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의 최근 상황 어떻게 봐야 하는가

2021-08-25     안광획 4.27시대연구원 연구위원

다시금 아프간 민중들이 미제국주의를 축출하고 나라의 자주권을 되찾은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리고 아프간 민중들의 자주적인 힘으로 앞으로의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발전을 이뤄내길 기원한다.

머리말

지난 8월 15일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Taliban)이 카불에 무혈입성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의 괴뢰정권은 종말을 고했다. 지난 7월에 미군이 바그람 기지에서 하룻밤 사이에 굴욕적으로 패주하면서 괴뢰정권의 몰락은 예견된 일이었지만, 탈레반의 진격과 아프간 괴뢰정부 정규군의 와해 속도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빨랐다.

사이공의 몰락과 카불의 몰락

결국, 최소 6개월은 가지 않을까 했던 괴뢰정권은 미군 철수 한 달도 못되어 몰락했다. 또한, 괴뢰정권 수괴(전 대통령)였던 아쉬라프 가니(Ashraf Ghani)는 한국전쟁 당시 한강다리를 폭파시키고 대전을 거쳐 부산으로 도망갔던 이승만을 연상케 하듯, 아프간 인민들을 버리고 자기 재산을 4대의 차에 다 채우지도 못한 채 허겁지겁 도망갔다. 그리고 지금도 카불 공항은 탈레반 과도정부~탈레반 재건정부의 부역자 숙청을 피해 피난가려는 행렬로 아수라장이나 다름없다. 그야말로 ‘사이공의 몰락’의 재림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정치 상황과 관련하여 한국사회에서는 갑론을박이 오가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은 전적으로 미제국주의의 책임이며 그로 인한 참패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에 대해서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 보고자 한다.

1.배경: 침략과 전쟁으로 얼룩진 아프가니스탄 현대사(1979~1996)

현재 아프가니스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는 그야말로 제국주의 침략과 내전으로 얼룩진 비극의 역사이다. 현대사의 비극 속에서, 아프간은 자주적으로 근대화를 이룩할 기회를 잃었고 오늘날 ‘무자헤딘’ 또는 ‘탈레반’ 등의 무장단체로 각인되는 상황으로 전락했다.

19세기 이래로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프가니스탄은 1919년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통해서 독립을 쟁취하였고, 1926년에 아프가니스탄 왕국이 들어섰다. 그러다가 3대 국왕 무함마드 자히르 샤(Mohammed Zahir Shah, 재위 1933~1973) 치세에 이르러 무함마드 다우드 칸(Mohammed Daoud Khan) 수상이 1973년에 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을 폐지하였고,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을 세웠다.

싸우르 혁명을 일으키는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
아프가니스탄 민주공화국 국기

다우드 칸은 대외적으로는 소련과 친선관계를 맺었으나, 내부적으로는 반공노선을 표방하며 국가혁명당을 기반으로 독재를 펼치고 진보정당을 탄압했다. 결국, 1978년 4월 27일에 진보정당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PDPA)이 군부와 협력하여 싸우르 혁명을 일으켜 다우드 칸의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사회주의 체제(아프가니스탄 민주공화국)이 들어섰다. 인민민주당은 강력한 사회개혁을 표방하여 도로 및 철도 건설, 문맹퇴치, 토지개혁, 봉건제 철폐, 여성인권 및 소수민족 권익 보장 등 제반의 민주개혁과 나라 전반의 근대화를 주도하였다.

하지만, 인민민주당 정권의 민주개혁은 전근대 무슬림 율법을 교조적으로 신봉하던 수구세력의 반발을 샀다. 수구세력은 1978년 10월에 인민민주당 정권의 개혁에 반대하는 내란을 일으켰다. 이들 반군이 바로 아프간 무장반군 무자헤딘(Mujahideen)의 근원이다. 이렇게 아프가니스탄의 길고 긴 전쟁의 서막이 오른 것이었다. 내전이 격화되면서, 반군 토벌에 어려움을 겪던 인민민주당 정권은 아프간-소련 상호협력조약에 의거하여 소련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에 소련은 붉은 군대를 1979년 12월 27일에 파견하였다.(물론, 이 과정에서 당시 아프간 대통령 하피줄라 아민이 소련에 의해 제거되고 바브라크 카르말로 교체되는 과정을 겪었다.) 이른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1979~1989)이 바로 이것이다.

