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기, 한미 관세 합의는 예속의 길

1. 미국 의존으로 기회를 엿보는 재벌 2. 정치·군사·경제적 미국의 패권 약화 3. 대전환기 역사의 교훈

2025-11-05     김성혁 민주노동연구원 원장
ⓒ 뉴시스

1. 미국 의존으로 기회를 엿보는 재벌

트럼프 1기부터 미국 우선주의가 본격화되어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가 급증하였다.

2016년에서 2024년까지 전체 해외직접투자는 209조 원에서 491조 원으로 1.4배 증가했으나, 대미 투자는 동기간 22조 원에서 158조 원으로 7배나 증가하였다. 여기서 4대 재벌이 투자를 주도하였는데, 8년간 4대 재벌은 아래 표와 같이 150조 원을 미국에 투자하였다. 올해는 트럼프 임기 3년간 216조 원(1,500억 달러) 투자를 다시 약속하였다.

4대 그룹의 미국 투자 추이. 자료 : CEO스코어

여기에 정부와 조선업 투자 3,500억 달러, 항공기와 무기 구매, 전력망과 희토류 복합단지 투자 등을 포함하면 트럼프 임기 동안 대미 투자는 6,000억 달러(852조 원)가 넘는다.

삼성, SK, LG, 현대차 등 4대 그룹이 미국 투자에 올인하는 것은, 트럼프의 압박 차원을 넘어 미국에 뿌리를 내리려는 전망도 있을 것이다. 재벌 관점에서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와 젠슨 황의 엔비디아처럼 외국인으로 미국에서 성공한 모델을 기대할 수 있다. 미국에 투자한 재벌 자회사가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이익을 많이 내어 배당만 많이 준다면 굳이 한국에서 돈을 벌 이유가 없을 수 있다.

실제 미국 국적의 김범석 쿠팡 회장은 한국에서의 사업이 중심인데도 본사는 미국 델라웨어에 두고 있다. 사모펀드 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도 국적이 미국이며 뉴욕에 거주지를 두었다. 이들은 미국인으로 글로벌 사업을 영위하며, 한국에서의 소득과 체류 기간을 줄여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아 논란이 되었다.

4대 재벌은 미국에서 성공한다면, 한국 국민경제와 일자리, 지역경제 등은 부차적일 수 있으며, 필요시 한국보다 미국 사업이 중심이 되고, 미국 법인을 본사로 바꾸며, 미국 시민권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는 재벌 총수들과 자주 만나면서 미국 투자를 유인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진출이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철강, 조선소 법인은 미국 정부의 규제를 많이 받게 된다.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중국 등에 투자 금지, 원자재와 부품의 미국 현지생산, 나아가 이들 기업에 미국의 지분 10% 보유 요구 또는 틱톡 사업부처럼 미국기업에 매각 명령,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에서 황금주 설정 등의 개입이 있을 수 있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 법인은 법적으로 미국 회사로, 미국인을 고용하고 미국에 세금을 내며 미국에서 완결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게 된다. 한국에 있을 때와 비교하면 창출된 부가가치의 80%는 미국에 귀속된다.

수십 년간 정부의 온갖 혜택과 국민의 지지 속에서 성장해 온 재벌 기업이 한국보다 미국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은 본분을 망각한 행위이다.

한국은 이런 행위를 규제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부마저 미국 투자에 나서는 실정이다. 이는 경제주권 없이 대외의존 경제로 성장해 온 한국경제의 암울한 모습이다.

2. 정치·군사·경제적 미국의 패권 약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몰락하면서 미국의 일극 패권 시대가 저물고 세계는 대전환기에 돌입하였다.

경제적으로는, 미국은 국가 부채가 37조 달러인데, 1년 이자가 1조 달러(1,400조 원)로 국방비보다 크다. 이에 미국은 자신이 만든 자유무역기구(WTO)를 무력화시키고 보호무역으로 전환하여 관세 수입으로 재정적자를 메우고, 우방국을 갈취하여 제조업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 권력 남용과 물가상승에 대한 국내 저항, 경제수탈에 대한 주권국들의 반발이 고조되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우크라이나를 매개로 한 미국과 러시아의 전쟁에서 나토가 밀리고 있다. 중동에서 미국은 이스라엘 학살의 공모국으로 비판받고 있으며, 베네수엘라를 포위하고 12척의 선박을 격침한 미국의 침략 행위는 마약이 아니라 석유 때문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중국 전승절과 북한 당 창건 기념식에서는 조·중·러 정상(대표)이 반미 연대를 과시하였다.

