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분노 일으킨 ‘노조파괴법’, 그리고 더 센 자유한국당

1일 ‘ILO 핵심협약 비준’ 위한 정부입법안 발의... 한 술 더 뜬 자유한국당 법안은?

2019-10-17     조혜정 기자

정부가 지난달 24일 국무회의에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안을 의결한데 이어, 지난 1일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정부 입법안)을 의결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ILO 핵심협약 비준동의안은 87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의 보호에 관한 협약’과 98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에 대한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이다.

그리고 1일 발의한 정부 입법안은 노조법,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 개정안 등 3개의 법안이다. 실업자와 해고자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과 ▲사업장 점거 제한 ▲사업장 종사자가 아닌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제한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 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이낙연 국무총리. 정부는 이날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안(노조법,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 개정안)을 심의, 의결했다. [사진 : 뉴시스]

“법안 밀어붙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는 이유.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노조활동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쟁의행위와 파업은 사업장 밖에서 하라”, “산별노조 임원과 해고자는 현장출입을 하지 말라”, “단체협약을 3년에 한 번씩 하라”는 것인데, 민주노총은 “정부가 최소한의 국제기준인 ILO 기준조차 미달하는 법안을 밀어붙이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져 물을 수밖에 없었다.

“쟁의행위는 사용자의 점유를 배제하고 조업을 방해하는 형태로 할 수 없다. 또한 생산 기타 주요업무에 관련되는 시설, 이에 준하는 시설은 ‘전부’는 물론 ‘일부’도 점거할 수 없다.” 사업장 점거를 제한하는 법안은 ‘쟁의행위 시 직장점거’를 정당한 수단으로 인정하는 ILO 국제기준에 반한다. “쟁의행위와 파업은 사업장 밖에서 하라”는 얘기다.

민주노총은 “이미 현행법(노조법 42조·46조 등)으로 사업장 내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는 다양한 제한을 받고” 있는데, 여기에 더해 “사업장 내 직장점거를 입법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을 추가할 경우 헌법상 보장된 파업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일 뿐만 아니라, “사업장 내 평화로운 피케팅, 위법한 대체인력 투입 감시활동 등 현행법이 인정하는 보조적 쟁의수단을 행사하는 것마저 불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끊임없이 제기해왔다. 이번 정부 입법안 “생산 기타 주요업무시설에 대해 전부는 물론 ‘일부’ 점거마저 금지한다”는 것에 ‘전부 또는 일부’의 의미는 100% 금지하겠다는 것”이란 비판이다.

정부 입법안엔 사업장 종사자와 비종사자를 구분해 조합 활동을 차별하고 제한하고 있다. “실업자·해고자뿐만 아니라, 산별노조 등 초기업단위 임원·조합원도 ‘종사자 아닌 조합원’으로 취급된다는 점이다.” 이 내용은 무엇일까?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등 산별노조의 위원장은 사업장 종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인 현대자동차 공장을, 보건의료노조 소속인 영남대의료원을 들어가는데 매번 사용자 허락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정부 입법안의 내용대로라면, 사용자 측은 산별노조 등 초기업단위, 상급단체의 활동을 제한하고 악용할 수 있다. 민주노총이나 산별노조 간부들이 소속 사업장의 현장순회, 조합원 교육 등을 하려고 해도 제한을 받는 것이다.

▲ 사진 : 뉴시스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확대한다”는 법안 내용 역시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이 지나치게 장기화 되어서는 안된다”는 국제노동기준에 위배된다. “헌법상 보장된 단체교섭권을 과도하게 제약”하는 것은 물론이다. 복수노조 사업장의 경우 교섭대표노조가 아닌 소수노조는, 교섭대표노조가 결정된 후 최소 4년 이상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없게 된다. 이는 “실질적으로 단체교섭권을 박탈하는 조치”라는 것이다.

단위노조 위원장의 임기가 보통 2년인 점을 고려하면, 임기 중 단체교섭을 한 번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한다는 것, 결국 ‘노동조합의 단결력·단체교섭권 박탈’과 다른 말이 아니다.

경사노위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에서 사용자위원인 전국경제인총연합회(경총)는 ILO 핵심협약 비준에 ‘방어권’이 필요하다며 ▲쟁의행위 기간 대체근로 허용 ▲쟁의행위 시 직장점거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조항 삭제 ▲쟁의행위 찬반투표 절차 엄격화 등을 요구해왔다. 그 주장은 정부 입법안에 포함돼 있다.