무자헤딘
무자헤딘을 키운 전 CIA국장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와 미제가 키운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라덴

소련의 아프간 인민민주당 정권 지원에 대하여, 냉전 시기 맞상대였던 미제는 즉각 반발하며 침략전쟁이라 비난하는 한편, 중앙아시아로의 소련의 세력 확대 방법을 막을 방법을 찾았다. 당시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Jimmy Carter)는 중앙정보국(CIA)을 통하여 아프간의 무자헤딘을 지원하여 소련에 대항시킬 계략을 세웠다. 이에 따라,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ew Brezinski) CIA 국장은 50억 달러에 육박하는 자금을 투입하여 무자헤딘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였다.(이른바 ‘사이클론 작전(Operation Cyclone)’)*

*사실, 미제의 아프간 침략은 소련의 아프간 개입 이전(정확히는 싸우르 혁명으로 인민민주당이 집권한 때)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아프간에서 반제국주의 사회주의 국가가 들어서는 것을 원치 않았던 미국은 CIA의 공작을 통해 인민민주당 정권의 내부 인사들을 포섭하여 정권 분열을 꾀하며 소련의 개입을 유도하였다. 일설에서는 본문에 나온 소련의 하피줄라 아민 제거-바브라크 카르말로의 교체 과정에서도 미국 CIA의 역공작이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외에도 아프간 내 수구세력과 극우 지방군벌들을 규합하여 본문에서 서술한 무자헤딘을 조직하고 키운 것 역시 CIA였다. 황성환, 『아메리카 제국의 몰락』 상, 민플러스, 2018, 220~221쪽.

이와 더불어, 미국은 아프간 주변의 두 수니파 무슬림 국가인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를 끌어들여 무자헤딘을 지원케 하였다. 이 과정에서 파키스탄은 CIA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아 파키스탄 정보국(ISI) 명목으로 무자헤딘에 무기를 제공하였으며, 자국 내 불만세력과 해외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을 포섭하여 무자헤딘에 입대시키고 훈련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무자헤딘에 막대한 양(매년 6천만 달러)의 자금을 지원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빈 라덴 가문이 적극적으로 주도하였다. 특히, 훗날 9·11 테러를 주도했다고 알려진 알카에다의 수괴 오사마 빈 라덴이 이 시기에 미국 CIA와 깊게 교류하며 아프간에 무자헤딘으로 참전하기까지 한 바 있다.

이와 같이, 미국은 무자헤딘을 은밀히 지원하는 방법으로 아프간에 불법 개입했다. 여기서부터 미제국주의의 아프간 침략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1970년대 아프간 전쟁은 단순한 소련-미국 간의 냉전 대리전이 아니라 미제국주의의 은밀하고 계획적인 추악한 침략전쟁이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무자헤딘은 소련-아프간 전쟁 당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파키스탄의 지원을 받아 세력을 키우며 소련과 아프간 사회주의 정권에 대항하였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인민민주당 정권이 실현하려 했던 민주개혁과 근대화는 완전히 무위로 돌아갔고, 전 국토는 오랜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

아프간에서 철수하는 붉은군대와 1996년에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

결국 1989년에 이르러 오랜 전쟁으로 지친 붉은 군대가 철군하였다. 여기에다가 얼마 안 가 소련을 위시한 사회주의권 역시 1991년에 붕괴하면서 인민민주당 정권은 강력한 지원세력을 잃고 혼란에 빠졌다. 무자헤딘은 이 기회를 틈타 인민민주당 정권을 공격하여 1996년에 전복시켰다.* 아프간을 장악한 무자헤딘(아프가니스탄 이슬람국)은 민족모순(파슈툰족·타지크족 등)과 권력투쟁으로 내부분열을 거듭하였다. 이 과정에서 무자헤딘 내에서 전근대적인 무슬림 율법(샤리아)과 파슈툰족 전통관습에 따라 사회 전반을 통치할 것을 내건 탈레반이 등장하였다. 파슈툰어로 ‘무슬림 율법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뜻하는 탈레반은 무력을 통하여 혼란스런 정국을 정리하고 1996년에 아프간 전역을 장악하였다.(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

*황성환, 앞의 책, 218~224쪽.

