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노점상 정책을 엿보다

최인기 빈민스토리(24)

2020-01-14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

1. 중국 상하이, 홍콩, 그리고 대만의 노점상 정책

‘노점상 국제회의와 워크숍’에 참여한 노점상 관련 정부 정책담당자를 통해 중국의 노점상 정책에 대해 알게 됐다. 한때 중국에서도 1950년대 이후 비공식 상행위, 즉 인민들이 거리에서 머리를 깎거나 물건을 사는 행위조차 어렵게 규제하려는 흐름이 있었다. 그러나 1978년에 개방정책을 실시하면서 빠른 속도로 도시화가 진행되고, 그 결과물로 실업과 빈부격차가 심화되자 인력거를 끄는 사람과 노점상 등 비공식 부문에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중국 상하이는 비공식 부문 조합에 결합한 노점상의 수가 약 27만 명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2004 국제노점상 서울대회 자료 87쪽). 상하이도 다른 나라와 같이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노점상에 대한 권익향상과 무료법률 자문과 기술훈련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하여 공식적인 부문으로 취업이 가능하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당시 노점상 국제회의와 워크숍에 참여한 담당자가 정부의 공무원 신분이었던 것을 고려해야겠지만) 중국의 상하이 역시 노점상이 늘어나면서 ‘사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더 많은 실정’이라는 보고가 있을 정도로 도시화로 인해 노점상은 큰 현안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이민자가 늘면서 노점상이 늘었고, 상하이는 상가를 얻기 위해 지불하는 월세가 너무 높다는 문제도 있었다. 기존의 노점상이 공식적인 상가로 재진입하기가 어렵다는 주장이었다. 2013년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 단속으로 인해 노점상이 고통받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한편, 홍콩의 경우엔 1975년 약 2만 5천 개의 노점상이 있었으나 2000년대 들어 9,000개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신규허가를 원칙적으로 금지함으로써 노점상 숫자를 총량제로 유지하고 있다. 관리 주체로는 행정원 환경위생국에서 정책을 담당하고, 194개 조 3500명의 상근직원으로 이뤄진 ‘노점상관리대’를 운영해 단속, 고발조치, 물품압수를 하고 있었다. 이는 전체 노점 4개당 1명이라는 막대한 인력이 투여되는 것이다(서울시정개발연구원, 노점상관리방안 중 장기대책 모색. 141쪽).

홍콩의 노점상은 40여 개 지역에 노점상 연합조직을 결성하여 시위, 서명운동을 전개하며 허가제 확대, 점용료 인하 등을 요구하고 있다. 2016년 홍콩에서 대규모 폭력 시위가 벌어진 계기 역시 음식노점 영업 중이던 먹거리 노점상 10여 곳에 불시 단속을 펼치면서 시작됐다. 이른바 우산 혁명 이후 ‘어묵 혁명’으로 불릴 정도로 격렬한 저항을 불러왔다.

대만에선 1984년부터 건설국을 중심으로 경찰 위생 환경부서가 노점 관리업무를 담당하고 1986년부터는 ‘타이베이 노점상 관리규칙’이 시행되고 있다. 1993년 기준으로 타이베이 전역에 노점상 약 2만 5천 개가 산재해 있으며 절반은 허가받지 않은 노점상이다. 허가 대상자의 기준은 타이베이시에서 6개월 이상 거주, 심사 비준을 거친 영세가구, 신체장애인, 50세 이상이며, 기타 규제안을 통해 허가를 취소하게 되어있다. 대만도 홍콩과 마찬가지로 늘어나는 신규 노점상으로 관리 비용을 크게 지출하고 있다.

2. 일본 후쿠오카 야타이 노점상 정책

▲ 일본 후쿠오카의 야타이 노점상

일본에서 불리는 ‘야타이(屋台)’는 지붕을 가진 노점상이란 뜻으로, 일본에선 1945년 후생성(후생성은 과거의 일본 국가기관으로 노동성과 합쳐져 현재는 후생노동성으로 재편되었다)이 나서서 대대적인 노점상 단속을 하는 등 커다란 사회갈등의 요소였다. 1955년 이후 지속적인 노점상 관리를 전개하다 1965년 도로사용허가 취득 요강을 결정하고 3m×2.5m의 규격화가 실시되었다. 그 후 명의변경금지, 각서 및 서약서 제출, 신규 영업금지, 그리고 2000년 7월 1일 ‘야타이 지도 요강’ 이란 조례를 제정 시행하고, 도로법 32조에 따라 ‘물품 판매 등을 목적으로 도로상에 임시로 설치하여 토지에 고정되어 있지 않아야 하는 것’으로 노점을 규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규정은, 도로운송차량법 제2조 제4항에서 규정하는 ‘경차량에 야타이 영업을 위해 설비를 부착한 것’ 등으로 변해왔다. 일본의 노점상은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1997년 기준 전국적으로 약 400여 개의 노점상만 산재해 있으며 후쿠오카현에 280여 개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서울시정개발연구원, 노점상관리방안 중 장기대책 모색. 121쪽).

