발열량을 증가시키고, 이를 냉각하기 위해 다시 전력이 소비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미국 중심 패권 전략 속 엔비디아의 ‘AI 허브’

이번 GPU 공급 약속은 단순한 시장 확대를 넘어, 미국 주도 AI 생태계의 확장을 목표로 하는 패권 전략과 깊이 얽혀 있다.

젠슨 황이 한국을 아시아의 ‘리저널 AI 허브(Regional AI Hub)’로 규정하고 AI 팩토리 구축 의사를 밝힌 것은, 중국 시장을 잃은 엔비디아가 동북아시아에서 미국 중심의 AI 생태계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한국의 GPU 확보는 곧 미국 AI 기술의 아시아 기지 역할을 수행하는 지정학적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엔비디아 최첨단 반도체의 미국 외 공급 제한” 발언은, 한국의 GPU 공급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기조로 하는 경제안보 패권 전략에 종속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GPU와 인공지능

GPU(Graphics Processing Unit)는 본래 컴퓨터 게임이나 3D 그래픽 처리를 위해 개발된 장치다. 그러나 AI 시대에 접어들면서 GPU는 인공지능의 핵심 동력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AI의 요구 사항: 인공지능, 특히 딥러닝(Deep Learning)은 방대한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하고 복잡한 행렬 연산을 수행하는 대규모 병렬 연산이 필수적이다.

GPU의 최적화: 일반적인 CPU(Central Processing Unit)가 소수의 강력한 코어로 순차적인 작업을 처리하는 데 비해, GPU는 수천 개의 작은 코어를 가지고 있어 수많은 계산을 동시에 처리하는 병렬 연산에 극도로 효율적이다.

핵심 역할: 이러한 특성 덕분에 GPU는 AI 모델을 만드는 훈련(Training) 과정은 물론, 학습된 모델을 실제 서비스에 적용하는 추론(Inference) 과정 모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AI 시대의 석유' 또는 'AI 칩'으로 불린다. 엔비디아가 AI 반도체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며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