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간섭: 미국이 후원하는 아이티와 쿠바의 불안정화 지속
아이티인과 쿠바인은 미국 내 민중의 적이 아닙니다. 제국주의가 산업화된 국가의 노동계급과 피억압민을 피억압 사회주의 국가의 편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프롤레타리아트와 세계적으로 피억압당한 사람들의 단결만이 세계 인민들 사이의 평등한 관계를 건설하기 위한 조건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저자: 아바요미 아지키웨(Abayomi Azikiwe)는 Pan-African News Wire의 편집자입니다. 그는 글로벌 리서치에 자주 기고하고 있습니다.
역자: 이승규(4.27시대연구원 연구위원)
조브넬 모이즈의 암살과 쿠바 공산당에 대한 시위는 카리브해 국가의 내정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인 간섭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은 7월 7일 새벽 포르토프랭스의 자택에서 암살당했습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정황은 아이티 안팎의 다양한 통신사와 당국의 수사과정에서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 살해 용의자로 체포된 사람들에 대한 많은 연결고리가 미국 국방부와 연방 법집행기관으로 쪽으로 바로 미국으로 연결됩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 행정부는 아이티와 관련하여 "그런 문제로 군대를 배치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행정부는 FBI(연방수사국) 및 기타 국토안보부(DHS) 기관 팀이 아이티에 파견되었음을 인정했습니다. 이 연방 요원들은 현재 카리브해 국가 안에 있으며 해병대는 표면적으로는 미국 대사관을 보호하기 위해 파견되어 있습니다.
모이즈는 2016년 매우 논란이 많은 상황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후로 워싱턴의 재정적, 외교적 지원을 누렸습니다. 모이즈가 2017년 2월에 대통령에 취임하는 데는 몇 달이 걸렸습니다. 노동계급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그의 정책에 대한 반응으로 거의 즉시 대규모 시위와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와의 긴밀한 유대에도 불구하고 정세를 정치적으로 안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사회적 불안의 폭발은 2018년부터 현재까지 발생했습니다. 최근 몇 달 동안 모이즈와 그의 테트케일당(대머리당, 즉 흑인당이라는 의미)를 지원하는 조직적인 범죄조직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포르토프랭스 수도에 있는 여러 공동체를 테러하고 파괴했습니다.
암살 용의자의 대다수는 미국의 오랜 동맹국인 남미의 콜롬비아 출신입니다. 콜롬비아 보안군은 국민들 사이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혁명운동을 저지하기 위한 의도의 일환으로 워싱턴의 역대 행정부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았습니다.
다수의 콜롬비아 용의자들은 미 국방부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미 국방부는 종종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및 아시아 전역의 국가에서 온 요원에게 군사훈련을 제공하여 워싱턴과 동맹을 맺은 피억압 국가의 보안기구 내에서 영향력과 지배력을 유지합니다.
국무부의 언론 매체인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조차 7월 16일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국방부 대변인이 미국의 소리에 보내온 이메일 성명에서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 암살과 관련하여 아이티 경찰에 구금된 콜롬비아인 중 일부가 '미국 군사훈련 및 교육 프로그램 출신'이라고 확인했다. 켄 호프만 중령은 이 정보가 훈련 데이터베이스를 검토하면서 알게 됐다고 했지만 훈련이 언제 어디서 이루어졌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호프만은 '우리의 검토가 진행 중이므로 현재로서는 추가 세부사항이 없다'고 말했다. 이 전개상황은 워싱턴포스트에 의해 처음 보도되었다. 미 국방부는 매년 남미, 중미, 카리브해 지역에서 수천 명의 군인을 훈련시킨다고 밝혔다.”
체포된 아이티인 중 3명은 모두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 중 2명은 콜롬비아 사람들과 함께 체포되었습니다. 그들은 정부, 부유한 개인 및 기업의 보안을 담당하는 군사서비스 회사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과의 이러한 유대관계를 적극 이용하여 모이즈 전 대통령의 집에 들어간 무장한 사람들이 자신들을 연방 마약단속국(DEA) 요원으로 밝혔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용의자 중 일부는 모이즈에 대한 수색 및 체포 영장을 송달하기 위해 그 장소에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인용되었습니다.
암살과 관련된 최소 한 사람이 마약단속국에서 정보원 또는 요원을 의미하는 "출처"로 확인되었습니다. 아이티는 수년 동안 미국 마약밀매의 통로라는 비난을 받아왔습니다.
쿠바에 대한 계속되는 봉쇄는 워싱턴의 전복기도를 말해준다
7월 11일 모이즈 대통령이 암살된 후 미국 기업언론들은 수천 명의 사람들이 식량, 의약품, 시민자유의 결핍에 항의하기 위해 여러 쿠바 도시에서 거리로 뛰쳐나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시위의 초점은 집권 쿠바 공산당을 겨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으로 확장되어 가는 미국의 지난 60년 동안의 쿠바 봉쇄로 인한 경제 위기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쿠바는 관광산업의 성장과 미국통화 및 중소기업형태의 국가경제 개방에 의존해 왔습니다.