이렇듯, 미제국주의의 아프가니스탄 침략의 근원은 40여 년 전 소련-아프간 전쟁부터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아프가니스탄은 자주적인 발전을 심대하게 침해당하고 오늘날 오랜 전쟁으로 폐허가 된 최빈국으로 전락했으며 무슬림 극단주의가 준동하게 되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약 아프간 인민민주당 정권의 민주개혁이 무자헤딘으로 대표되는 내부 적폐와 미제국주의로 대표되는 외세의 방해와 개입을 이기고 성공했다면 오늘날 아프간은 발전된 국가가 되었을 것이며 민중들 역시 행복한 삶을 영유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당시 미제가 냉전 상대인 소련을 곤경에 빠뜨리고 아프간을 식민지로 삼을 목적으로 전략적으로 키운 무자헤딘이 훗날 자신들을 패퇴시키고 몰락에 빠뜨린 탈레반이 되었다. 즉, ‘새끼 고양이인 줄 알았으나 키우고 보니 범(호랑이) 새끼’였던 셈이다.

2.현대 미국의 아프간 침략전쟁사(2001~2021)

그러다가, 2000년대 초반(2001년)에 미국은 9·11 테러에 대한 보복을 천명하여 ‘테러와의 전쟁’을 내걸며 아프간을 침략하였다. 명목상으로는 9·11 테러를 주도했다고 알려진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을 탈레반 정권이 도피시켜 줬다는 것과, 전근대적 율법에 따른 통치로 아프간 사회 전반의 인권이 침해당하는 것을 들어 개입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아프가니스탄의 석유와 희토류 등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독차지하고 러시아-이란-중국 사이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인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여 러시아-이란-중국 3국을 견제하고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패권을 행사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황성환, 앞의 책, 239~241쪽.

아프간을 침략하는 미군

아프간 침략 이후, 미국은 강력한 군사력으로 단숨에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무자헤딘 잔당이자 반 탈레반 친미 부역세력인 ‘북부동맹’을 근간으로 하는 괴뢰정권(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을 세웠다. 이렇게 미제의 아프간 침략은 순조롭게 이뤄지나 싶었다.

하지만, 미국은 아프간 상황에 대해서 그야말로 무지했으며 전쟁 및 점령 기간에 폭력으로 일관했다. 전쟁 과정에서의 민간인 학살, 폭격, 고문 등 각종 전쟁범죄와 만행은 아프간 민중들의 반발을 샀다.* 게다가, 점령 후에 세운 괴뢰정권은 매우 무능할 뿐만 아니라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었다. 아프간 괴뢰정권의 실질적 통치력은 카불과 그 주변에만 유효했으며, 대다수의 지방은 다양한 부족과 군벌이 난립하여 통제되지 않았다. 또한, 탈레반에 맞선다는 아프간 괴뢰군의 사기와 훈련 상태 역시 익히 알려진 대로 오합지졸에 가까웠다. 즉, 미군 점령-괴뢰정권기는 이전 시기인 탈레반 정권 때보다 훨씬 못한데다 아프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던 것이다.

* 2017년 1월 5일 미국의 유명한 외교문제연구기관인 대외관계협의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가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동안 미국군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예멘, 소말리아, 파키스탄에 투하한 정밀유도폭탄과 정밀유도미사일은 모두 26,171발이었는데, 그 가운데 1,337발이 아프가니스탄에 투하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2018년 11월 8일 미국 브라운대학교 왓슨국제-공공문제연구소(Wat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and Public Affairs)가 발표한 보고서에 서는 침략전쟁 기간 동안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민간인 희생자는 24만~26만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호석, 「점령군 철수, 친미예속군대 와해, 친미부역정권 붕괴」, 『자주시보』 2021.08.23.(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56631)

2019년 9월 난가르하르 산지마을에서 미군의 드론 폭격으로 살해당한 농민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다.)