도로점용 허가는 도로법에 근거해 구청에서 허가하며 기간은 4개월 정도다. 도로사용 허가는 도로교통법에 근거해 경찰서에서 허가하는데 허가 조건은 가로 3m, 세로 2.5m의 면적과 오후 6시부터 오전 4시까지 운영을 규제하며, 허가 기간은 2개월이다. 영업허가는 식품위생법에 근거하여 보건소에서 허가하며 허가 기간은 5년이다. 이 밖에도 공원에는 도로점용 허가와 도로사용 허가 대신 ‘공원 내 행위허가’를 별도로 취득해야 하는 등 그 절차가 매우 까다롭다. 도시 미관을 고려하여 마차를 주차장에 반드시 보관해야 하며, 주변 청소를 자율적으로 해야 하고 사업자는 조합주관으로 소득 신고 후 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노점상 관리는 각 구청 토목국 관리부 도로관리과 내 야타이 문제 대책반에서 전담하며 이들은 야타이 지도 요강에 의거해 순회지도원이 구별로 2명씩 배치돼 주 3회씩 순회하고 점검한다. 또한, 보건소 소속 위생감시원이 정기 순회 지도를 하고 경찰과 보건소의 합동 순회도 하고 있다.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경중에 따라 일반위반, 중대위반, 특별중대위반으로 구분하고 각각에 대해 지도체계를 두어 누적 시 ‘허가취소’까지 시키고 있다.

후쿠오카시는 지금도 시정모니터제를 운용하여 야타이를 관광명소로 소개하며 홍보하고 있지만, 실제 2016년 후쿠오카의 나카스 지역을 방문했을 때 약 20여 대 미만의 포장마차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음식 포장마차를 제외하고 손수레 노점상에 대해서는 상가와 노점상 간의 자율적 관리가 이뤄지고 있었으며 행정당국이 별도로 관리정책을 시행하고 있지 않음에도 그 숫자는 미미할 정도로 적었다.

일본의 야타이 노점상은 한국의 ‘노점관리대책’의 모델이 돼 서울시청과 관련 연구기관에서 이를 오랫동안 벤치마킹해 온 것으로 보인다. 노점상 주체가 조직화 되어 스스로 터전을 지켜내지 못했을 경우 생존권이 어떻게 유린당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3. 프랑스 파리의 노점상과 벼룩시장

2007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개최된 노점상 국제회의 후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다. 파리 거리에 대한 첫인상은 대로변에 잘 만들어진 가로가판대가 우선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가로가판대는 파리의 거리와 어울리게 디자인되어 있었으며 신문 등을 보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듯했다. 파리의 명소 몽마르트 언덕 근처에 모여 있는 거리 화가들도 자유롭게 인물화를 그려 판매하고 있었지만, 허가받지 못한 화가들은 화판과 그림 도구를 들고 서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허가받은 노점상과 비허가 노점상이 대별되는 웃지 못할 장면이었다.

▲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의 노점상

파리 센강 변의 책방 거리 ‘브끼니스트’처럼 유럽의 노점상은 오래전부터 ‘프리마켓’ 형식의 벼룩시장이 활성화되어있다. 프리마켓을 벗어나면 엄격히 단속하지만, 이곳에서는 누구나 참가비를 내면 장사를 할 수 있다(이 모델은 최근 서울시에서도 벤치마킹하여 청계천 일대와 한강 고수부지 및 광화문 일대에서 주말 벼룩시장을 펼치고 있다). 파리 시내의 이 같은 야시장은 주로 전철역이나 주택가 자투리땅을 활용해 시장을 개설하고, 도로 사용료를 내고 용역 업체가 공급하는 전기와 물을 이용해 장사한다. 많게는 약 2백여 개의 좌판이 펼쳐지고, 이곳은 항상 물건을 사려는 관광객과 손님으로 북적거린다. 판매하는 상품도 채소와 고기, 과일은 물론 옷가지와 각종 잡화까지 다양하다. 일주일에 두 번, 수요일과 일요일에 벼룩시장이 열리는데 물건이 싱싱하고 값도 싸 주민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4. 미국의 노점상 허가제

