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결 종식의 길
지난 3월 미국 외교정책의 거물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는 영국 왕립 국제문제연구소인 채텀하우스(Chatham House) 세미나에서 이 ‘미국은 새로운 세계질서를 수용하라. 그렇지 않으면 1차 세계대전전야와 유사한 상황을 맞이할 것’. 미국이 중국과 대결을 계속한다면 그 결과는 재앙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미국 지배층 일부가 세계가 이미 미 패권질서에서 새로운 다극화질서로 변화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은 대 북·중·러 적대정책을 고리로 동맹을 결속시켜 패권을 유지하려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런 정책은 다른 한편 북·중·러를 결속시켜 미국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독자적인 정치, 경제 영역을 구축하게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세계는 다극화되고 있다.
1. 바이든 정부의 대북중러 적대정책
키신저가 말한 1차세계대전 전야란 당시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이탈리아 삼국동맹과 러시아, 프랑스, 영국의 삼국협상이 대립했던 상황을 가리킨다. 지금의 미국과 유럽, 일본의 동맹세력과 북중러의 전략적 단결과의 대립과 유사하다. 그러나 당시는 유럽이라는 지역적 범위의 전쟁이었지만 지금은 전 지구적 규모의 핵전쟁이 될 것이고, 미-유럽간에는 중,러 관계에 대해 이해의 불일치가 존재하기에 1차 대전과 같은 세계대전이 일어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바이든 정부는 이러한 변화되고 있는 세계질서를 수용하지 않고 여전히 과거 패권의 향수에 젖어 이를 회복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과거처럼 단독으로는 어려워 동맹들을 강하게 묶어세워 대처하려 하고 있다. 이를 바이든 정부는 지난 2월 “미국이 돌아왔다. 대서양동맹이 돌아왔다”라고 G7과 뮌헨안보회의 화상연설에서 밝혔다. 한마디로 미국이 자국 중심의 패권질서를 전통의 대서양동맹을 활용해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러시아 국영 러시아투데이는(RT)는“전쟁기계가 돌아왔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북중러 적대정책을 고리로, 파이브아이즈(Five Eyes) 일급동맹을 축으로 여기에 자신을 추종하는 일본, 프랑스, 독일 등을 묶은 연합군 구축을 통해 패권질서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첨단의 신형 지휘통신체계(JADC2)와 대규모 연합훈련을 통해 통일적인 지휘통제망을 구축하고 있다.
현재 전개되고 있는 미국의 대 북중러 적대정책의 양상은 다음과 같다.
먼저 러시아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미국 선거개입 혐의, 러시아 정부의 야당인사 나발니 구금 등을 근거로 항의시위 지원, 러시아 외교관 추방 및 경제 제재를 가하였다. 유럽 각국도 가세한 이런 제재조치로 러시아와 유럽관계는 거의 최악의 수준에 이르렀다. 군사적으로는 역사상 최고 수위의 러시아 포위가 추진되었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에 나토와 미군 병력 및 장비를 배치하고, 발트해와 흑해 일대에서 동유럽 각 국에 미군 배치 및 최대 규모 나토 연합훈련을 추진하였다. 또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벨라루시에서는 실패하였지만 시위와 대통령 암살 시도 등 친미 쿠테타가 시도되었다. 급기야 지난 4월에는 우크라이나와 전쟁 접경까지 가는 위기가 조성되어, 분노한 러시아가 첨단 무기와 대규모 병력을 우크라이나 접경에 배치하고 미국에 전쟁불사 의지를 보인 후에야 간신히 긴장이 가라앉았다. 그러나 이 지역은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전투가 계속되고 나토군 주둔도 유지되어 언제든 다시 긴장이 고조될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미국은 또한 러시아 영해인 북극항로와 블라디보스톡 인근 동해항로에 대해서도 항행와 비행의 자유를 내세워 분쟁수역화 하려 하고 있다. 미국은 "특정하고 공격적인 행동으로 지역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는 규범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려는 전략적 경쟁자들을 억제.” ("deter strategic competitors from specific, aggressive acts and from unilaterally seeking to change norms governing access to the region.”)한다는 명분으로 이 항로들에 미 전함의 운행을 계획하고 있다. 마치 남중국해에 항해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은 러시아의 동서에서 협공의 태세를 취하고 있다.
