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실패와 공기업
공기업시리즈 2-2
본문요지
공기업은 일종의 사회적 자원배치 방식이자 국가 경제개입의 한 형식이다. 오늘날 국가 경제개입의 필요성은 ‘시장실패’라는 개념으로 총칭된다. 일반적으로 국가 경제개입 형식으로는 재정과 화폐정책을 통한 거시적 수단과, 국가가 직접 공기업을 설립하여 경제활동 주체로 참여하는 미시적 방식 두 가지가 있다. 여기서 국가가 공기업을 직접 설립하는 이유는 ▲공공재 존재 ▲산업정책 상 요구 ▲국민경제의 계획적 조절 ▲반독점 ▲국가 재원 창출 필요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
1) 공기업의 기원 (지난 호)
2) 국가개입 이론과 공기업
시장경제 하에서 공기업은 일종의 사회적 자원배치 방식이자, 국가 경제개입의 한 형식이다. 때문에 그것은 국가개입 이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서구에서 국가개입 이론의 연혁은 공기업만큼이나 오래된다. 공기업의 존재 이유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선 먼저 이 같은 국가개입 이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초기 영국과 프랑스의 국가개입 이론은 일찍이 봉건사회 말기 영•불 양국의 상업자본가계급의 이익을 대변한 프랑스 중상주의이론가 몽클레친과 영국의 토마스 먼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몽클레친이 저술한 <국왕과 왕후에게 바치는 정치경제학>(1615년) 이란 책에는, 상업은 국가활동의 기초이며 정부의 주요 임무는 바로 국가가 존중을 얻고 부단히 치부를 하도록 하는 것이기에 정부는 프랑스 상업에 유리한 정책을 집행하여야 한다고 적고 있다. 정부는 이를 위해 공공작업장과 기술학교를 설립하여 인민에게 각종 직업훈련을 실시하고, 외국에서 건립한 신형 공장수공업을 본떠서 프랑스 공업품의 질량을 개선하여 외국제품을 프랑스시장에서 배제시키고, 본국의 자연자원을 보호하여 외국인이 탐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조언 하고 있다.1)
영국의 토마스 먼도 대외무역은 국가의 재부와 현금을 증가시키는 통상의 수단이기 때문에, 가치적으로 볼 때 외국인에게 매년 파는 제품은 필히 영국이 그들의 것을 소비하는 것보다 많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국가는 마땅히 무역 순차를 실현하는데 유리한 모든 정책을 실시할 것과, 황무지 개척을 장려함으로써 현재 수입에 의존하는 상품수량을 증가시켜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이러한 국가의 경제개입을 촉구하는 주장들은 이후 독일의 리스트에 와서 크게 발전하였다. 그는 당시 생산력수준이 상대적으로 낙후된 독일 자본가계급의 입장에서 영불 고전경제학을 대표하는 아담 스미스가 찬양하는 세계주의경제학과 자유무역제도에 대해 반대하였다. 그 대신 생산력 수준이 상대적으로 낙후된 국가가 본국의 생산력을 신속히 발전시키려면 마땅히 국가를 통한 보호제도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세계적으로 이미 강력한 위치에 있는 국가가 존재하고 또 자신의 영토 내에서는 조밀한 보호를 실시하기 때문에, 이 같은 조건 하에서 국가의 보호 없이 신흥 공업국이 되는 것은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국가개입 이론은 이후 20세기에 들어 복지경제학을 창시한 피구(Arthur Cecil Pigou, 1877-1959)에 의해 현대적 의미로 새로운 차원의 발전을 이루었다. 그는 1920년 출간한 <복지경제학>에서 국가는 마땅히 소득분배에 대한 간여를 강화하여, 국민순제품의 증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조건 하에서 국가의 소득분배정책을 통해 빈곤층의 절대 몫을 증가시켜 소득분배의 불평등을 감소시키고, 경제적 복지를 증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주지하다시피 국가개입 이론이 하나의 완전한 이론 체계를 갖추고 기존의 정통 미시경제 이론과 쌍벽을 이루는 거시경제학으로서의 이론체계를 구축한 것은 케인스에 이르러서이다. 1929년 발발한 세계대공황을 경험한 그는 자본주의경제에 있어 한계소비성향2)의 영향으로 유효수요의 부족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이 때문에 총공급과 총수요 간의 불균형의 발생이 필연적임을 이론적으로 논증하였다. 그는 이 같은 유효수요의 부족을 정부의 재정정책을 통하여 인위적으로 메꿀 것을 주장하였다. 그의 이론은 종전 후 앞서 피구의 ‘복지국가’ 이론을 뒷받침하면서 국가의 경제개입을 전면화하는 기초가 된다.