언론에 보도된 자료를 토대로 작성된 미국의 노점상 정책을 보자. 미국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노점상 허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가장 늦게 추진된 지역은 LA시로 2016년 12월 LA 시의회 공공사업·갱 방지 소위원회는 노점상들의 영업행위를 엄격히 규제하면서도 노점상을 합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노점상 허가 제도를 만장일치로 승인하고 관련 법규 마련을 촉구한 바 있다. 의회는 2017년 노점상 합법화 조례안(Sidewalk Vending ordinance)을 찬성 11, 반대 2로 통과시키고 2018년 개최된 LA 시의회 전체회의에서 13대0 만장일치로 최종 합법화 조례안을 승인했다.

법규는 시내 각 지역의 노점상들이 언제, 어디서 영업할 수 있는지를 상세히 규정하고, 한 블록 당 2개 노점상만 허가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프라이스 시의원은 “생계유지를 위해 오랫동안 지하경제의 일부로 남아 있던 길거리 노점상들을 공정하게 규제하면서 이들이 생계를 꾸려갈 수 있도록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데이비드 류 시의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범법 이민자 우선 추방 정책 공언으로 생계유지를 위해 불법 노점상을 운영하다 경범죄로 전과가 생길 경우 추방될 위험이 더욱 커지기 때문에 불법 노점상들을 구제해야만 하는 도덕 규범이 생겨났다”며 카렌 프라이스, 조 부스카이노 시의원 등과 함께 노점상 합법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편, 경제 리서치 그룹인 ‘이코노믹 라운드테이블’에 따르면 LA 시내 노점상들의 연간 매출은 총 1억 달러에 달하고 있으며, 이중 식품 관련 노점상이 전체의 43%로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또 실제 LA시에는 현재 1만여 명의 음식 노점상과 4만여 명의 일반 노점상이 영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한국일보 2017.02.01. LA시 길거리 노점상 합법화한다).

2019년 1월부터 5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LA시의 노점상들은 합법적인 운영이 가능하게 됐다. 시는 노점상 운영자들에게 조건부 허가증을 발급해줄 계획을 내놨다. 허가증을 받은 노점상들은 반드시 노점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처리를 책임져야 하며, 보행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노점을 운영해야 한다. 또, 다른 노점상과의 거리는 최소 3피트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불법 운영이나 규정 위반 시 물게 될 벌금 등 갖춰야 할 세부 규정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시는 2020년 1월까지 기한을 두고 더 자세한 노점상 합법화 운영규칙을 고심할 것이라고 밝혔다(유정타임즈 2018.11.29).

그러나 뉴욕시 노점상 관련 기사에 따르면 최근 지하철역과 기차역 등의 안전강화와 질서유지를 위해 경찰 배치를 대폭 늘리고 있는데 노점상이 과거 단순히 벌금만 받고 말았던 것에 비해 현장에서는 수갑을 채우며 체포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자 경찰의 과잉대응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뉴욕시민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물건을 파는 노점상일 뿐 안전에 위협을 가하거나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닌데 굳이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수갑을 채워 체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이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노점상 본인이 이동식 노점상 허가증을 50달러에 받아야 하고 이동식 노점 트럭이나 수레는 개별로 200달러에 받아야 한다. 큰 금액이 아니지만, 문제는 이들 허가증의 숫자가 제한돼 실제 이 금액을 내고서도 허가증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1983년 뉴욕시는 시 전체에서 허가되는 노점상 허가증의 숫자를 2900개로 지정했는데, 30년이 넘도록 이 숫자가 그대로 유지되었기 때문이었다.

허가증은 택시 면허와 유사하게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적게는 수십 배에서 많게는 수백 배의 가격을 내고 허가증을 빌리게 되는데 노점상 임대나 양도는 불법이기 때문에 양측이 모두 불법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노점상 허가증 거래는 암시장에서 계약서도 없이 현금으로만 비밀리에 거래돼서 허가증을 빌리는 측은 사기를 당해도 속수무책이 된다. 현재 뉴욕시에서 노점상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사람은 약 2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현재 허용된 허가증의 7배에 달하는 수치다. 뉴욕시 의회는 향후 수년간 노점상 허가증의 숫자를 점진적으로 늘리는 것을 고려 중이며 상원 의원 ‘제시카 라모스’는 노점상의 허가증 숫자 제한을 없애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뉴욕 노점상 관련 기사 참조 www.econovill.com 2019.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