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를 떠나는 날

조헌정 쿠바여행기(10)

2020-10-24     조헌정 언론협동조합담쟁이 이사장

손님은 왕인가?

떠나기 전날 민박 주인에게 택시를 부탁했다. 아는 택시 운전수에게 전화를 걸어 예약을 했다. 올 때는 25불(내가 만난 멕시코 친구는 40불)을 지불했는데, 갈 때는 20불이라고 한다. 어제 떠난 친구는 15불에 택시를 예약했다고 한다. 나도 한번 시도를 해보았는데, 내가 떠나는 시간은 출근 시간이라 그 가격에 가능하지 않았다. 그 친구는 새벽에 떠나기에 가능했다.

운전수는 1957년형 폰티악 차를 끌고 왔다. 나이는 거의 70세에 가까운 인상이 무척 좋은 백인이었다. 한 40분 운전을 한 끝에 아바나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예약 티켓에 4시간 전에 도착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그런데 아무리 화면을 보아도 내가 타야 할 아메리칸에어라인은 보이지 않는다. 안내에게 물으니 마이에미로 떠나는 아메리칸 에어라인은 국제항공 터미날 3이 아닌 국내항공 전용인 터미날 2라고 한다. 내 티켓에는 터미날2라고 되어 있었지만, 도착한 공항터미날에는 국제공항이라는 팻말은 있었지만, 3이라는 표시가 없었다. 당연히 국제공항이거니 생각했다. 

▲ 예술의 전당 거리와 나 [사진 : 조헌정]

안내는 말하기를 밖에 나가서 택시를 타라고 한다. 3킬로정도 떨어져 있다고 한다. 택시비는 얼마냐고 하니까 10달러 이상은 지불하지 말라고 한다. 날은 무덥고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고 스패니쉬는 할 줄 모르니 당연히 택시를 타는게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가진 돈도 막바지였고(달랑 출국세 25불만 있었다.) 시간은 넉넉하고 남이 다 하는 것은 별로 따라 하지 않는 성격이니 3킬로 정도는 트레킹 삼아 걸어가기로 했다. 20킬로 가까이 되는 배낭 두 개를 짊어지고 따가운 태양 볕 아래, 인도 길이 없는 차길 옆길을 따라 손가락으로 지시해 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한 10분을 걸으니 땀이 나고 후덥지근하여 택시를 탈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약간 들기도 했지만, 내친 걸음이니 그냥 걸어갔다. 걷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찻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보니 왼쪽으로 국내공항 표시가 있었다. 그래 그쪽 방향으로 대로변을 따라 10분을 걸어갔다. 가다 보니 샛길이 보이는 것 같아 그쪽으로 걸어가려고 하자 어느새 내 뒤를 따라 걸어오던 어떤 사람이 영어로 어디고 가느냐고 묻는다. 보니 항공사 제복을 입었다. 

터미날 2로 간다고 했더니 반대 방향이란다. 갑자기 황당했다. 순전히 착각 속에 걸어온 것이다. 혹 인생에도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아까 갈라지는 곳에서 오른편으로 갔어야 했다. 돌아서서 다시 10분을 걸어갔다. 차들이 몇 대 쌩쌩 지나간다. 갑자기 빵빵 소리가 들린다. 건너편 길에 운전수가 차를 세우고 나에게 신호를 보낸다. 길을 건너 가까이 가보니 아까와 같은 항공사 제복을 입은 친구였다.

터미날 2로 간다고 하니까 타라고 한다. 참 이렇게 친절한 쿠바인도 있구나. 쿠바의 마지막 인상을 좋게 남기려는 쿠바 수호신이 보낸 천사였다. 

수속은 때로 지루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수속을 모두 끝내고 나니 두 시간이나 남아 있다. 그러면서 생각한 게 하나 있다. 나는 그동안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손님은 왕이다라는 관념에 젖어 있었다. 그런데 쿠바에 오니 가게 주인들이 자기 할 일 다 마치고 나서 물건을 팔지 내 뜻대로 빨리빨리 움직이지를 않았다. 기다리는 사람들 또한 이를 당연히 여겼다. 난 너무 돈을 쥐고 있는 손님 왕이라는 자본주의 관념에 깊게 젖어 있었다.

사람이 먼저라는 사회주의에서 왕은 물건을 파는 가게의 주인에게 맞는 말이지 손님이 왕일 수는 없다. 그건 돈이 주인이라는 노예의식의 산물일 따름이다.

▲ 등대섬 [사진 : 조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