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국가독점자본주의 해체와 미국 패권의 종식(1)

변혁의 시대에 진입하다 (8)

2020-06-26     김정호 북경대 박사

본문요지

종전 후 성립된 전기 국가독점자본주의 세계체제가 금-달러를 연계시킨 고정환율제에 기초하였다면, 1980년대 이후 성립한 후기 국가독점자본주의 세계체제는 금 태환이 필요 없는 ‘세계화폐’ 창출과 관련이 있다. 그 핵심은 자국 내의 통화팽창과 재정적자 문제를 세계경제에 전가시킬 수 있는 독점적 권한을 누가 갖느냐는 것이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달러패권의 종식은 좁게는 미국패권의 종식을 뜻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후기 국가독점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해체를 뜻한다.

6. 후기 국가독점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해체와 미국 패권의 종식(1)

1) 후기 국가독점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본질

케인스주의가 무너지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본격화한 1980년대 이후를 후기 국가독점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성립한 시기로 본다면, 그것은 금 태환이 필요 없는 ‘세계화폐’ 창출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세계화폐를 창출하는 방식에는 원래 여러 가지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할 수 있었다. 예컨대 케인스가 일찍이 1944년7월 ‘연합국 화폐금융회의’(즉 브레튼우즈협상)가 진행될 무렵에 제안했던 ‘화폐연맹’ 혹은 ‘세계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비주권화폐식의 세계화폐를 사용하는 방안이 그중 하나이다. 이 방안은 확실히 일국 주권화폐인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는 것보다 ‘평등하고 공평한’ 국제화폐제도를 기대할 수 있었다.

이처럼 좋은 방안을 놔둔 채, 현실은 1970년대 불태환 세계화폐의 출현이 일개 주권화폐에 불과한 달러를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거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하였다. 예컨대 국제통화질서에 있어 전후 상당기간에 걸쳐 구축된 미국의 기득권이 인정되었던 점, 그리고 냉전체제 하에서 더욱 공고화된 미국의 정치적 우위를 꼽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특정 국가의 기득권과 구제도의 관성만이 문제라고 한다면, 그 같은 요인들은 새로운 제도를 구축하는 데 있어 중단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결코 장기적으로 보다 합리적인 제도의 출현을 막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합리적인 새로운 규칙이 결코 미국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당연히 그러하다!), 비록 세계화폐를 독점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종합적인 여러 사항을 고려할 때 미국도 결코 이 같은 합리적인 국제화폐제도의 도입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현재의 복잡한 변동환율제도로부터 생기는 경제활동의 불확실성이 제거될 수 있을 것이며, 미국도 당연히 그로부터 이득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서는 지금과 같은 세계화폐의 독점권을 지키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음을 감안해야 한다. 그 비용은 미국이 세계 패권국가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지출해야 하는 막대한 군사비와 기본적으로는 일치한다. 따라서 다른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미국은 지금처럼 세계화폐 독점권을 지키기 위해 굳이 사력을 다할 필요는 없다.

역으로 이는 보다 중요한 사유가 존재함을 말해준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금-달러 연계를 기초로 고정환율제를 실시했던 전기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국제화폐체계(브레튼우즈체제)가 붕괴되고 새롭게 전환을 모색하게끔 만든 원인과 결부된다. 즉, 국내의 통화팽창과 재정적자 문제를 세계경제에 전가시킬 수 있는 독점적 권한을 누가 갖느냐는 것이다. 이점이 오늘날 자본주의적 국제질서 하의 ‘세계화폐’ 문제의 본질이자 후기 국가독점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근간이라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현 체제 하에선 세계화폐의 발행권은 각국 간에 공평하게 분배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그것은 오직 ‘독점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결국 그것은 자국의 대외부채를 ‘화폐화’ 할 수 있는 권한을 국제적으로 공인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같은 특권을 향유하는 국가가 많아질수록 자신의 몫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사실상 이 같은 성격을 갖는 세계화폐의 창출은 새로운 형태의 현대제국주의가 출현하는 과정과 일치한다. 종전 이후 냉전체제 하에서의 제국주의(1945~1970년대)가 형식상 ‘동맹적 제국주의’였다고 한다면, 1980년대 이후의 제국주의는 불태환 세계화폐의 독점권을 핵심으로 하는 미국 중심의 ‘단일패권적 제국주의’로 이행해 가는 중에 있다.1) 물론 오늘날의 국제 역관계 상 그 독점권을 완전히 혼자서 누릴 수는 없다. 하지만 국제통화체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자면 미국은 그중 가장 많은 부분을 향유하며, 나머지는 서유럽 제국과 일본의 몫이다. 따라서 달러패권의 종식은 좁게는 미국패권의 종식을 의미하지만, 넓은 의미로 본다면 후기 국가독점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해체를 의미한다.

2) 지구경제 일체화는 후퇴할 것인가?

만약 후기 국가독점자본주의 세계체제가 해체된다면 국제질서는 어떻게 변화할까? 중미 간의 대결이 최근 격화되고 있는 현실과 결부시켜, 이번 코로나사태를 계기로 세계화가 후퇴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4.27시대연구원 손정목 연구원은 “세계화가 끝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3. 세계화가 끝나고 있다.……미국의 블름버그(Bloomberg)통신은 지난 16일 ‘세계주의자들은 곧 멸종될지도 모른다’(Globalists May Soon Become an Extinct Species)라는 사설에서 ‘전후 미국의 만성적 무역적자는 세계화에 따른 중국과 다른 저임금 아시아 국가들에게 상품생산을 맡긴 결과’로, 그 결과 ‘미국인들은 수십 년간 실질임금이 오르지 않는 지옥 같은 생활을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세계화는 중국에 과도한 제조업 의존뿐 아니라 효율적이지만 취약한 공급망을 낳았을 뿐’으로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이러한 자유무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코로나19가 미국의 경제부문 ‘아메리카 퍼스트’를 실현하는 결정적 계기로 되고 있다. 이렇듯 미국과 유럽의 국경 봉쇄, 해외유입차단, 국가비상사태 선포 등은 한편으로 국민의 급격한 경제활동 위축으로 분노와 불안, 공포지수를 올리고, 다른 한편 독자의 생산활동 강화로 기존 세계화 체제를 부수는 과정이 되고 있다.”(손정목, “코로나19의 정치경제학(1)”, 민플러스)

