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핵잠수함을 둘러싼 이재명-트럼프의 동상이몽
핵잠수함, ‘자주국방의 열쇠’인가 ‘보이지 않는 종속’인가 핵잠수함은 어디서 건조하나? 미국에서 구매한 핵잠수함이 자주국방에 도움될까?
이재명 대통령은 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핵추진잠수함(핵잠)을 통해 “자주국방의 토대를 더욱 튼튼하게 다질 것”라고 밝혔다. 과연 핵잠이 자주국방의 토대가 될 수 있을까?
핵잠은 어디서 건조하나?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을 끝내고 돌아가면서 한국 핵잠을 미국 필리조선소에서 건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핵잠 연료 공급을 승인받았다며 한국에서 건조될 것이라고 했다.
핵잠을 어디서 건조하느냐가 논란이 된 이유는 잠수함 추진 연료 때문이다.
핵잠 연료는 농축도 90% 안팎의 고농축우라늄(HEU)을 사용한다. 이렇게 해야 연료를 수십 년 갈아끼우지 않고도 작전수행이 가능하다. 사실 고농축우라늄만 있으면 핵무기도 바로 만들 수 있다.
과연 한국은 고농축우라늄 사용을 승인받을 수 있을까? 아니면 트럼프 대통령의 예언처럼 필리조선소에서 건조한 핵잠을 구매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후자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 법·제도의 장벽을 넘을 수 없다.
미국이 다른 나라와 핵장비와 핵연료를 협의할 때는 미국 원자력법(Atomic Energy Act)과 핵비확산법(NNPA)을 적용한다. 특히 고농축우라늄, 플루토늄 등 핵무기 제조가 가능한 물질에 대해서는 재처리·농축·형태 변경·저장까지 미국이 사전에 동의해야 한다는 강한 통제 조항이 박혀 있다. 2015년 체결한 ‘한·미 원자력협정’에는 고농축우라늄을 사용할 수 없게 규정하고 있다.
둘째, 한·미 원자력협정은 개정이 불가능한 구조다.
한·미 원자력협정 유효기간은 20년으로 2035년까지 적용된다. 미국이 한국에 고농축우라늄 사용을 승인하려면, 유효기간 10년이 남은 협정을 파기하고 새로운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게다가 미 의회 재심사까지 거쳐야 한다. 고농축우라늄 사용은 트럼프 개인이 승인하고 말고할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셋째, 한국은 비핵보유국이기 때문에 NPT와 IAEA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NPT(핵확산금지조약)는 고농축우라늄의 이전과 획득을 금지하고 있다. 특히 비핵보유국은 고농축우라늄 사용에 대해 IAEA(국제원자력기구) 안전조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IAEA는 우라늄 20% 초과를 고농축으로 분류하며, 비핵보유국의 사용은 엄격한 통제 대상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은 핵잠 건조능력은 있지만, 고농축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할 수 없다. 결국, 한국이 핵잠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필리조선소에서 구매하는 방법뿐이다.
미국에서 구매한 핵잠이 자주국방에 도움될까?
한국이 미국에서 핵잠을 도입한다면, 이는 단순한 무기 구매를 넘어 미국의 전략적 통제에 깊이 종속되는 길이 될 수 있다. 자주국방을 위한 결정이 오히려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첫째, 구매했다고 '내 것'이 아니다.
미국이 수출하는 모든 무기는 ‘무기수출통제법(ITAR/AECA)’과 ‘대외군사판매(FMS)’ 제도에 따라 엄격하게 통제된다. 즉, 한국이 핵잠을 구매하더라도 그 무기를 어떻게 사용할지, 어디에 배치할지, 수리나 개조를 할지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미국에 있다. 미국 국방안보협력국(DSCA)은 ‘골든 센트리(Golden Sentry)’ 프로그램을 통해 이를 상시 점검한다.
이는 단순한 규정이 아닌, 현실로 작동하는 통제 장치다. 2030년 호주로 이양되는 핵잠도 마찬가지다. 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협의체)조차 통제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의미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 무기 운영의 단적인 예다. 우크라이나군이 미국산 무기를 구매했다. 그러나 그 무기로 러시아 영토를 공격하려면 미국의 승인이 필요하다. 미국의 지침이 없으면 전쟁이 나도 미국산 무기를 사용할 수 없다.
핵잠을 구매해도 한국은 그저 운전만 할 뿐, 핵잠의 실질적인 사용‧통제권은 미국에 있다는 의미다.
둘째, 기술과 소프트웨어에 '보이지 않는 족쇄'가 있다.
현대 무기체계의 심장은 소프트웨어다. F-35의 사례를 보자. 우리 공군이 F-35를 구매했지만, 공급국(미국)이 작전 체계 및 유지보수를 원격 네트워크로 관리한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권한과 데이터 접속 권한도 공급국이 쥐고 있다. 이는 사실상의 '킬스위치'(원격 차단 장치)와 같아서, 공급국의 동의 없이는 아예 가동조차 어렵다.
핵잠은 고농축우라늄 때문에 F-35보다 더 엄격한 통제가 이뤄진다. 핵잠이 자주국방의 토대가 아니라 우리 해군의 ‘보이지 않는 족쇄’가 된다고 보는 이유다.
셋째, 미국의 조선소 능력 부족이 우리의 전력 공백으로 이어진다.
미국 해군의 조선소들은 자국 잠수함 건조 일정만으로도 만성적인 지연과 예산초과에 시달리고 있다. 이렇게 이미 병목 현상이 발생한 생산라인에 한국의 수요가 추가되면, 우리 잠수함의 인도 시기와 정비 일정은 미국의 사정에 전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호주보다 주문이 늦었으니, 지금 당장 착수해도 2030년은 지나야 건조된다. 그때는 이미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아니다.
진정한 자주국방을 위한 조건
미국산 핵추진잠수함 도입은 단기적으로는 전력 보강일 수 있다. 하지만 법·제도, 계약, 기술, 산업 전 분야에 걸쳐 미국의 통제와 동의에 의존하는 구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꼴이다. 이를 어쩌면 ‘종속적 자주국방’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른다.
진정한 자주국방은 단순히 거창한 무기를 '소유'하는 데 있지 않다. 그 무기의 심장인 연료, 정보, 소프트웨어, 정비, 그리고 산업 생태계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열쇠'를 쥐는 데 있다. 하물며 한국은 군 작전통제권마저 없다. 핵잠수함 도입을 논하기에 앞서, 이러한 근본적인 조건을 마련하기 위한 제도와 기술 기반을 구축하는 데 보다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