여기에다가 미제가 이라크(2003~2010), 리비아(2011~), 시리아(2011~) 등 서아시아 각지에 분수에 넘치게 전선을 확대하면서 미국의 군비 부담은 크게 증가하였다. 또한,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2008~2010년대 전세계적 금융위기와 경제침체-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이어지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동요와 미국 자국경제의 파탄은 서아시아 전선 유지에 악영향을 미쳤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미국의 식민지배와 오랜 전쟁으로 인한 기근에 분노한 아프간 민중들은 차라리 미제국주의를 위시한 외세에 맞서 싸우는 세력인 탈레반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지지하였다. 아프간 민중들의 지지는 탈레반의 부활의 큰 동력이 되었다.

미국의 아프간 침략 풍자화: 수렁에 빠진 미국

20여 년간의 무의미한 침략전쟁 속에서 미제가 얻은 것은 단지 자신들이 이전에 키웠던 알카에다의 수괴 오사마 빈 라덴을 ‘9·11 테러의 주범’으로 지목해 사살한 것 말고는 없었다. 그리고 침략전쟁의 대가는 앞서 전술한 바와 같이 미제의 참패와 괴뢰정권의 빠른 붕괴였다. 결국, 이번 아프간에서의 미제의 ‘사이공 몰락의 재림’ 격의 참패는 오랜 침략전쟁의 인과응보인 것이다.

3.미제국주의와 그 부역자들은 인권에 대해 논할 자격이 없다

이른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실상: 제국주의 침략전쟁

한편, 국내의 일부 진보세력 또는 좌파의 경우 이번의 탈레반의 아프간 전역 장악/해방에 대해서 아프간 사회 전반의 소수자 인권 후퇴를 들어 우려하는 의견을 보내고 있다. 여기에다가 아프간 난민 수용 문제와 관련하여 벌써부터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의 진보 및 좌파 일각의 이와 같은 분석이 틀린 것만은 아니다. 전술했듯이, 탈레반 자체가 전근대적 무슬림 율법(샤리아)를 교조적으로 신봉하여 그에 따라 사회를 통치하고자 한 집단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침략 이전 탈레반 정권기에 여성·아동·소수민족 등 소수자 및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침해가 큰 논란이 된 바 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히 해야 할 것 같다. 인권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인권침해는 제국주의 침략/식민지배에 따른 자주권의 박탈 및 침해이다. 아무리 여성인권을 외치고 소수자 및 사회적 약자 인권 증진을 외친다 하더라도 식민지배(군사적 직접점령 또는 괴뢰정권 통치) 하에선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오랜 전쟁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파탄과 식민지배로 인한 억압과 착취는 근본적으로 해당 지역 민중의 생존권을 심하게 침해한다.*

*이진규, 『새시대 정치학원론』, 조국, 1992, 348~352쪽.

이게 이해가 어렵다면, 일제강점기를 생각해 보면 쉽다. 암만 1920~30년대에 도시(경성)를 중심으로 신여성이 등장하고 여성의 사회참여가 점차 늘어났다지만 본질은 어떠했는가? 대다수 민중은 일제 식민지 체제에서 단순한 ‘2등 신민’에 불과했으며 억압과 착취의 대상에 불과했다. 당장에 일제의 조선 여성들에 대한 성노예 만행(이른바 ‘일본군 위안부’)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나라의 자주권이 없으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인권 역시 보장받을 수 없다.

더군다나, 미제국주의의 20년간 아프간 점령기에 아프가니스탄 사회 전반의 인권이 증진 되고 생존 문제가 해결 되었느냐고 하면 ‘전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수도 카불을 중심으로는 일정 부분 근대적 정치/사회 체제나 인권보장이 구색 맞추기 식으로 적용되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절대 다수의 농촌 지역에서는 여전히 전근대적 율법과 풍습이 통용되고 있었으며, 오랜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로 인한 빈곤은 전혀 해결되지 못했다.