중국에 대해서는 가히 전방위적 압박과 포위가 진행 중이다. 정치, 경제, 군사 모든 면에서 미국은 대립각을 세우고, 동·남중국해 및 대만해협에서 계속된 연합훈련과 항행의 자유 작전을 전개하여 중국을 자극하였다. 무엇보다 대만에 대한 미국의 정치, 군사적 지원은 ‘하나의 중국’ 원칙의 난폭한 파기일 뿐 아니라, 양안 일대 전쟁 위험을 고조시키는 행위다.
대만의 차이잉원(蔡英文) 정부는 미국의 이러한 정책에 편승해 대만독립정책을 더욱 공격적으로 펼쳐 양안 관계를 역사상 최악으로 몰아가고 있다. 중국은 차이잉원 정부에게‘미리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며 전쟁 가능성을 여러 차례 강력히 경고하고, 급기야 지난달 28일 자오리젠(趙立堅) 외교부 대변인은 공식적으로 “대만해협 통일은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최선의 해답”이라고 발표해 세계를 긴장시켰다. 홍콩의 명보(明報)는 “이 마지막 문장은 이전 공식 입장 표명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이라고 전쟁발발 가능성을 우려했다..
미국의 반중안보체계인 쿼드(Quad)는 비단 4개국(미, 인도, 호주, 일본)의 반중 안보협력만이 아니라 반도체, 6G등의 통신, 기후변화 등 당면의 반중 경제현안, 미얀마 사태 등에 대한 공동대처 등 정치, 경제 문제도 공동으로 대응하는 체계를 지향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이 쿼드에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을 참여시킨 ‘인도-퍼시픽 나토’를 만들려 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총적으로 미국은 중러에 대해 유사한 포위 적대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대만과 우크라이나를 앞세워 중·러와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아직 성공하진 못했지만 중·러의 접경국가인 미얀마와 벨라루시에 친미정권을 세우려 하고 있다. 그리고 북중에 대해서는 한국과 일본에 무력을 증강시키고 유럽 각 국을 끌어들여 연합군 체계를 만들고 있다,
2. 한미동맹의 위상변화와 대북 적대정책
바이든 정부는 북에 대해서도 변함없는 적대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 4월 말 대북정책검토를 완료했다고 발표한 미국은 5월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구체적 적대정책을 가시화했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은 한마디로 북이 비핵화의 구체적 방안을 밝혀야 협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인권문제제기와 제재유지는 물론 한미연합훈련과 한국에 지속적 무기 증강을 통해 긴장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한국군에 백신을 공급해 필요시 언제든 실기동훈련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북중을 동시 겨냥한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800km제한 철폐, 사드 기지 강화, 신형 지휘통제체계(JADC2)에 필요시 한국군 통합, 일본 거점 연합군 편성 준비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한미간의 이러한 합의는 한미동맹의 위상이 결정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한미정상간 합의는 한국이 기존의 대북 적대만이 아닌 대중국 포위정책에도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쿼드에 대한 문대통령의 이해 표명, 남중국해 및 대만해협의 안정, 미얀마 사태 공동 대처 발표는 중국으로 하여금 ‘불장난을 하지 말라’는 강한 경고를 받기에 이르렀다. 특히 미사일 사거리 제한 철폐는 미국의 제1열도선 일대 중국을 겨냥한 중거리 미사일 배치 계획의 일환으로 한국은 위험을 자초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북은 “지역 나라들의 조준경 안에 스스로 머리를 들이민 남조선 당국자의 행동”이라고 비난하고, "우리는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며 조선 반도의 정세 격화는 우리를 위협하는 세력들의 안보 불안정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강도높게 경고했다.
사실 미국이 한일관계 개선을 강제해 이를 바탕으로 한미일 군사협력(또는 동맹) 체계로의 전환을 다그치고 있는 것은 북의 이런 강한 경고의 반영이다. 미국은 지난 4~5월에 걸쳐 한미일 안보실장회의를 시작으로 한미일 합참의장회의, 한미일 외교장관회의, 한미일 정보기관장 회의 등 일련의 외교안보 부문 기관장 회의를 진행시켰고, 6월에는 한미일 국방장관회의와 한미일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이 과거 뜸들이기 수준이 아니라 확실히 한일 관계개선을 강제해 동맹관계 내지 그에 준하는 연합적 군사안보체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다.
