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사랑의 공동체, 28시간의 남태령
끊임없는 시민행렬에 트랙터 연행 무산... 130년 만에 서울 입성한 농민군의 영혼 조선소 하청노동자에 이어 전태일의료센터까지 퍼진 연대의 해일 전장연 항의행동에도 수백명 결합... 시민 압박에 전장연 대표 연행 저지돼 ‘남태령 전투’는 역사의 전환점... “조중동 식 갈라치기와 낙인찍기 더 이상 안먹힐 것”
지난 21일, 남태령에서 경찰의 차벽에 막혀 고립된 농민들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인파로 포근히 감싸였다.
당일 오후 2시경만 해도 전국농민회총연맹이 조직한 전봉준투쟁단 수십 명에 불과했던 시위대가 10시가 되자 순식간에 수천명으로 불어난 것이다.
남태령 길목마다 시민들이 보내온 팥죽, 피자, 햄버거, 떡볶이, 김밥, 호빵 등 요깃거리와 함께 손난로, 여성용품 등이 쌓였고, 몸을 데울 수 있는 난방 버스까지 등장했다.
끊임없는 시민행렬에 트랙터 연행 무산...
130년 만에 서울 입성한 농민군의 영혼
결국 견인차와 지게차를 앞세워 농민들의 트랙터 37대를 연행하려던 경찰의 계획은 무산됐다.
지하철이 끊겼음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시위대와 함께 자리를 지킨 수천 명 시민의 시선에 움츠러들었기 때문이었다. 농민들에 연대하는 시민들과 경찰들은 그대로 밤샘 대치를 이어갔다.
22일 아침이 되자 전국 각지에서 밀려온 시민들은 더 불어났고, 오후 2시경 1만 명에 육박해 남태령역 일대를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채웠다.
그렇게 '윤석열 체포 구속, 농민 행진 보장 촉구 시민대회'가 이어졌고,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를 신청했다.
현장의 열기에 힘입어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 야당 의원들도 현장을 찾아 경찰을 압박했다.
여론에 밀린 경찰은 결국 22일 오후 4시경 차 벽을 열었다. 이에 전봉준투쟁단은 오후 6시 40분쯤 윤석열이 칩거한 한남 관저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전봉준투쟁단을 이끌었던 전국농민회총연맹 하원오 의장은 “130년 전 서울로 향하던 수많은 농민군이 이 고개에서 희생돼 한성 땅을 밟지 못했으나 130년 만에 전봉준 농민군의 꿈을 이뤘다”며 “시민들이 불가능했던 길을 열었다”고 감동을 전했다.
조선소 하청노동자에 이어 전태일의료센터까지 퍼진 연대의 해일
연대의 행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남태령 시위를 기점으로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에 계좌후원이 쏟아진 데 이어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에게도 후원금이 물밀 듯 들어왔다.
당초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이 속한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하청지회는 지난달 20일부터 임금체불 문제 해결과 노조 활동 보장 등을 촉구하며 현장에서 단식 농성을 진행해왔다. 지난달 29일에는 국회 앞으로 농성장을 옮겼으나 계엄이 터지며 금방 거제로 내려가야 했다.
이러한 사연이 SNS 상에서 공유되기 시작하며 파업기금 후원은 12월 22일 70여 건으로 늘어났고, 23일 400건, 24일 2,000건, 25일 400건에 달하는 기염을 토했다.
후원에 나선 대부분은 남태령 시위에 연대하거나 동조한 2030 여성들로, 이들의 입금자명은 ‘남태령에서온소녀’ ‘남태령에못간마음여기’ ‘남태령에못간소녀’ ‘남태령연대’ ‘남태령응원봉’ ‘저의1시간을드릴게요’ ‘남태령에간통영딸’ 등이었다.
연대의 손길은 일본 니토덴코의 자회사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구미공장 옥상에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1년 가량 농성중인 박정혜·소현숙 두 여성 노동자에게도 뻗쳤다.
남태령 시위 직후 최근 사측이 농성장을 단수시키면서 물이 부족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름 모를 이들이 보낸 생수가 삼삼오오 쌓여 3천 통 넘게 쌓였다. 더불어 투쟁 후원금도 300건 가량 들어왔다.
민주노총·한국노총에 더불어 민간 공익병원인 녹색병원과 원진재단 등이 주도하여 영세사업장·비정규직 등 의료 취약 노동자들을 위한 의료센터를 마련하기 위해 시작된 전태일의료센터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전태일의료센터는 2027년 개원을 목표로 후원을 받고 있는데, 지난 22일에만 후원 2727건이 몰려 2억7820만원을 달성해 홈페이지가 마비될 수준이었다. 연이어 23일에도 2795건에 달하는 2억9790만원 가량의 후원이 몰렸다.
전장연 항의행동에도 수백명 결합...
시민 압박에 전장연 대표 연행 저지돼
직접행동을 통한 연대도 멈추지 않았다.
지난 24일 오전 8시 서울 안국역 승강장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항의행동은 전장연 활동가 십수명에 더해 2030여성 300여명의 참여로 이뤄졌다.
수백명이 죽은 듯 누워 항의하는 ‘다이인’ 퍼포먼스가 안국역 승강장을 가득 채웠고, 여느때처럼 공사 직원들은 박경석 전장연 대표를 강제연행하려 했으나 “시민을 보호하라”고 외치며 압박하는 시민들에 의해 제지당했다.
남태령 시위에서 발생한 연대의 파도는 농민을 거쳐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인 등 더 많은 소수자들을 품어가는 해일이 되고 있다.
‘남태령 전투’는 역사의 전환점...
“조중동 식 갈라치기와 낙인찍기 더 이상 안먹힐 것”
이에 민들레 전지윤 편집위원은 “비결은 단순하다”며 “그동안 저들(국민의힘 및 조중동 족벌언론으로 대표되는 수구 우익)이 끝없이 갈라치고 서로 대립시켰던 노동자, 농민, 청년,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들이 모두 함께 서로의 요구와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지지하면서 함께 한 것”이라 지적했다.
그러면서 “‘남태령 전투’는 훗날 ‘2024 빛(응원봉)의 혁명’ 역사에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며 “조선일보는 이번 남태령 전투의 성과와 상징성에 다시 민주노총과 ‘운동권’ 마녀사냥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저들은 ‘전농=진보당=민주노총=반미종북 주사파=간첩소굴=낡은 운동권=전문시위꾼’이라는 식의 낙인찍기를 강화하겠지만 낡은 주문은 더 이상 먹히지 않을 것이고 변화는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