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45년과 미국의 기밀문서 ‘체로키 파일’

1. 외세에 의한 학살 결정 진상, 여전히 미궁 속

2025-05-26     고승우 언론학 박사
▲전두환씨가 5·18 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 개입설'을 직접 언급한 내용이 담긴 미국 기밀 문서가 지난 2018년 공개됐다. 주한미국대사관이 1980년6월17일 국무부에 보고한 문건에는 '전두환은 80년 6월4일 주한 미국 상공회의소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시신 22명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 이들 모두 북한 간첩(침투 요원)이라고 말했다'(He said 22 bodies could not be identified, all of whom might be North Korean infiltrators)고 기록돼 있다. 2018.08.20. (사진 = 5·18 기록관 제공 미 체로키 파일 일부 캡쳐)

‘광주’가 45년이 흘렀지만 그 진상 가운데 핵심적인 부분은 여전히 어둠속에 가려 있다. 미국 정부가 왜 광주항쟁 무력 진압을 한국군이 하도록 승인했는지, 신군부의 누가 최초 발포 명령권자인지 등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미국의 비밀주의, 신군부와 그 동조 세력이 반역사적 작태가 자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의 비극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외세에 의해 광주시민의 학살 결정이 내려졌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널리 공개된 사실이다. 미국과 광주항쟁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당시 지미 카터 행정부가 한국의 정세를 모니터링하기 위해 만든 비밀 통신망 자료인 체로키 파일에서 상당부분 확인된다.

이 파일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암살 이후 미국 국무부, 백악관, 국방부, CIA 등 최고위급 기관들이 주한미대사관과 공유한 비밀 전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미국의 개입과 신군부와의 관계를 추적할 수 있는 핵심 자료다.

카터는 1980년 5월 신군부가 광주에서 학살만행을 도발적으로 저질러 시민 무장군이 자위적 차원에서 조직된 것에 대해, 미 국익을 앞세워 광주 무력진압을 위한 군사작전을 승인해 전두환 일당이 광주학살 만행을 자행하게 만들었다.

미국은 광주항쟁이 지속되던 1980년 5월 22일 지미 카터 대통령 지시로 리차드 홀부르크 국무부 차관보, 브래진스키 안보 보좌관 등이 회동한 긴급안보회의를 백악관에서 열어광주 항쟁을 한국군 특전사가 무력으로 진압해야 된다고 결정, 당시 주한미군사령관 위컴에게 지시했다.

위컴은 한미연합사 소속의 한국군 20사단의 네 개 연대를 ‘폭동진압(Riot Control)’용으로 허용해 달라는 신군부의 요청을 승인해주었으며, 데프콘3 수준의 경계태세를 발동해 신군부의 광주 진압을 전후방에서 지원해주었다. 카터의 결정 후 5일 만에 한국군 9사단이 광주시내로 진입해 다수의 시민군을 살해하고 광주항쟁을 진압했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체로키 파일은 1996년 미국 언론인 팀 셔록이 정보공개법(FOIA)을 통해 처음 공개했으며, 2017년 5·18 기록관에 59개 파일(3,500여 페이지)이 기증되었다. 그러나 이 자료 속의 백악관 광주 무력 진압 결정 회의록, 미 국방부와 군 최고 사령부 관련 자료 등 핵심 내용은 여전히 비밀로 분류되어 해당 부분에 먹칠이 되어 지워져 있다. 그 결과 인권 대통령이라고 불리다 사망한 카터가 반인도주의적인 시민학살을 유발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군사행동을 결정한 이유 등은 아직껏 베일에 싸여 있다.

국내 일부 언론은 광주의 진실을 발굴하기 위해 광주항쟁 당시 미국무부나 주한미대사관 관리 등을 지낸 인물 등을 찾아 인터뷰 하는 모습을 방영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실의 문은 여전히 닫혀 있다. 미국 정부는 공직자가 업무 추진 과정에서 취득한 국가기밀을 무단으로 공개할 경우 법적, 윤리적, 국가안보상의 문제가 발생한다며 처벌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스파이 행위 방지법(Espionage Act)에 따라 기밀 정보 유출은 중범죄로 처벌할 수 있고 미 정부 직원은 보안서약(Non-Disclosure Agreement, NDA)을 위반하면 민·형사 책임을 지게 된다. 미국은 공익을 위한 내부고발(whistleblowing)을 대부분 기밀 유출로 처벌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군의 포로에 대한 학대, 외국 정부에 대한 미국의 도청과 같은 외교 기밀 폭로 등의 경우 범죄자로 몰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