이런 류의 주장은 그동안 지구화과정을 이끈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주로 ‘금융세계화’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관점에 그 뿌리를 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본질은 ‘금융세계화’가 아니라 ‘국제 분업’의 발전이라는 생산력 발전에 기초한 생산관계의 변화이다. 그 때문에 현재 진행 중인 지구경제 일체화는 그 추세로 볼 때 불가역성을 지닌다.2) 이에 대해 잠시 설명을 덧붙이기로 하자.

그간의 지구화가 진행되어 온 과정을 둘러보면 이러하다. 선행한 브레튼우즈체제가 해체되는 1970년대의 변화는 국제유통(무역)과 국제금융 영역의 발전을 가져옴과 동시에 각국 자본 간의 경쟁을 더욱 촉발시켰다. 이는 1970~1980년대 준비되어 온 신기술혁명을 촉진시키는 작용을 하였다. 지구적 경영을 뒷받침할 IT신기술혁명의 진척은 당시 다국적기업의 경제활동과 긴밀한 관련을 갖는다.

다음 사례를 보면 양자의 관계를 잘 이해할 수 있다. IT기술혁명의 핵심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극소전자 기술’의 개발은 1960년대까지는 주로 군사적 측면에서 추진되어 왔다. 그것이 민간부문으로 전환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1971년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개발이었다. 그런데 이 기술은 “일본 수동계산기 업체의 주문을 맞추기 위해 애쓰던 도중 테드 호프가 발명” 한 것이었다. 그리고 IT기술혁명에 있어 또 다른 중요 기술인 ‘원격통신’의 경우, “1980년대의 탈규제와 자유화를 향한 기업주의 움직임은 원격통신의 재편성과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된다.3)

이리하여 마침내 생산영역에서의 국제화, 즉 ‘국제 분업’에서의 일대 혁명을 초래하게 된다. 1990년대 들어 본격화한 IT혁명과 그즈음 때맞추어 찾아온 냉전의 종식은, 각각 기술과 정치적 차원에서 지구화를 가로막는 장벽들을 제거함으로써 국제 분업의 비약적 발전을 위한 조건을 제공하였다. 특히 기술 발전은 매우 결정적인 것이었다. 당시의 신기술혁명이 지구화경제의 수립과 관련하여 얼마만큼 결정적인 중요한 의의를 갖는지는 다음 인용문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충분히 성장한 경제의 지구화는 새로운 정보·커뮤니케이션기술의 기반 위에서만 진행될 수 있었다. 첨단 컴퓨터시스템은 복잡한 금융상품을 관리하고 고속으로 거래를 실행할 수 있는 새롭고 강력한 수리적 모델을 허락했다. 정교한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은 실시간으로 지구 곳곳의 금융센터와 연계됐다. 기업들은 온라인 관리로 국가와 세계를 가로질러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극소전자 기반의 생산은 부품의 표준화와 완성품의 주문화를 가능하게 했다. 완성품은 국제적인 조립라인으로 편성된 유연한 대량생산으로 나왔다. ……1990년대 말 인터넷은 새로운 형태의 지구적 비즈니스 기업인 네트워크 기업의 기술적 중추가 되었다.”4)

이제 국제 분업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지구적 공급사슬’이라는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여기서 말하는 ‘지구적 공급사슬’이란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 생산‧판매‧회수처리 등의 과정들을 연결하는 높은 수준의 국제 분업을 일컫는다. 우리는 그 전형적 사례를 자동차산업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미국 포드 자동차회사를 예로 들 경우, 그 차체와 차체밑판은 프랑스에서 생산되고, 모터는 영국에서, 바퀴와 유리는 네덜란드에서 생산된다. 또 열쇠·방향판·연료탱크·앞바퀴는 독일에서 생산되고, 주유관은 노르웨이, 전동가죽벨트는 덴마크, 산열기와 스팀계통은 오스트리아, 차축과 바람막이 유리는 일본, 속도계는 스위스, 일반 차 유리와 실린더는 이탈리아, 공기정화기와 저지 및 후시경은 스페인, 차 음향계통은 캐나다에서 각각 생산된다. 기업 본부가 있는 미국에선 단지 차바퀴와 와이퍼만이 생산될 뿐이며, 마지막으로 영국의 하리우드에서 최종 조립된다.

이렇듯 기업 내적인 생산과정이 곧 국제 분업이 될 정도로 오늘날 지구적 차원의 경제일체화는 진척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의 국제유통과 국제금융의 비약적 발전은 다름 아닌 이 같은 국제 분업의 기초위에서 재탄생한 것이며, 전 영역에 있어서의 새로운 국제화는 이렇게 하여 출현하였다. (계속)

[본문 주석]

1) 관련된 내용은 필자의 졸고, [지구화시대 자본주의 - ‘후기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제4장 현대제국주의, 민플러스, 참고 바람.
(
https://www.minplu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833)

2) 필자의 졸고, [지구화시대 자본주의― ‘후기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중 “신자유주의의 본질” 참조. (http://www.redian.org/archive/133878)

3) 인용부분의 출처는 마뉴엘 카스텔, 2003년,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p94, p95, 한울아카데미.

4) 위의 책,p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