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 강제철거 반대” 여론 확산…어느 구청이 저지른 불법과 폭력
광진구청장, 노점 볼모로 실적 쌓기? 용역 폭력, 구청 직원 폭언.. 불법 난무 ‘철거 반대’ 여론에 밀린 구청.. “적반하장, 인면수심”
지난 8일 새벽, 서울 건대입구역 일대 노점상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노점박스 45대가 부서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검은 옷을 입고 등장한 ‘용역’들은 온몸으로 노점박스를 지키려는 노점상들에게 폭력을 자행했다. 사지를 들어 땅바닥에 내동댕이쳤고, 바닥에 나뒹구는 노점상을 발로 짓밟았다. 당시 현장에 있던 구청장, 구청 직원, 경찰 어느 하나 무자비한 폭력을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를 진두지휘한 건 구청장이다.
서울 광진구청은 이날 새벽 노점상을 상대로 대대적인 ‘행정대집행’을 강행했다.
광진경찰서의 엄호 아래 구청 직원과 구청에서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 약 400명은 4개 도로 차선을 완전 봉쇄하고, 일반 시민의 접근을 차단한 채 마구잡이 단속과 철거를 자행했다. ‘지게차’까지 동원됐다. 이들은 노점박스 45대를 부수거나, 대형화물차에 싣고 가버렸다.
단속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노점상들은 망연자실 이를 지켜봐야 했다. 약 45명의 노점상들은 거리에서조차 쫓겨나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다. 생계수단인 노점은 물론, 그 안에 있는 상품들, 현금, 귀중품까지 모조리 빼앗겼다.
선거 앞두고 노점 볼모로 실적 쌓기?
지자체가 도로정비, 도시미관 정비 등의 이유로 노점을 강제철거하면 노점과의 갈등이 발생한다. 그러나, 강변역과 동서울버스터미널 인근, 군자역 일대, 그리고 건대역 주변에서 일하는 노점상들은 광진구청과의 ‘상호 협의’를 통해 노점을 유지했다. 이 지역은 서울에서 가장 먼저 노점 활동에 대한 ‘시범 허가제’를 실시했던 곳이다.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노점상들은 강제철거 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장사를 해왔다.
그러나 2022년 국민의힘 구청장이 취임하자, 노점상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김경호 구청장은 취임 이후 구의역, 강변역 일대에 대대적인 단속을 강행해 이곳 노점상 생존권을 박탈한 데 이어, 지난 8일 건대입구역 주변 노점상에 대한 기습단속까지 자행한 것이다.
민주노점상전국연합(민주노련)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구청장 재선을 위해 대대적인 단속을 벌인 것”이라고 꼬집었다.
건대입구역 개발로 상권 활성화를 꾀하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된 김 구청장이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공약 이행을 위해 보여주기식 ‘실적 쌓기’에 나섰다는 것. 노점을 개발의 걸림돌이라 판단하고 강제철거를 자행했다는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0일 도시건축위원회를 열어 건대입구역 인근을 포함하는 광진구 화양2지구 규제 완화와 자율적 개발을 유도하는 ‘지구단위 계획안’을 가결시켰다.
용역들의 폭력, 구청 직원은 폭언.. 불법 난무
단속과 철거 과정(행정대집행)에선 불법이 난무했다.
현행법(행정대집행법)에 따르면, 대집행에 앞서 미리 문서로 계고해야 하며, ‘이행기한’을 정해야 한다. 이런 절차는 없었다. 대집행의 실행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대집행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해 있지만, 광진구는 새벽 3시경 야간집행을 시행했다. 행정대집행은 오전 8시까지 이어졌다. 대로변은 구청 차량과 지게차, 구청 직원과 용역, 경찰들이 에워싸 출근길 극심한 교통 체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또, 현장 집행책임자는 그가 공무원이라는 것을 표시한 증표를 휴대해 대집행 시 이를 이해관계인에게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노련은 당시 “실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폭언으로 노점상을 위협하며 폭력을 행사했다”고 전했다. 모두 불법이다.
이날 노점상 다수가 공무원, 용역직원으로부터 밀침, 눌림, 가격 등의 폭행을 당했다. 이들은 8일에 이어, 22일에도 노점에 들이닥쳤다. 역시 노점상들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져 부상 당했다. “구청 직원들은 노점상들을 향해 ‘버러지 같은 X들’, ‘병X’ 등 상스러운 폭언과 모욕을 일삼았다”고 민주노련은 전했다.
철거 이후에도 농성 중인 노점상들에게 찾아와 “30년이나 해쳐 먹었으면 되었지”라는 막말을 퍼부었다. 노점상들이 구청에 항의하러 갈 당시에도 구청 직원들은 인간방패가 되었고, 구청은 바리케이드까지 쳐놓고 불통으로 일관했다. “권한도 없는 용역들이 구청을 찾는 민원인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는 등 군부독재 시절을 연상시키는 반민주적 폭거가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민주노련에 따르면, 24일 노점 현장을 찾은 구청 직원들 손에 커터칼이 들려 있었다.
‘철거 반대’ 여론에 밀린 구청.. “적반하장, 인면수심”
서울 동부지역의 대표적인 상권의 중심이자 젊은 청년층이 많이 찾는 곳, ‘건대입구역’ 일대.
강제철거 당시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은 강제철거를 제지하는가 하면, 다친 노점상이 보이자 ‘119를 부르라’고 외치기도 했다. 이곳에서 수십 년간 먹거리, 놀거리 등을 제공해 온 노점의 강제철거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김 구청장이 브리핑 자리를 자처했다. 24일 통장협의회, 주민자치회 등 관과 밀접히 연관된 기관들만 불러 모아 ‘불법노점 정비’를 설파했다.
이 자리에서 김 구청장은 70여 곳의 노점 중 “남은 29곳의 노점도 반드시 정비하겠다”고 말했다. 보도정비, 버스정류소 시설 개선 등을 하겠다며 노점은 철거하고 지역개발 단계를 밟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았다. 김 구청이 브리핑한 이 날은, 광진구 공동대책위원회가 김 구청장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이에 대한 답변을 요구한 기한이다. 그러나 김 구청장은 공대위 요청엔 답하지 않은 채 관변 브리핑만 열었다.
구청장은 여론을 뒤집기 위한 방도로 노점상들의 폭력성을 조작하며 음해하려 했다. “구청장이 방문하는 지자체 맥주 축제장에 노점철거에 대한 항의 피켓을 들고 간 노점상이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한 것.
그러나, 현장에서 축제 부스를 운영한 상인들의 증언으로 김 구청장의 주장은 거짓임이 드러났다. 해당 노점상은 이유도 없이 현장에서 체포돼 이후 풀려났다. 민주노련은 “피해자를 가해자로 모는 적반하장, 인면수심의 범죄”라고 규탄했다.
노점상들과 광진지역 시민사회단체는 ‘건대입구역 노점상 생존권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노점박스를 탈취당하고 쫓겨난 건대입구역 생계 현장에서 천막농성하며 “▲불법·폭력 강제철거에 대한 구청장의 책임 인정과 사과 ▲주민을 모욕한 공무원 처벌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 ▲주민 세금을 폭력 용역에 낭비한 책임 공개 및 책임자 처벌 ▲노점상 생존권 문제 해결을 위한 즉각 대화와 협의”를 요구하고 있다.
또, ‘심야, 기습, 폭력적 철거인 행정대집행은 위법한 공무집행’을 한 것이라며 구청장과 직원, 용역직원 등을 상대로 직권남용죄와 직무유기죄, 그리고 절도죄, 재물손괴죄, (특수)폭행죄, 무고죄 등의 고소·고발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