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독일통일 사례 '통일교재'에 발끈…"흡수통일, 위험천만"

통일부가 올 2월에 펴낸 <통일문제의 이해>에 대해 북이 발끈했다. <아시아 경제>는 4월 8일자 기사에서 이렇게 제목을 뽑았다.

北, 독일통일 사례 '통일교재'에 발끈…"흡수통일, 위험천만" 

같은 날 <NEWSIS>는 “북한 매체, 통일교재서 독일식 언급했다고 통일부 비난” 이렇게 제목을 뽑았다. 

왜 이런 사달이 벌어졌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볼 때는 대한민국 정부가 독일식 통일에만 너무 집착하고, 예찬한 데 따른 귀결이라 하겠다. 

해서 이 글은 우리가 독일식 통일 경험과 교훈을 애써 무시해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예찬까지는 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글이다. 

1. 우리가 독일식 통일을 주목하는 이유는

▲국제사회의 지지확보를 통한 관계 개선 ▲평화적 통일 ▲교류협력 활성화를 통한 관계개선, 이 3가지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위 3가지의 경험과 교훈을 수용함에 있어, 한반도 통일문제가 곧바로 흡수통합으로 바로 연결하고 있다는 데 있다. 어디에도 한반도의 통일이 흡수통합으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결론은 없는데도 말이다. 

즉, 위 3가지 경험과 교훈을 벤치마킹( bench marking)해야 한다는 것과 독일식 통일이 주는 함의가 곧바로 흡수통합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것은 완전 다른 180°의 수용결과인데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혀 없다. 

수용방식이 참으로 위험하다. 진작 수용해야 할 위 3가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 없고, 오직 독일통일의 결과인 ‘흡수통합’에만 주목해서 그것만을 결과론적으로 인식하려는 그런 인식이 대단히 위험하다는 말이다. 

진작 더 주목해야 되는 것은 독일식 통일 경험과 교훈을 그 결과가 되어버린 흡수통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행방법으로 존재했던 ‘평화적 통일·국제사회의 지지·교류협력 활성화’방식에 더 관심 갖고 주목해야하는 것이다.

매우 위험하고도 잘못된 인식구조인 ‘독일식 통일=흡수통합’이라는 등식에서 벗어나 원래 벤치마킹하고자 했던 ‘평화적 통일·국제사회의 지지·교류협력 활성화’방식에 더 주목해야 한다. 

2. 독일식 통일이 우리 통일방안이 될 수 없는 명백한 이유

다음 독일식 통일이 왜 우리의 통일방안이 될 수 없는지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사전적 개념으로 독일 통일하면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서독으로의 흡수통합을 일컫고, 그 결과는 통일후유증을 심각하게 유발시킨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렇게 후유증을 남긴,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남긴 통일방안을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될 통일교본(敎本)이 될 수는 없다. 

실제 서독으로의 흡수통합은 동독 재건과 동독 실업자들의 생계지원에 예상보다 훨씬 많은 재원이 소요된 경제적 후유증과, 동독 주민들이 서독체제 적응과정에서 겪게 된 이러저러한 어려움과 갈등은 엄청난 사회적·심리적 후유증을 낳았다. 1등, 2등 국민 논쟁이 그 중심에 있었다.

둘째, 독일식 흡수통합이 왜 우리 모델이 될 수가 없는지는, ‘우리식; 한반도식’ 통일의 대상인 북의 입장이 너무나도 명백하다는 사실도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그들이 갖는 통일방안에 대해 한번 들어보자. “도이췰란드(독일)의 통일은 철두철미 일방이 타방의 사상과 제도를 집어삼킨 흡수통일”이라며 “그것이 도이췰란드에서는 통할 수 있어도 우리에게는 절대 통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 이어 “(독일경험을 살려 통일시대를 열겠다는 주장은) 군대와 인민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이며 천추에 용납못할 정치적 도발”이라 주장한다. (<로동신문>, 2014.4.3.)

셋째, 독일국민들 스스로가 평가한 독일통일에 대한 입장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시사저널> 2000년 6월 29일자는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 밑에서 동서독 협상의 막후 주역으로 활약했던 인물인 에곤 바가 독일의 유력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와 가진 대담기사를 실었는데, 여기서 그는 “한국이 독일에서 배울 점이 있다면 독일처럼 통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 10년 동안은 연방 체제를 유지하고 그 다음 10년은 교류를 깊게 하며, 한 세대에 걸쳐 접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흡수통합은 절대 권장 받을만한 방식의 통일방안이 아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위 3가지(를 다 합친 것) 보다 더 심각하고도 근본적인 문제는 동독을 주권국가로 인정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 하는 그런 문제인데, 결론은 브란트 정부를 포함한 그 어떤 서독정부도 동독을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과도 흡수통합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달리 말해 서독의 동방정책이라는 것도 사실은 화해·협력정책의 결과로 잘 포장되어 있어서 그렇지, 실은 서독의 ‘힘의 우위 정책’의 결과일 뿐이다.