이렇듯 자본주의에서 국가의 경제활동 개입에 관한 이론과 실천의 역사는 17세기 중상주의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이후 그것이 줄곧 확대 강화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초기에는 단순히 국가 간의 무역에 있어 국부의 유출을 막고 자국이 이득을 보고자 하는 ‘중상주의’적 목적으로부터 시작하였지만, 나중에는 적극적으로 선진국을 추격하기 위한 후발국가의 경제발전이론과 접목되었다. 현대에 이르러서 한발 더 나아가 국내 빈부격차의 해소와 복지국가의 건설, 그리고 유효수요의 확충을 통한 국민경제의 균형 달성을 위해 국가의 전면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거시경제이론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비록 20세기 후반 들어 케인스주의가 신자유주의로 대체되면서 국가개입 이론도 얼마간 쇠퇴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구화와 개방화로 상징되는 오늘날에도 국가의 경제개입은 재정•화폐정책, 구제금융 등의 형식으로 여전히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듯 자본주의 초기부터 국가의 경제개입은 필요하였으며, 또 현대사회에 올수록 국가의 개입이 더욱 요구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오늘날 국가의 경제개입의 필요성은 ‘시장실패’라는 개념에 의해 설명된다. 소위 ‘시장실패’라는 것은 시장에만 경제운영을 맡길 경우 해결할 수 없는 현대경제의 난제들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빈부격차의 확대, 경제의 무정부성, 독점의 출현, 경제의 ‘외부성’3)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같은 서구경제학의 ‘시장실패’와 관련된 내용들은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에서 일찍부터 존재하였다. ‘자본주의 기본모순’이라는 개념을 통해 일찍부터 제기해왔던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자본주의적 점유 간의 모순’이 바로 그것이다. 생산과정이 이미 사회적 과정이 되었음에도 자본주의 사회는 생산수단의 사적 점유에 기초하여 생산물을 자본가가 점유한다. 이로부터 발생하는 모순은 생산의 무정부성, 빈부격차와 계급대립 등 그 하위 모순을 낳게 된다.
이러한 문제들은 자본주의 초기에는 그리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러기에 아담 스미스가 일찍이 주장한 대로 ‘시장’이라고 하는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한 자연치료 요법에 맡길 수 있었다. 실제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서 시장은 이 같은 자신에게 떠맡겨진 문제들을 잘 처리하는 듯 보였으며, 자본주의 기본모순은 맹아적 형태로만 존재할 뿐 그렇게 심각하게 표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이 기본모순은 점차 잠재적 상태에서 사회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는데, 마침내 시장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 때문에 현대사회에 이르러 ‘시장실패’라는 개념이 본격 등장하게 되었으며, 지금은 자본가들 스스로도 국가가 직접 나서서 시장을 보충할 것을 공공연하게 요구하게 되었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사회적 분업은 더욱 복잡화하고 고도화 하며, 생산물은 한층 ‘사회적 생산물’의 성격을 띠게 된다. 그럼에도 소유관계에 있어선 여전히 자본주의적 사적점유라는 형식을 벗어나지 못함에 따라 국민경제의 균형발전 상의 문제는 갈수록 노정되고, 생산물의 분배를 둘러싼 계급간의 대립은 날로 첨예해진다. 결국 국가의 적극적 개입 없이는 시장은 자신의 제반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모순은 심화된다.
