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시 김원봉이어야 하는가?

애국마저도 이념의 장벽에 가둔 그들, 그들은 친일세력의 후손들이다

2019-07-07     김광수 정치학 박사(북한정치 전공)

생각난다. 영화 ‘암살’을 보면서 묵직한 중저음으로 울린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요” 그 한마디에 김원봉에 대한 매력을 흠뻑 느꼈다. 결과도 나만 그런 것은 아닌듯하다. 천만 영화관객(정확하게는 2019년 7월 4일 기준 12,706,819명)이 이를 입증해주니 말이다. 

그 기억을 되살림과 함께 한참 떠들썩하다가 지금은 좀 잠잠해진 약산 김원봉 얘기를 다시 끄집어낼까, 말까를 고민했다. 결론은 끄집어내어야 한다 였다.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봤다는 말이고, 서훈과 훈장논쟁, 김원봉과 건국문제, 공적문제와 체제이탈자 문제 등 비교적 그런 문제가 중심된; 약산의 활동과 월북의 그림자 사이의 갈등조명보다는 다른 차원에서 하나 확인받아야 할 지점이 있다고 본 것이 그 이유이다.

▲ 약산 김원봉[사진 : 위키백과]

그래서 이 글은 좀 다른 각도에서 김원봉 얘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다름 아닌, 보수세력의 이념정체성과 그 뿌리에 관한 얘기이다. 결론도 이들 세력은 철저한 친일세력들의 후손들이고, 그들이 중심이 되어있는 자유한국당(이하, 자한당)이 왜 해체되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단초가 되었으면 한다는 점이다. 
 
그 결론으로부터 우리는 올해를 꼭 기억해야만 했다. 아시다시피 올해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마땅 아픈 역사이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는 매우 뜻깊은 해이기에 독립운동과 항일운동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한 한해였다.

(모르긴 몰라도) 그 연장선상에서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항일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을 언급했고, 분명 그런 취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그런 의도와 취지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발생한다. 여느 해보다도 더 엄숙하고 뜻깊은 기념·계승이 필요한 100주년이었지만, 느닷없이 ‘애국논쟁’으로 번져버린 것이다. 연장 선상에서 대통령은 ‘빨갱이’가 되어버렸고, 비례해 임정 법통을 헌법적 가치로 이해해온 우리 국민들은 그 인식과는 상관없이 미래 세대들에게 부끄러운 선조들이 되어버렸다. 

차명진(전 새누리당 의원이자 지금은 보수세력의 대표논객 중 한 명으로 활동 중)은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이었다.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원봉이 누구인가. 김일성 정권 권력 서열 3위, 6·25 남침 최선봉에 선 그놈이다"라며 "그런 놈을 국군 창설자라고? 이보다 반(反)국가적, 반헌법적 망언이 어디 있는가? 그것도 현충일 추모사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란 자가!” 그렇게 글을 남겼다. 

정말 한심하다. 그 정도밖에 인식못하는 인물이 대표적인 보수논객으로, 또 국회의원까지 지냈다는 것이 참으로 한심스러워서 하는 말이다. 마치 조선시대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이 내뱉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그 인식에서 단 한 발짝도 진화하지 못한 인식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참으로 씁쓸했다. 오버-랩(overlap)도 이런 오버-랩이 없다.

항일독립운동을 한 그 인물에 대해 그 인물을 애국자로 부르지 못하고, 또 역사왜곡을 바로잡겠다는 대통령을 향해서는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그 행위가 어찌 홍길동의 울분과 닮아있지 않단 말인가? 

감정 톤-다운(tone down)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들은 왜 이런 인식구조를 가졌을까? 결론에 애국을 이념코드로 해석해내고, 대한민국 사람이면서도 일본의 의식 구조에서 단 0.001mm도 빠져나오지 못한 그들의 이념적 장애 때문임이 읽힌다. 

해방 이후 이승만을 비롯한 친일세력이 대한민국을 집권했고, 그 뿌리들이 대한민국을 아주 오랫동안 지배해왔으니 그들에게는 그 약점을 감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애국’을 보수의 기치로 둔갑시켜야만 했고, 그 과정에서 이념적 마사지가 철두철미하게 필요했던 것이다. 

즉, 계속집권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화장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거추장스러운 부산물이었고, 불편한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인 그 애국을 반공으로 둔갑, 즉 「애국 =반공」으로 일체화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이때부터 그들은 애국이 갖고있는 그 보편적 개념으로서의 의미보다는 이념적 잣대에 의한 이데올로기적 개념으로의 애국개념을 상용시켰고, 애국에 대한 변질은 그렇게 시켰다. 

그렇듯 본질은, 김원봉 훈장논쟁의 본질은 훈장논쟁 그 자체일 수가 없는 것이다. 김원봉의 항일독립행위를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도전이자 항일독립행위에 대한 사회학적 정의와 역사적 개념을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그들의 이념적 저항인 것이다. 

그 도전을 김원봉 훈장논쟁에서 했을 뿐이다. 

민족의 아픈 역사마저도 정치공학으로 이용하는 악성정치인들이자 그 후손임을 만천하에 고한 것이다. 당리당략으로만 활용할 줄 알았지, 역사의 무거움이나 정의적 수용성은 거의 제로이다. 좀 더 순화하더라도 역사와 정치는 구분되어야 하는데, 그럴 능력도 실력도 없다. 철저하게 정치적으로만 활용할 줄 아는 몰 역사정치집단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이 불리한 역사얘기는 전혀 할 줄 모른다. 노덕술이라는 인물이 그 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구속하고 암살한 그 공로(?)로 일제의 훈장까지 받았고, 그런 그가 또 대한민국에서는 ‘충무’무공훈장을 비롯해 무공훈장 세 개를 받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문제가 분명하지 않는가. 