이렇듯 미국이 추종국인 한일은 물론 유럽 각국을 끌어들여 북·중에 대한 적대전선을 강화해 나가는 것은 결국 한반도와 대만해협 일대 긴장을 고조시킬 수밖에 없다. 과연 북·중이 미국이 하려는 대로 내버려두고 보기만 할 것인가. 미국이 여러 나라를 끌어들이는 것은 이제는 단독으로 북·중·러의 부상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국이 그만큼 약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조건에서 연합군이 편성되고, 각종의 첨단 무기들이 한국과 일본, 대만일대에 배치된다면 필연코 동북아와 대만해협 일대는 긴장이 더욱 고조될 것이다.
3. 북미대결 종식의 2가지 길.
많은 이들이 제기하듯이 북미대결은 이제 거의 마지막 지점에 이르렀다. 이미 핵무력을 완성한 북은 지난 8차 당대회애서 공식적으로 ‘최대의 주적 미국을 제압, 굴복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그 수단으로 영토 밖에서 적대세력을 선제적으로 제압하겠다는 것과 세계 반제자주역량과의 연대강화를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한반도에 영원한 평화를 실현하고 통일을 앞당기겠다는 의지도 표명하였다.
이것은 원칙적으로 힘으로 미국을 제압, 굴복시켜 한국에서 미국을 몰아내고 통일을 앞당겨 실현하겠다는 의미다. 또 이를 9차 당대회 이전 5년 이내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북미대결 종식 방안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무력대결이고 다른 하나는 동북아 다자안보회의를 통한 평화협정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다.이 양자는 별개의 길이 아니라 연계되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후자와 관련하여 중러는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과 같은 동북아 다자안보회의를 제안하였다. 지난 4월 중국은 류사오밍 대북특별대표를 새로 임명하였고, 그를 통해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5자 회담(일본 제외)을 제의하였다. 러시아 역시 북 주재 러시아대사를 통해 한반도 문제 해결의 마지막 단계로서 다자회담을 제안하였다. 사실 미국도 지난 3월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일만이 아니라 중러도 관여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이래 한반도 다자회담 가능성은 계속 제기되어 왔다.
동북아 다자안보회의는 지난 2019년 북·러정상회담 당시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공개한 방안이다. 당시는 북·미 정상간 합의를 통한 문제해결방안이 강조되어 이 방안에 별 진전이 없었지만, 이제 바이든 정부 하에서 구체적으로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제안은 중·러의 로드맵에 따르면 평화협정과 비핵화의 동시 진행을 국제적으로 보장하는 방안으로 미국이 포함된 동북아 다자안보체제를 형성하자는 방안이다.
그러나 북은 지난 2010년 이래 선평화협정을 제기해 왔다. 지난 6자회담 경험을 총화한 이 제안은 북의 선 비핵화나 평화협정과의 동시 진행은 모두 북·미간 신뢰회복(관계정상화)이 안 된 조건에서 상대에 대한 불신으로 모두 실패하였다는 평가에 의거한다. 북은 미국과 평화협정을 비롯한 신뢰구축조치가 선행되어야 이스라엘의 핵이 미국에 위협이 되지 않듯이 북의 핵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제기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평화협정을 체결해 북·미 적대관계를 근원적으로 청산한 이후 그 신뢰에 기반해 상호간에 비핵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자안보회의가 소집된다면 과거 6자 회담과 같은 비핵화 위주의 관점이 아니라 평화협정 체결과 그 이행의 국제적 보장이란 관점에서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비핵화는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북미간 신뢰회복 이후 상호간에 단계적으로 논의되고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당연히 다자안보회의는 북미 양자안보회의를 포함한다. 아마도 이 내용이 합의되어야 다자회의는 열릴 것이다.
미국이 지금과 같은 적대와 포위정책을 강화하는 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선의의 회의체계가 구축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는 그 대결상태의 종식을 위한 강대강 대결의 강을 건너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 첫 시험대는 8월 한미연합훈련이 될 것 같다. 만약 이 훈련이 어떤 형태로든 실시된다면 유관 지역은 거대한 위기국면을 맞게 될 것이다.
이렇듯 미국은 대 북·중·러 적대정책을 고리로 동맹을 결속시켜 패권을 유지하려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본질상 오바마 정부시기 전략적 인내정책의 재판이다. 그러나 이제 이런 낡은 정책은 북·중·러를 더 단결시키고, 세계 반제자주국가들을 더욱 결속시켜 미국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독자적인 정치, 경제 영역을 구축하게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세계는 다극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