정치적으로는, 트럼프는 미국의 세계 지도국으로의 역할을 포기하였다. 형식적으로나마 세계 지도자로 처신했던 과거 대통령과는 전혀 다르다. 트럼프는 세계보건기구, 유엔인권이사회, 유네스코, 파리 기후협정 등을 탈퇴하고, 녹색기후기금(인천 소재)의 40억 달러(약 6조 원) 지원 철회 등 국제기구 재원 지급도 중단하였다. 보건·환경·인권·재난 등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고 약소국을 돕는 역할을, 미국의 돈이 들어가니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따랐던 유럽연합, 영국, 캐나다, 호주, 일본 등은 비생산적인 금융과 부동산 투기로 불평등이 심해지고 제조업 해외 이전으로 산업공동화가 발생하면서 코로나 이후에도 경제성장률이 1%대에 머물러 있다. 반면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자 최대 수출국으로 경제성장률 5%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고, 경제블록으로 중국·러시아 등을 봉쇄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은 미국과 이해관계가 달라 경제제재에 소극적이며, 다극화 추세 속에 달러 체제가 오히려 약화하고 있다.

유럽 경제 강국 독일은 러시아산 에너지 대신 비싼 미국산을 쓰면서 물가폭등과 제조업 경쟁력 약화, 대중 수출 감소 등으로 유럽의 병자로 전락하였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도 물가상승, 재정파탄으로 복지를 삭감하면서 내부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일본은 30년 장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도 이민정책 실패와 부동산 폭등, 가계부채 등으로 심각한 경제침체에 직면하였다. 전문가들은 서방 경제가 아시아 국가들에 추월당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아래 경제성장률 전망치(2025년 10월 기준)를 보면 선진국은 1.6%이나 신흥국 및 개도국은 4.2%이다. 중국, 인도,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이 향후 세계경제 성장을 주도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자료 : IMF(2025.10월 기준), * 대만은 JP모건 전망치(9월) * 러시아는 안톤 실루아노프 재무장관이 최소 1.5% 성장 전망 발표(8월)

3. 대전환기 역사의 교훈

대전환기 세계경제의 특징은 ‘금융·부동산 거품 경제의 쇠퇴’, ‘글로벌 분업체제의 약화와 미국 우선주의로의 공급망 재편’, ‘보호무역으로 무한경쟁과 핵심산업의 자국 생산’, ‘미국과 서방, 중국과 신흥·개도국, 그리고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차원의 다양한 경제블록 구축’ 등이다.

역사적으로 보호무역 시대에 대외의존 경제로 성공한 사례는 별로 없다. 이제 한국의 수출주도 경제, 미국 의존경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미국의 패권하에 자유무역과 글로벌 분업체제에서 성장한 한국경제는 전혀 다른 상황에 직면하였다. 해법의 하나는 미국 의존을 강화해서 미국 경제 부흥에 복무하고 이에 따른 부산물을 얻어 성장하는 방안이며, 다른 하나는 미국 의존을 줄여 무역 통상의 다극화와 핵심산업 자립화로 자주적으로 발전하는 길이 있다.

명-청 교체기에 조선은 망해가는 명나라를 섬기고 파병까지 했다가 병자호란으로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다. 근대화 시기에는 고종이 동학 농민군 진압을 위해 청나라 출병을 요구하여, 청과 일본이 함께 출병하면서 결국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역사는 민중에 의거한 자주화의 길을 포기하고, 외세에 의존하여 기득권을 지키려는 시도는 결국 식민지나 종속국으로 전락하여 내재적 발전이 좌절되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내란세력은 신냉전에 편승하여 미국 의존을 강화하고 민중 수탈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전쟁과 계엄을 추진하였다. 민주당은 민주주의를 위해 나선 민중과 함께 계엄을 막고 정권교체에 성공하였으나, 미국 의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자주의 길을 방기하고 있다. 트럼프의 날강도 같은 경제수탈에 국민 80%가 반대 의사를 보였지만 이재명 정부는 미국 예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미국의 날강도 요구는 계속될 것이며 투자처, 투자조건 등 한미 협상의 세부 내용을 결정하는 실무 절차가 남아 있다.

한미 관세협상은 이재명 정부가 대외의존을 탈피하여 자주적인 경제로 가는 관문이다. 정부는 국회 비준, 트럼프 임기 중에 마련되는 투자 세부계획, 추가적인 미국의 개방요구 등에서 부당한 요구를 거부하고 경제주권을 세우는 방향으로 재협상에 임해야 한다. 이는 명실상부한 국민주권 정부가 되기 위한 기회이다.

대전환 시기, 경제정책에서 큰 그림의 설계가 필요하다. 한국경제가 지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술·인력·시장·자본에서 자주성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역 통상의 다극화, 핵심산업 자립화(재생에너지, 소재·부품·장비, 농축산업)와 숙련인력 확보, 국내투자 확대와 외국자본 의존 축소 등이 필요하다. 한미 경제 관계는 이런 관점에서 재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