게다가 미국이나 괴뢰정권은 해당 문제해결에 있어서 그야말로 의지도 없었고 능력도 없었다. 애초에 원인을 따져 보면 앞서 언급했듯이 냉전 시절 탈레반 전신인 무자헤딘을 조직적으로 키워서 아프간 인민민주당 정부를 파탄내고 근대적 교육/행정체계를 철저히 파괴한 것은 미국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냉전 대결과 서아시아 패권 장악을 위해 무자헤딘으로 대표되는 무슬림 극단주의 반군을 육성하고 내전을 심화시킴으로써 아프간의 전반적인 발전을 심대하게 침해해 놓은 원초적 책임은 미제국주의에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의 사회기반이 붕괴하고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미제와 그 부역자들이 아프간의 인권에 대해서 논하거나 전근대적 체제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에 적반하장이다. 또한, 침략전쟁 과정에서 미제가 자행한 광범위한 자주권 및 인권 침해를 은폐하는 기만적 행위나 다름없다.*

*백철현, 「미제의 아프간 침략상을 은폐하고 패배를 위무하는 언론의 위선과 모순 해결의 순서, 방법에 대하여」, 『노동자정치협회』, 2021.08.21. (http://mlkorea.org/v3/?p=10667)

오히려 미제국주의로 대표되는 외세가 아프간에서 축출되면서 그나마 나라의 자주권을 되찾고 스스로 발전을 이룰 최소 조건을 겨우 마련했다고 볼 수 있겠다.

마치며: 앞으로의 아프간에 대한 짧은 전망

물론, 현재 다시금 아프간 전역을 장악하고 정권을 되찾은 탈레반이 극적으로 사회 전반의 인권을 향상시킬 지에 대해서는 의심스럽다. 비록 탈레반은 공식적으로는 유화책을 펼치고 미제국주의 부역세력에 대해서도 사면령을 내리며 정상국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이후에도 현재의 노선이 이어질 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 탈레반 과도정부에게는 전후복구 및 안정화 외에도 대외관계 문제나 아프간 내부에서 펀자시르 지역을 중심으로 저항하고 있는 일부 부역세력에 대한 처리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참조: 「[전문번역] 카불 장악 후 탈레반의 첫 기자회견 질의 응답」, 『민중의 소리』 2021.08.19. (https://www.vop.co.kr/A00001592177.html)

하지만 이와 같은 문제들은 아프간이 자주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지, 인권 탄압을 우려 훈수를 두거나 개입을 시도하는 것은 불필요한 내정간섭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현재 아프간 민중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인권증진 문제보다는 오랜 침략과 내전의 폐허를 빠르게 복구하고 자주적인 발전을 꾀하여 사회 전반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것이 되겠다.

압둘 가니 바라다르-왕의 회담, 2021.07.28.

또, 한번 정권을 잃었다가 절치부심하며 힘을 키운 끝에 이번에 다시 정권을 되찾은 탈레반도 이전부터 중국, 러시아, 이란 등의 국가와 관계를 확대해 왔던 것을 보면, 단순히 이전의 전근대적 통치나 대외노선을 답습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의 경우 탈레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Mullah Abdul Ghani Baradar)와 왕의(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 7월 28일에 회담을 가지며 신강(新疆) 위구르 자치구의 분리 독립에 개입하지 않을 것을 천명하며 중국의 세계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에의 참여를 합의한 것을 보면 더욱 명확하다.

즉, 탈레반이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이전에 비해선 정책이나 대외노선에 일정 부분 타협이나 유화책을 펼칠 가능성이 없진 않은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국내에서의 일부 반중-숭미 세력의 부질없는 망상과는 다르게 아프간에서의 탈레반 집권이 위구르 분리독립에 미칠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다.* 차라리 아프간 전후 복구 및 발전 과정에 중국의 자본이 대거 진출하는 것이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김정호 역, 「아프간 사태가 중국에 미치는 영향」, 『민플러스』 2021.08.23.(원제: 「社评:阿富汗局势20年轮回,美国栽了大跟头」, 『环球时报』 2021.08.15.)