우리는 여기서 현대경제에 있어 국가개입이론을 정당화하는 서구경제학의 ‘시장실패’ 이론은 맑스경제학이 일찍이 주장해온 자본주의 기본모순의 심화발전에 다름아님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사회에 있어 국가의 경제개입 필요성은 결국 이 같은 ‘시장실패’ 이론으로부터 그 근거가 찾아진다. 그리고 국가의 경제개입의 필요성이 일찍부터 제기되었던 점은 ‘시장실패’가 비록 맹아적인 형태이긴 하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일찍부터 존재하였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렇듯 국가개입의 필요성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그 형식에 있어선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시장실패’가 막 바로 공기업의 존재 이유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국가의 경제개입 형식은 크게 다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국가가 경제활동의 조정자로서 세수, 보조금, 이자율, 재정, 화폐 등의 경제수단을 통해 경제에 대한 조절을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가 직접 기업가가 되어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즉 국가가 공기업을 설립하여 상품 생산과 판매, 구매 활동에 종사하는 것으로써 이를 통해 경제활동에 대한 개입을 진행한다. 이 두 종류의 국가 개입은 서로 차이가 있지만 모두 동일한 목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예컨대, 적절한 세수와 보조금을 통해서 정부는 국민경제에 대한 투입과 생산품의 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공기업을 통해서도 이러한 투입과 가격결정 기능을 실현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정부는 민간기업의 투입과 생산품에 대해 세수와 보조금의 수단을 통해서 사회복지 목표와 소득분배 목표를 실현할 수 있으며, 또 공기업의 형식을 통해서도 그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실제 북유럽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세수와 보조금 형식을 통한 소득 이전을 즐겨 채택하며, 공기업을 통한 방식을 사용하는 경우는 비교적 적다. 그러나 프랑스•이탈리아와 같은 서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공기업을 소비자의 수요를 만족시키는 수단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4)
그렇다면 국가의 경제개입 형식과 관련하여 왜 굳이 ‘공기업’, 즉 생산관계 내지 소유제 차원의 변화까지 초래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이점이야말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며, 그 이유는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공공재’의 존재 때문이다. 공공재는 도로, 항만, 철도, 전신과 같은 사회인프라 시설을 지칭한다. 일반적으로 공공재에 대한 사회 전반의 수요가 큰데 반해, 그 ‘외부경제’ 효과 때문에 민간 자본이 쉽게 참여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이윤추구’를 최고의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적 기업들은 투자 성과를 온전히 사유화할 수 없는 ‘외부경제’ 효과를 가진 재화와 서비스 생산에 대한 투자를 기피한다. 이 때문에 국가가 직접 공기업을 설립하여 관련된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할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국가의 공공투자가 줄어든 것은 그 대표적인 실례이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조차 최근 공공투자의 미비로 교통시설이 낙후되고, 철도는 과거 90년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둘째, ‘산업정책’의 필요성과 관련된다. 민간 기업들은 때론 능력과 결단이 부족하여 거대 규모의 자본이 필요하고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신흥 산업분야에 대해선 투자를 꺼려한다. 이 역시 본질적으로는 민간 기업들의 ‘이윤추구’ 속성 때문인데, 그 때문에 국가가 공공적 이익을 위해서 먼저 공기업을 설립하여 이들 분야를 ‘개척’할 필요가 있다.
과거 2차 대전이 종식된 후 서구는 공기업의 대량 설립을 통해 자본부족과 기술적 낙후를 단시간 내에 만회하고 당시 선진국인 미국의 기업들을 추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오늘날 4차 산업혁명의 시기에 산업정책과 관련한 공기업의 존재이유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자율주행 등 각 분야의 투자 규모가 거대해짐에 비해, 개별 기업으로서는 그 같은 요구를 충족시키기가 벅찬 분야가 많다. 특히 한국의 적지 않은 재벌 대기업들의 영업이익율이 나날이 낮아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4차 산업혁명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공기업화’를 통한 이 같은 기능의 적극 활용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
셋째, 시장의 무정부성을 극복하고 ‘국민경제에 대한 계획적 조절’을 달성할 필요성 때문이다. 단순히 재정과 화폐정책과 같은 거시적 조절정책만으로는 오늘날 대단히 복잡해진 시장경제와 국민경제 전반의 조화로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국가 개입의 한 형식으로서 공기업은 비교적 융통성 있는 정책 수단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공기업은 구체적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을 사용할 수 있다. 예컨대 경쟁적 시장형, 순수 공익형 및 그 중간형 등으로 공기업을 나누어 다양한 정책목표를 실행케 하는 것이 그것이다. 총공급과 총수요의 균형, 유가나 공공요금 관련한 물가정책, 임금정책, 환경정책 등에 있어 적정규모의 공기업을 앞세울 경우 효과를 발휘할 때가 많다.