했을 때 위 결과를 한반도 상황과 연계시켜보면 대한민국도 과연 지금까지의 화해·협력정책이 평화·번영정책으로 잘 포장되어져 있어서 그렇지, 예의 그 ‘잘못된’ 서독의 힘의 우위정책 연장선상에 한반도 통일도 꿈 꿔오지는 않았는지가 필히 대두된다.

더 나아가면 북 체제전환과 흡수통합을 그 전제로 한다. 

3. 그럼 독일식 통일이 우리에게 주는 반면교사는 

이렇듯 독일통일의 경험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명백한 교훈은 평화적 통일, 교류협력 활성화, 국제사회의 지지이다. 이행방법론에 대한 결과이다. 

하여 독일식 통일경험이 소중하기는 하지만, 그것과 우리가 착시하고 혼동해서는 안 되는 것은 이른바 모든 통합은 곧 흡수통합이라는 결과밖에 없는 걸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각이 독일의 통일경험 수용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것도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놓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첫째, 대비(=비교)를 하고자 한다면, 대비의 조건에 대한 등치성이 보장되어져야 하겠다.

통일 이행경로와 통일방식, 그 통일 이후의 상은 전혀 다른 차원의 대비법이다. 즉, 방법론과 통일의 본질(혹은, 본령)을 동등의 위치에서 비교하는 모순적 대비법이다. 혼동해서는 절대 안 되겠다. 

둘째, 두 나라; 한반도와 독일이 분단되는 그 과정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그 극복방식과 통일방안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착목해진다. 

구체적으로는 ①분단의 과정과 관련되어 있는데, 이는 아시다시피 독일의 분단은 전쟁 패전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응징성격이 강하다. 반면, 북과 남은 전쟁을 일으킨 전쟁국가도, 패전을 책임져야 할 패전국도 아니다. 

이름하여 전쟁을 일으킨 국가와 전쟁의 피해국가, 패전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국가와 패전과는 하등 상관없는 그런 국가가 어찌 똑같은 통일의 방식과 결과를 갖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보론]당시 상항에 대한 간략한 해설: 제1차 세계대전 뒤 베르사유 체제가 등장했지만, 그 결과는 패전국 독일을 유럽에서 지정학적으로 더 강력하게 만든 역설이 발생했다. 유일 승전국 미국은 자신이 주도한 국제연맹을 의회에서 비토하고, 다시 아메리카대륙으로 철수했고, 러시아는 볼셰비키혁명으로 자발적으로 국제체제에서 철수했다. 

또한 영국은 힘이 빠진데다, 유럽대륙에 대한 ‘영예로운 고립’ 정책을 고수했다. 제1차 세계대전 뒤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세워진 동유럽 소국들은 독일을 견제할 힘이 없었다. 유럽에서 독일을 견제할 유일한 세력은 허약한 프랑스뿐이었다. 

결과는 나치 독일의 탄생이었고, 또 다시 그 토대위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그러니 통일독일은 국제사회의 승인이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남과 북의 통일은 그러한 절차(국제사회의 승인)는 필요 없고, 오직 민족자주의 관점에서 민족의 통합과 통일을 가로막은 외세의 입김과 간섭을 극복하는 계기로 작용되어져야만 한다. 

②체제의 내구성에 있어 동독과 북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동독은 비자발적이면서도 비자립적 사회주의체제였다. 반면, 북은 자발적이면서도 자주·자립·자강의 사회주의체제이다. 

차이는 또 있다. 동독은 소련의 위성국가로서의 사회주의국가체제였다. 그래서 소련의 입김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반면, 북은 소련의 위성국가도 아니며, 그러니 소련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나타날 수 있는 지표는 위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해 발생되는 차이의 총합만큼이나 큰데, 그 정점에 체제내구성 문제가 있는 것이다. 결과 동독은 이념적 측면에서나, 경제 자립적 측면에서나, 정치·군사적 자강의 측면에서나 북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북은 자신들의 지도자가 창시한 주체사상을 사회주의체제의 지도이념으로 명확히 하고 있으며, 자강력 제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자립적 민족경제론을 굳건히 세웠고, 또 핵무력을 근간으로 하는 자강의 군사강국이라는 측면이 동독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즉,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질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 천문학적인 통일비용(분단비용)을 대한민국 정부가 감당할 수 없다. 

알다시피 독일의 경제력과 대한민국의 경제력에는 큰 차이가 있다. 기억과 경험도 서독으로의 독일통일 당시 독일경제가 휘청거렸으며, 동시에 ‘2등 국민’론이 대두되어 동서독간의 갈등도 극심했다.

실제 서독은 동독을 흡수하면서 그 재건비용이 약 1조 마르크로 예상했으나, 결과는 2조 마르크 수준인 한화 약 1,000조 원을 상회한 것으로 알려져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대한민국이 과연 이 재정을 감당할 수 있는가?

김광수 약력 
 
저서로는 『수령국가』(2015)외에도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그리고 현재는 부경대 기초교양교육원(평화교육) 외래교수로 출강한다.

주요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자문위원/6.15부산본부 자문위원/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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