또한, 난민 문제의 경우에도 이렇게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망명해 오는 난민은 인도주의와 인권보장 차원에서 우리 사회가 수용하여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우면 될 것이다. 그러나, 난민 수용에 있어서는 엄격한 심사를 통하여 수용 여부를 가리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번에 발생한 아프간 ‘난민’ 중에는 미제국주의에 부역했던 괴뢰정권 인사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이전에 시리아에서의 제국주의 침략 및 내전으로 인해 난민 형성이 불가피했던 상황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들 부역자들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면 차후 국제정치 및 외교 부문에서 아프간 괴뢰정권 부역자 잔당들의 ‘정치적 망명’이 우리 사회에서 골치 아픈 문제가 될 것이다. 당장에 아프간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똑같이 북부지역에 파슈툰족이 많이 사는 파키스탄도 이들 부역자들의 자국으로의 대거 탈출을 우려하며 국경지대에 거대한 장벽을 쌓고 봉쇄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이해가 어렵다면, 해방정국 당시 이북지역의 친일매국노 및 극우 개신교인들이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의 민주개혁을 피하고자 월남한 뒤 악명 높은 극우단체인 서북청년단을 조직하고 이남 지역에서 ‘빨갱이 사냥’에 나섰던 문제를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즉, 난민 수용에 있어서 엄격한 심사를 통해 부역과 관련 없는 이들을 수용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최근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와 같이 미제가 자신들의 침략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난민을 NATO, 남측과 같은 후국에 주둔하는 미군기지에 강제로 수용하려는 것에는 민족자주적 입장에서 단호히 반대해야 할 것이다. 결국, 이번 아프간에서의 난민 문제는 전적으로 미국에 책임이 있으며, 그 대가는 미국이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

그리고 가까운 장래에 오랜 전쟁과 식민지배의 폐허를 복구하고, 다시금 아프간의 사회경제가 발전하면 자연스럽게 아프간 민중들 사이에서 불합리한 전근대적 사회제도나 풍습을 개혁해야 한다는 의견이 분출할 것이다. 그때 아프간 민중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지원하고 연대하면 될 것이다.

아프간의 자연 풍경

다시금 아프간 민중들이 미제국주의를 축출하고 나라의 자주권을 되찾은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리고 아프간 민중들의 자주적인 힘으로 앞으로의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발전을 이뤄내길 기원한다.

 

참고문헌

<단행본>

이진규, 『새시대 정치학원론』, 조국, 1992

황성환, 『아메리카 제국의 몰락』 상, 민플러스, 2018

<언론기사 및 정론, 칼럼 등>

김남기,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패전의 의미」, 『노동자정치협회』 2021.08.17.

(링크: http://mlkorea.org/v3/?p=10657)

강호석, 「아프간, 미군과 탈레반에 대한 착시현상」, 『민플러스』 2021.08.19.

(링크: https://www.minplu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055)

김정호 역, 「아프간 사태가 중국에 미치는 영향」, 『민플러스』 2021.08.23.(원제: 「社评:阿富汗局势20年轮回,美国栽了大跟头」, 『环球时报』 2021.08.15.)

(링크: https://www.minplu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064)

백철현, 「미제의 아프간 침략상을 은폐하고 패배를 위무하는 언론의 위선과 모순 해결의 순서, 방법에 대하여」, 『노동자정치협회』, 2021.08.21.

(http://mlkorea.org/v3/?p=10667)

크리스 햇지, 「미국의 집단 자살」, 『427시대』 2021.08.18.

(원제: Chris Hedges, “US Collective Suicide”, Information Clearing House, 2021.08.12.)

(링크: http://www.427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290)

한호석, 「점령군 철수, 친미예속군대 와해, 친미부역정권 붕괴」, 『자주시보』 2021.08.23.

(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56631)

「[전문번역] 카불 장악 후 탈레반의 첫 기자회견 질의 응답」, 『민중의 소리』 2021.08.19.

(링크: https://www.vop.co.kr/A00001592177.html)

「아프가니스탄 점령의 종식」, 『다른 세상을 향한 연대』 2021.08.20.

(https://www.anotherworld.kr/997)

김장호, 「아프간 문제와 미국」, 유튜브 영상, 2021.08.20.

(https://www.youtube.com/watch?v=Z1-A5-uzht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