COVID-19 전염병의 출현 이후 전 세계경제 시스템은 대량실업, 빈곤 및 혼란을 겪었습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가장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의료시스템은 코로나바이러스 환자로 과중한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쿠바는 관광부문이 재개되기 시작한 최근 몇 달까지 전염병의 확산을 잘 억제했습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정부가 자체적으로 국내에서 생산한 백신을 출시하였으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급증했습니다. 확진자 증가는 쿠바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미국 내에서 델타 변이체 및 기타 돌연변이의 출현은 특히 미국 남부 지역의 감염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쿠바연대단체와 반제국주의자들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사회주의 카리브해 국가 내부의 인도적 상황을 그렇게 우려한다면 행정명령을 통해 제재를 해제해야 한다는 미구엘 디아즈-카넬 대통령의 입장을 재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전임자 도널드 트럼프가 제정한 미국-쿠바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트럼프가 부과한 조치는 미국에 거주하는 쿠바인이 본국으로 송금할 수 있는 능력을 제한했습니다. 트럼프의 다른 엄격한 행정명령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시작한 정상화의 길을 훼손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오바마가 쿠바와 수교를 재개했지만 봉쇄와 제재는 미 의회에서 해소되어야만 했습니다.
베네수엘라에 기반을 둔 텔레수르 통신사가 발행한 기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금요일(7월 16일) 쿠바의 미구엘 디아즈-카넬 대통령은 쿠바의 위기에 대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우려에 의문을 제기하고 워싱턴이 쿠바에서 반혁명을 시도하는 데 수십억 달러를 낭비했음에도 불구하고 혁명을 파괴하는 데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디아즈-카넬은 "바이든이 쿠바국민에 대한 진심어린 인도주의적 관심을 가졌다면 경제 봉쇄를 끝내기 위한 첫 단계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부과한 243개의 심각한 제재를 해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십 년 만에 쿠바의 최악의 경제위기에 관여한 강압적 조치는 미국시민의 쿠바 여행을 제한하고 송금을 제한하며 쿠바와 비즈니스를 하는 외국기업을 제재한다. 쿠바 관리들과 많은 분석가들은 플로리다주에 정치적 영향력이 강한 반동적인 쿠바계 미국인 커뮤니티가 미국의 쿠바정책을 주도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쿠바의 7·11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는 입장을 즉각 밝혔습니다. 그러한 접근은 쿠바의 혁명정부와 워싱턴 사이에 적대감을 조장하는 동시에 쿠바국민의 경제적 곤경을 강화할 뿐입니다.
미국에서 반제국주의자들의 역할
피억압국가와 사회주의국가에 대한 공격에 맞서는 제국주의국가들 안에서 해방과 세계평화를 위해 투신하는 자들의 과업은 물론 인민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쿠바에서의 사회주의혁명의 성과는 국내외에서 산업화된 국가의 진보세력들의 최대의 연대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1804년 미국의 지원을 받아 프랑스, 영국, 스페인에 맞서 노예 아프리카인들이 벌인 혁명전쟁 이후 1804년에 수립된 아이티의 경우에서 보면 워싱턴은 처음부터 아이티의 발전능력을 압살했습니다. 히스파니올라 섬을 공유하는 이웃 도미니카 공화국과 함께 아이티에서는 수많은 봉쇄와 직접적인 군사 개입이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아이티를 외교적으로 인정하는 대가로 카리브해 국가는 프랑스 식민노예가 프랑스 소유 사탕수수 농장과 기타 재산을 파괴한 대가로 "배상금"을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최근 아이티 정부의 정치적 성격과 상관없이 반제국주의자들은 노동자, 농민, 청년 및 모든 민주주의 세력의 자주적 권리를 자결권이란 측면에서 수호해야 합니다. 미국이 계속해서 내정에 간섭하는 한 아이티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발전할 수 없습니다.
쿠바는 19세기와 20세기 전환기에 일어난 이른바 스페인-미국 전쟁 이후 공고해진 미국 지배의 멍에를 벗어던졌습니다. 1959년의 혁명은 섬나라의 진정한 독립을 수호할 필요성에 의해 급진화되었습니다. 끝없는 봉쇄 속에서 1961년 4월 피그만 침공시도는 62년 동안의 워싱턴과 아바나의 관계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아이티인과 쿠바인은 미국 내 민중의 적이 아닙니다. 제국주의가 산업화된 국가의 노동계급과 피억압민을 피억압 사회주의 국가의 편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프롤레타리아트와 세계적으로 피억압당한 사람들의 단결만이 세계 인민들 사이의 평등한 관계를 건설하기 위한 조건을 만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