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특집②] 일본 본토 방어의 전초기지로 변한 한반도

과연 누가 조국을 해방시켰나? ②

2025-08-14     편집국
1940년대 말 제주 서남부 알뜨르 비행장에 늘어서 있는 일본군 무기들.

1945년, 일본 제국주의는 패망이 눈앞에 다가오자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며 전략의 무게중심을 한반도로 옮기기 시작했다. 전쟁 초기에 식민지로만 간주되던 한반도는 이 시기 들어 ‘일본 본토’의 연장선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방어 전략을 넘어 ‘조선사수론’이라는 이름의 결사항전론으로 나타났다.

그 상징적 조치가 바로 17방면군 사령부의 한반도 설치였다. 1945년 4월, 일본은 이 부대를 조직하고 37만 병력을 한반도 전역에 배치했다. 평양에서 대전, 부산으로 이어지는 방어축이 형성되었고, 병참과 작전기지가 구축되었다. 특히 제주도는 태평양 전선의 미군 북상에 대비한 전략 요충지로 전환되며 비행장과 대규모 병력기지가 집중적으로 건설되었다.

이처럼 한반도는 일본의 ‘본토방위선’에 편입되며 열도와 같은 수준의 결전지를 의미하게 되었다. 이는 단순한 전술상의 판단이 아니었다. 일제는 한반도를 제국 최후의 방어선이자, 천황제 체제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로 간주한 것이다. 헌병과 경찰 병력은 치안유지 명목 하에 증강되었고, 우리 민족을 전시체제에 동원하기 위한 ‘황국신민’ 교육이 강화되었다. 한반도의 청년과 노동자들은 군사기지 건설과 전투지원에 강제로 동원되었으며, 이는 우리 민족에게 또 하나의 고통을 안겼다.

이 시기 일제가 한반도에 남긴 병력과 군사시설의 규모는 단순한 식민지 통제를 넘는 것이었다. 일본은 한반도를 '전략적 전방'으로 전환했고, 만약 미군이 상륙해올 경우 이곳에서 결사항전을 벌이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는 제국의 마지막 발악이었으며, 한반도는 그들의 최후 결전지로 지목되었다.

하지만 이 전략은 실현되지 못했다. 8월 소련의 대일 참전과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세, 그리고 한반도 전역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전민족의 항쟁이 맞물리며 일본의 방어선은 허무하게 붕괴되었다. 한반도는 단지 ‘해방을 받은 땅’이 아니었다. 제국주의가 끝까지 움켜쥐려 했던 곳이자, 오히려 그 야망이 꺾인 역사적 전환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