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시위, 민주화 운동인가? 미국의 ‘색깔혁명’ 공작인가?
지난 8일 네팔에서 청년층의 분노가 폭발한 지 엿새 만에 정권이 무너졌다. 9일 K.P. 샤르마 올리 총리가 사임했고, 12일 전 대법원장 수실라 카르키가 임시총리로 지명됐다. 사망자는 70명을 넘었다. 불씨는 부패와 특권, 청년 실업, 물가, 그리고 정부의 사회관계망(SNS) 차단이라고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의 공작으로 친중 정권을 몰아낸 ‘색깔혁명’이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올리 정권은 집권 이후 중국과의 밀착을 강화했다. 지난해 말에는 일대일로(BRI) 협정에 서명했고, 불과 며칠 전에는 베이징 군사 열병식에 참석해 시진핑 주석과 가까운 모습을 연출했다.
네팔 시위대는 시진핑 초상화를 불태우며 반중 정서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특히 짜여진 듯한 정권 교체와 너무 빠른 전개는 “이것이 자생적 민주화인가, 아니면 미국의 ‘색깔혁명’ 공작인가”라는 물음을 남긴다.
첫 번째 의혹은 ‘엿새’라는 믿기 어려운 속도에서 시작된다. 시위가 폭발한 지 나흘 만에 총리가 권좌에서 물러났고, 이틀 후 임시 정부 수반이 지명되는 초고속 권력 이양이 이뤄졌다. 이러한 ‘사전에 짜여진 듯한’ 일사천리의 진행은 내부적 요인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다소 낯선 패턴이다. 역사적으로 외부의 개입이 있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속도감이라는 분석을 부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두 번째는 ‘지도부 없는 저항’이라는 미명 아래 운영된 정교한 온라인 지휘 체계다. 정부가 SNS를 차단하자 시위대는 디스코드(Discord) 등의 개방형 플랫폼으로 즉각적으로 이동해 소통하고 집결했다. 보도에 따르면, 일부 채널에서는 투석과 화염병 사용 등 과격한 행동까지 실시간으로 지시했다고 한다. 이러한 개방형 플랫폼은 해외의 어떠한 세력도 쉽게 접근하고 선동적인 메시지를 흘릴 수 있는 최적의 통로가 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실시간으로 현장을 조종할 수 있는 기술적 여지는 충분히 열려 있다.
세 번째이자 가장 강력한 의혹은 ‘제도권 밖의 권력 이양’ 과정이다. 외신들은 군 수뇌부와 정치권, 시위대 측이 접촉하는 가운데 수실라 카르키 전 대법원장이 “시위대 측 추천 인사”로 임시 총리에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군이 중립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위 세력과의 ‘협의’를 통해 새로운 권력을 구성하는 길을 열어주었다는 해석은, 이번 사태가 단순한 민중의 항쟁을 넘어선 다른 무엇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의혹은 정황에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 의회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국가민주주의기금(NED)이 2024회계연도에 네팔에 약 174만 달러의 기금을 배정한 사실은 공개된 기록이다. 물론 이 기금은 공개된 ‘민주주의 증진’ 프로그램이겠지만, 이러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자금 흐름이 현지 시민사회 단체의 역량과 담론을 특정 방향으로 형성하는 ‘토양’이 되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을까? 이번 시위와 NED의 직접적인 송금 연관성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외부 재원이 내정에 개입할 수 있는 구조적 통로가 존재함은 부인하기 어렵다.
또 하나의 우연은 국제적 연동 현상이다. 네팔과 비슷한 시기 인도네시아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고, 현장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밀짚모자 해골기’가 등장했다고 한다. 하나의 대중문화 유행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국가에서 비슷한 시점에 유사한 상징과 방식을 통해 시위가 확산되는 양상은, 마치 하나의 ‘교본’을 공유하는 여론전의 모습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물론, 네팔의 부정부패와 경제적 어려움은 실재할 수 있고, 시위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를 외부의 공작으로만 환원하는 것은 네팔 국민의 고통과 저항 의지를 무시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부의 문제’와 ‘외부의 공작’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취약한 내부 상황은 외부의 개입이 효과를 발휘하기 가장 좋은 비옥한 토양을 제공하기 마련이다.
‘윤어게인’과 미국 극우 마가(MAGA) 세력도 ‘중국에 의한 부정선거’를 주장하면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외부의 눈에는 이들도 민주화 운동으로 비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정권을 물리친 시위’라고 해서 무턱대고 ‘민주주의 혁명’으로 단정하는 선급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