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적 사대주의

2021-01-18     정설교 시인

임진왜란, 정묘재란에 이은 병자호란으로 조선은 외국군대들 전쟁마당이 되었으며 젊은 여인네는 능욕<강간>을 당했고 반반한 여인네는 일본과 청나라로 잡혀가 노비가 되었다. 임진왜란 정묘재란은 우리가 군사적인 대비가 없이 대국인 명나라만 의지하는 사대주의에서 발생했다.

임진왜란에 일본군에 값이 나가는 물건들은 모조리 강탈당했고 쓸만한 여인네는 첩으로 종으로 잡혀가며 백성이 짓밟혔지만, 임금은 저만 살겠다며 신의주로 피난길에 오르고 명군은 순망치한에 참전하여 일본군 못지않은 만행을 저지르며 우리의 부녀자들을 겁탈했다.

임진왜란을 겪고 조선은 국방력을 강화하여 병자호란 당시 조선에는 10만 병사가 있었지만 청의 4천 명의 기마병에 임금은 피난조차 못하고 포로가 되었고 삼전도에서 청나라의 노예가 될 것을 맹세했다. 수비조차 허술한 강화도는 청나라 수군에 무너져, 저만 살겠다고 도망간 임금의 측근들은 포로가 되었다.

▲ 삼전도비(三田渡碑) [삼전도비 : 위키백과]

삼전도 맹세 이후 당시 청나라가 조선에 매년 요구하던 세폐는 이렇다. 금 100냥, 백은 1,000냥, 수우각궁면(水牛角弓面: 활을 만들 때 필요한 소의 뿔) 200우, 표범 가죽 100장, 차 1,000포, 수달 가죽 400장, 청서피(靑黍皮: 다람쥐류의 가죽) 300장, 후추(胡椒) 10두, 호요도(好腰刀) 26자루, 단목(丹木: 소목(蘇木)이라고도 하며 붉은 물감의 원료로 주로 천을 붉게 물들일 때 씀) 200근, 호대지(好大紙) 1,000권, 순도(順刀) 10자루, 호소지(好小紙) 1,500권, 오조룡석(五爪龍席; 화문석의 일종) 4령(嶺), 각종 화석 40령, 백저포(白苧布: 흰모시) 200필, 각색 면주(綿紬: 명주) 2,000필, 각색 세마포(細麻布) 400필, 각색 세포(細布 : 麻布) 10,000필, 포(布) 1,400필, 쌀 10,000포.

그때나 지금이나 바뀐 것은 거의 없다. 병자호란에서 조선이 굴복하고 청일전쟁까지 조선은 청나라에 위와 같은 세폐를 매년 조공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로 일본은 한국의 지배권을 강화하게 되고, 러일전쟁이 일어나 다시 일본이 승리하자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하였다. 그리고 조선인을 일본에 충성하도록 하는 교육제도를 만들었는데, 그 중심에 경성제국대학이 있으며, 오늘에 <서울대학교> 식민지 친일관료들을 양성했다. 보국대, 징병, 부역 등으로 노동력과 생명을 일본을 위해 받치며 여자들은 종군위안부로 일본군을 위해 봉사했지만 오늘날까지 일본의 정당한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
일본은 원시림을 베어내어 일본으로 가져갔으며, 농지를 빼앗고 미곡을 일본으로 실어갔고, 어장을 빼앗았다. 그들이 건설했다는 도로나 항만은 식민지 수탈을 위한 것이다.

한국전쟁이 이후 미군을 위한 양공주들을 국가는 정책적으로 양성했고 한국의 여성들은 미군기지가 있는 곳곳 미군의 성 노리개로 전락했다. 한국은 음성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매춘부가 있는 나라이다. 미국은 사드를 비롯해 매년 고물 무기구입을 강요하고, 무려 5배나 되는 방위비증액을 요구하며, 죽음의 호르무즈해협에 파병까지 요청하지만 미국에게 ‘노’라고 대답하는 여의도의 거간꾼들은 단 한 명도 없는 실정이다. 대한민국은 ‘대’한미국‘이라는 나라이고 보니 역사는 반복하는 것이던가?

검은머리 외국인들이 친미사대주의에 의존하여 주둔미군 방위비며 매년 천문학적인 미국 고물무기구입으로 정치생명을 부지하는 현실이고 보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을사늑약과 별로 다르지 않는 것 같다.

현 민족작가연합 강원지부장
평창미술인협회 회원

자주시보, 강원도민일보 등에 만평, 칼럼, 시 등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