이에 비해 재정, 세수, 화폐 등의 정책수단은 종종 정책결정, 입법 및 집행과정에서 ‘지체성(滞后性)’이 나타나기 때문에 정책효과가 공기업만큼 신속하지 못하다. 공기업을 통해 값싼 전기, 석유 등을 공급하는 것은 인플레를 통제하는데 있어서는 이자율 정책보다 보다 직접적이며 효과적이다.
넷째, 공기업의 또 다른 중요한 존재 이유는 ‘반독점’ 때문이다. 시장경제 하에서의 ‘독점’은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일반적인 ‘사적 독점’이다. 이러한 독점은 필연적으로 ‘독점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경쟁적 원리에 입각한 시장 작동을 저해하며, 비효율을 야기하고 창의와 혁신을 가로막는다. 국가는 이 경우 반독점 법을 제정하는 등 정책적 수단을 통한 대처가 효과적이다.
시장경제 하의 독점의 또 다른 유형은 ‘자연독점’이다. 이는 재화의 특성상 규모의 경제 효과 때문에 한 공급처가 공급을 독점할 경우에만 비로소 경제성을 발휘할 수 있는 독점을 말한다. 이 때문에 자연독점은 ‘필요불가결한’ 독점 이라할 수 있다. 공기업의 존재는 이 같은 자연독점과 관련이 있다. 예컨대 우편, 전신, 철도, 가스, 전력 분야의 독점이 그것인데, 이 경우 민간 기업에 맡길 경우 독점에 따른 피해가 예상되며, 국가가 직접 공기업을 설립하여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의 공급을 전담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물론 ‘자연독점’ 분야에 대해서도 민간 기업에 위탁한 후 정부는 이에 관련한 조례를 마련하고 감시와 감독을 강화하거나, 몇 개의 경쟁기업으로 쪼개는 방식으로 공공재를 조달할 수도 있다. 실제 신자유주의자들은 그 같은 주장을 많이 한다. 하지만 이 경우 필히 세율을 조절해서 그것이 각각의 특정 업종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간의 실천이 말해주는 것은 정부부문이 이 같은 일을 담당하는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며 종종 불공정성 문제를 낳는다. 왜냐하면 평균이윤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정보비대칭’ 때문에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사적 기업의 원가계산은 민감한 업무상 비밀에 속하기 때문에 외부인의 접근과 정확한 파악이 어렵다. 또 이 과정에서 각종 ‘로비’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난다. 실제 미국이 실행하는 공용사업에 대한 관리를 보면 곤란이 첩첩한 것을 알 수 있는데, 미국 전력산업에 있어 민영화조치의 실패는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국가가 공기업을 직접 활용한다면 독점의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동시에, 이런 분야의 규모의 경제의 효율성도 보존할 수 있다.