‘노조활동 제한’ 받고 ‘사측 부당노동행위 봐주기·노조해산’까지 주장하는 자유한국당

정부 입법안이 발표되자마자 민주노총은 “정부의 ILO 핵심협약 비준과 입법 동시 추진은 사용자와 보수정당 달래기에 불과하다”고 못 박았다. 정부가 국제사회가 합의한 노동권의 최저선을 위반하는 입법안을 내놨지만 자유한국당은 한발 더 나아간 입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지난 7월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나경원 원내대표의 “노조의 사회적 책임법을 만들겠다”는 반노동조합 공세에 이어, 같은 달 9일 자유한국당은 ‘노동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특위장을 맡은 이장우 의원도 나 원내대표의 연설을 반복 주장했다.

그리고 ‘노조의 사회적 책임’의 미명과 맥을 같이 하며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내놓은 노조법 개정안들은 ‘노조활동 제약’을 넘어 정부 입법안보다 한술 더 뜬 내용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소속인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6월 발의한 법안은 “노동조합이 법 위반 쟁의행위를 3회 이상 하면 행정관청이 노동위원회의 의결을 받아 해산할 수 있도록”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도 앞서 지난 4월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내용은 물론 ‘쟁의행위 기간 중 대체근로 금지 규정 삭제’의 내용과 ‘사측의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규정을 삭제’하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신 의원과 추 의원은 지난달 17일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점’ 정책토론회를 공동으로 개최하기도 했는데, 신 의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일방적 ILO 비준은 민주노총 등 강성귀족노조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다름없다”고 민주노총을 대놓고 겨냥했다. 추 의원은 “지금 문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기업을 옥죄는 ILO 핵심협약 비준 추진 강행이 아니”라고 말했다. 노동조합 활동 제한에 반발하는 노동계와 대척해 ILO 핵심협약 비준이 ‘기업을 옥죈다’고 편들었다.

▲ 8일 환경노동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김학용 환노위원장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환노위 위원장인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1일 ILO 핵심협약 비준은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에 또 다른 불확실성만 키우는 불씨가 될 것”이라고 했고, 환노위 간사인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도 지난 4일 국정감사장에서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면 우리나라에서 기업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기업활동을 걱정하며 ILO 핵심협약 비준엔 반대하면서, 노조활동을 방해하거나 제약하며 나아가 노동조합 해산까지 시킬 수 있는 법안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하반기 투쟁... ‘노조파괴법’ 막는다

정부가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며 발의한 입법안엔 ▲사업장 점거 제한 ▲사업장 출입 제한 ▲단협 유효기간 확대 외에도 노동자의 반발을 사는 것은 또 있다.

LO 핵심협약 87호의 핵심은 ‘누구나 노동조합을 설립·가입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정부가 제출한 노동관계법 개정은 “특수고용노동자와 간접고용노동자의 ‘노동자’의 지위는 물론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도 언급하지 않고”, 공무원노조법 개정안도 “노조 가입대상의 직급 기준은 삭제했지만 지휘감독권을 가진 공무원의 가입은 극히 제한하고, 그마저도 노조가입 제한의 권한을 노동조합이 아닌 법으로 정한다는 족쇄를 채웠다”는 것.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 교원·공무원 노동자 등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동자들은 “ILO 헌장과 협약에 명시한 ‘역진금지 원칙’을 명백히 위배하는 정부 입법안을 당장 폐기해야 하며, 사용자 달래기를 그만두고 ILO 핵심협약 비준안 통과에 온 힘을 쏟으라”고 요구한다.

▲ 사진 : 뉴시스

국정감사 후 국회 일정을 앞두고 정부와 자유한국당이 발의한 ‘노조파괴법’을 막아야 한다며 민주노총과 산별노조 간부들은 소속 사업장을 돌며 11월9일 10만 전국노동자대회, 11월30일 민중대회, 11월 말~12월 초 노동개악 저지·노동기본권 쟁취 총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조합원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노조파괴법’이 통과되면 ‘종사자 아닌 조합원’인 민주노총, 산별노조 간부들은 소속 사업장에서 현장순회와 조합원 교육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를 막고, ‘노조파괴법’을 막고, ILO 국제기준에 맞는 핵심협약 비준안 통과에 나서겠다는 것이 노동자들의 하반기 결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