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내몰린 시민들, 벼랑 끝 유럽 경제
최근 프랑스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는 연금 개혁에 대한 반발, 생활비 상승, 청년 고용 불안이 겹친 결과다. 이러한 불만은 국경을 넘어 확산되고 있다. 런던에서는 이민 정책과 주거난을 둘러싼 시위로, 독일에서는 연료 보조금 축소에 대한 시위로, 스웨덴에서는 식료품 가격 급등을 둘러싼 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겉으로는 배경이 달라 보이지만, 결국 생활비 압박과 불안정한 경제라는 공통의 원인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유럽 경제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막대한 재정 지출로 국가 부채가 이미 크게 불어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전쟁 지원 비용까지 지출되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 제재로 인한 에너지난까지 겹치며, 가스 가격 급등으로 보조금과 난방비 지원이 늘어나 재정 부담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유럽 각국은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풀었다. 독일은 단축근로 보전과 기업 보조금에 수백억 유로를 투입했고, 프랑스는 의료와 복지 인프라 확충에 막대한 지출을 단행했다. 영국은 ‘임시 해고(furlough)’ 제도를 통해 수백만 명의 급여를 대신 지급했다. 그 결과 국가 부채는 역사적 고점을 찍었고, 지금도 그 부담이 누적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프랑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강등했다. 이는 프랑스 역사상 최저 수준이다. EU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 규모를 가진 프랑스는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이 약 113%에 달하며,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이어 EU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독일의 실업률은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8월 기준 실업자 수는 300만 명을 넘어 전체 인구의 6.4%에 달한다. 독일 경제는 2023년 –0.3%, 2024년 –0.2%로 2년 연속 역성장을 기록했으며, 올해도 부진하다. IMF는 독일이 3년 연속 성장 정체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또한 불안하다. 국가 부채는 GDP 대비 96%에 달하며, 정부 차입 비용이 급증하면서 30년 만기 국채 금리가 5.5%를 넘어 미국과 그리스보다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텔레그래프는 “1976년 IMF 구제금융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6월 열린 나토(NATO) 정상회의의 ‘GDP 대비 5% 국방비 확대’ 결정은 유럽을 더욱 수렁으로 빠뜨리고 있다. 이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직접적인 요구에서 비롯됐다. 트럼프는 나토 동맹국들에게 기존 2% 목표를 넘어 GDP의 5%까지 방위비를 늘리라고 압박했고, 나토 정상들은 이를 공식적으로 수용했다.
문제는 이러한 국방비 확대가 무기 구매로 이어져 사실상 미국 군수산업의 수익 확대와 직결된다는 점이다. 2022~2023년 기준 EU 국가들의 방위 장비 발주 중 약 63%가 미국 방산업체에 돌아갔다. 미국산 군사무기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전쟁이 장기화되는 한 유럽의 국방비 증액과 무기 구매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결국 유럽 각국의 국민이 치르게 된다. 복지 지출은 축소되고 세금은 늘어나며, 난방비와 의료비 부담은 커지지만 증액된 국방 예산은 미국 군수산업의 매출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유럽이 지켜야 할 것은 미국과 트럼프의 요구가 아니라 유럽 자국민의 생존이다. 유럽 각국 정치지도자들이 ‘안보’를 명분으로 군비 지출을 정당화하는 동안, 시민들은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해법은 분명하다. 전쟁을 서둘러 종식시키고, 늘어난 국방비를 복지와 산업 재건에 돌리는 것이다. 결국 유럽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이 살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