다섯째, 공기업의 존재는 ‘국가의 재원 창출’과도 관련된다. 이 문제는 현대사회에 올수록 중요성이 더해진다. 오늘날 국가는 사회복지를 책임져야 하는 등 사회문제에 개입하는 면이 대폭 확대되었기에 갈수록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단순히 세금 징수에 의존할 경우 소수 부유층에 대한 지나친 누진세율 적용으로 인해 그들의 반발이 우려된다. 그렇다고 세원을 일반 서민대중에게로 확대할 경우 그들의 부담을 가중시켜 애초 빈부격차를 줄이려던 취지를 훼손하게 된다. 과거 케인스주의 정책의 실패는 그처럼 국가 재원마련을 단순 세수에 의존하는 방식만으론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국가 재원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스스로 이윤창출이 가능한 공기업을 국가가 다수 보유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영국의 제임스 미드도 1977년에 이와 비슷한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그는 현재 세계 각국에서 통용되고 있는 GDP 계산법 발명자의 한 사람이다. 그가 갖고 있는 사상 중 하나가 바로 공유자산으로부터 얻는 시장수익은 세수와 국채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경감시키고,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이데올로기상의 문제로 인해 싱가포르, 노르웨이 등 일부 소수국가를 제외하면 자본주의사회에서 공기업을 통해 국가 재원문제를 해결한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비록 소수 국가일지라도 분명 성공사례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의 주목을 요한다.
여기서 체제는 다르지만, 중국의 공기업이 국가 재정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참고할 만하다. 중국은 국유기업의 이윤상납 비율을 과거 10%에서 2011년부터는 15%로 확대하였다. 앞으로 늘어날 사회복지기금으로 충당하기 위해서였는데, 2016년 전국인민대표자회의(국회에 해당)는 제13차 5개년계획(2016~2020년) 기간 중 다시 이 비율을 20%로 상향 조정하기로 하였다. 이 외에도 중국 공기업은 주식시장에 상장할 경우 국가보유지분의 10%를 의무적으로 사회보장기금에 기증하도록 하고 있다.
중국의 국유기업은 정부에 이윤만 상납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민간기업과 마찬가지로 세금 역시 납부한다. 탈세욕구가 작은 중국 국유기업의 세금납부 기여도는 민간기업보다 훨씬 높다. 2009년도 통계에 따르면 중국 국유기업의 평균 세수부담률은27.3%로 민간기업 세수부담률 종합평균치의 5배 이상이었다. 기업의 단위자산 당 국유기업의 세수납부액은 일반 민간기업보다 45% 높았으며, 직원 1인당 납부액 역시 190%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에서 살펴본 공기업의 존재이유는 큰 범주에서 보자면 모두 ‘시장실패’와 관련된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국가의 적극적 개입 없이 시장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시장실패 현상은 두드러진다. 또 국가개입의 형식에 있어서 볼 때, 사회적 분업의 고도화와 ‘생산의 사회화’가 진척될수록 재정과 화폐 정책 같은 거시적 조절수단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국가가 경제의 한 주체로 직접 참여하여 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 미시적 수단으로서의 공기업에 대한 요구는 더욱 높아지게 된다. 이렇게 볼 때 공기업의 존재이유는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쇠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한 바탕 휩쓸고 지나간 지금 전 세계적으로 공기업이 지나치게 위축된 감이 든다. 최근 코로나사태를 맞이하면서, 그리고 한국사회의 경우 문재인 정부가 ‘사회적 가치의 재발견’을 천명하면서 공기업의 존재 의의가 새롭게 조명될 수 있는 조건이 성숙하고 있다. 그 같은 현상은 전체적으로 보면 공기업 확대필요성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어지는 후속 연재에선 2차 대전 종전 후 서구에서의 공기업 발전과 그 쇠퇴의 궤적을 더듬어 보기로 한다.
본문 주석
1) 伍柏麟 席春迎 공저, 1996년, <서방국유경제>, 북경, 고등교육출판사, pp36-37.
2) 소득 증가분에 대한 소비 증가분의 비율을 나타낸다. 한계소비성향은 부유층일수록 낮고 저소득층일수록 높다.
3) 외부성(externality)이란 어떤 시장 참여자의 경제적 행위가 사람들에게 의도하지 않은 편익이나 손해를 가져다주는 데도, 아무런 대가를 받지도, 지불하지도 않는 현상을 말한다. 아무런 대가를 받지도 지불하지도 않는 다는 것은 가격이 완벽히 작동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시장경제의 불완전성을 반영한다.
4) 신자유주의 하에서 국가의 공공투자가 줄어든 것은 그 대표적인 실례이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조차 최근 공공투자의 미비로 교통시설이 낙후되고, 철도는 과거 90년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