보수세력이 갖고있는 가장 약한 고리가 다름 아닌 친일세력의 정치적 명맥을 잇고 있다는 점이고, 결국 그것 때문에 애국을 ‘애국’ 그 자체로 보지 못하고 이데올로기화한 반공의 시각에서만 규범적 가치로 사수해내어야만 하는 그들의 곤궁함. 그러면서도 그들 집단이 집권세력으로 있어야만 하는 그 존재이유가 자신들의 치부가 절대 드러나면 안 된다는 그 ‘불편한’ 진실 때문임을 수용하는 그 순간 역사바로잡기와 바로세우기를 근원적으로 반대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태생적 반(反)애국집단성이 낱낱이 밝혀진다. 

이념착시와 보수정치세력의 민낯도 이런 민낯이 없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진보보다 보수가 더 애국의 가치에 더 가까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는 오히려 애국이 보수에게 불편함을 주는 정치적 자산임도 알게 한다. 보수의 역설이 그렇게 애국 뒤에 숨어 우리를 직면하게 한다.
 
김원봉 논쟁의 본질은 그렇게 그들의 그런 치명적 약점을 필사적으로 숨겨야만 단발마인 것이다. 그리고 반발의 이유가 그렇게 마땅히 설명되어질 수 있다면 그 역설이 왜 자한당이 해체되어야만 하고, 의미 있는 정치세력으로 결코 남아있어서는 안되는지를 함의할 수 있다. 

논리와 인식을 그렇게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이다. 임정의 법통과 제대로 된 건국이념을 수용한다면 더더욱 그러해야만 하는 것이다. 

자한당은 친일세력 핏줄을 그대로 이어받은 정치부대이고, 그런 만큼 마땅히 해체되어야 하고, 또 역사와 정치를 구분해서 김원봉을 보면 김원봉 그는 분명 우리가 ‘거룩하고 위대하게’ 기억해야 될 이름임을. 

억지도 아니다. 분명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다. 물론 그 어떤 애국도 (일제의) 현상금 액수로 그 애국의 가치를 매길 수는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당시 김구선생(60만원, 현재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198억)보다도 더 많은 현상금이 붙은 김원봉(100만원, 현재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320억)이었다. 

그만큼 두려웠다는 말일 것이다. 해서 그 어떤 수식어보다 김원봉이 항일독립운동했던 확실한 증거가 된다. 존재 그 자체만으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위대한 항일독립혁명가임이 분명하다는 말이다. 

결론이 그렇게 분명하게 나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놓고 김원봉 훈장논쟁을 좀 하자면, 즉 논리싸움을 좀 해보면 아래와 같다. 

김원봉을 반공의 이념적 잣대로 항일공적을 폄훼하고 싶다면, 똑같이 비례해서 국민훈장 중에서도 최고훈장인 ‘무궁화장'을 받은 황장엽에 대해서도 똑같이 대해야 한다. 

그런데도 아무런 말이 없다면 이는 분명 진보의 이념적 경도보다는 보수의 이념적 경도문제가 더 큰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이유는 보훈처 규정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 및 적극 동조한 것으로 판단되거나 정부수립 이후 반국가 활동을 한 경우 포상에서 제외한다’는 것이 문제가 되어 김원봉에게 훈장을 수여하지 못한다면 왜 황장엽은 이 규정적용에서 예외 시켜야 하는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인식구조여서 그렇다.

끝이 아니다. 무릇 모든 상에는 그 상의 성격이 있다. 예하면 대한민국 최고의 훈장인 무궁화대훈장은 그 수여대상자가 대통령과 우방원수 및 그 배우자만 받을 수 있고, 건국훈장은 대한민국 건국과 관련한 그 공적내용으로 상을 주고, 국민훈장은 자유민주주의체제로서의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그 체제하에서 국민의 복지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인물에 수여하는 상이다. 

했을 때 건국훈장은 일제강점 시절 독립운동을 했는지 여부로 평가해야지 해방 이후 행적을 심사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즉, 건국훈장과 관련해서는 김원봉이 항일공적이 인정되느냐 마느냐가 본질이지, 김원봉의 월북과 고위관료라는 그 사실이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자유민주주의체제와 건국훈장이 연계되는 것이 아니라, 건국훈장과는 건국과, 국민훈장과는 자유민주주의체제가 연관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백번양보해 건국훈장과 건국에 대한 기여도를 그들의 논리대로 그대로 수용한다하더라도 결론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愚)’와 같다는 것이다. 

이념을 떠나 김원봉을 비롯한 항일독립운동이 없었다면 건국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그 문제에 답을 하지 못한다면 건국훈장의 개념은 항일의 연장선상에서 접근해야 하는 그런 문제라는 것이다. 이른바 동전의 양면관계이고, 같은 논리로 김원봉의 이후 행적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김원봉이 당시 항일독립운동이 임정을 이어 건국에 결정적 역할을 했는가, 그렇지 않는가하는 그런 문제를 문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결론도 위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항일독립운동과 건국은 때래야 땔 수 없는 그런 동전의 양면이고, 김원봉이 건국훈장의 성격규정에 부합되지 못할 이유가 하등 없다이다. 

다만, 이럴 수는 있다. 김원봉에게 국민훈장을 수여하겠다면 이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즉, 논란이 될 수 있고, 자격시비도 반드시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김원봉은 그 상의 성격과는 분명 맞지 않는 자유민주주의체제 이탈자이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이념을 가졌다는 것, 월북 후 고위관료를 했다는 것 그런 것들이 분명 자격시비가 된다는 말이다. 건국훈장과는 달리 이들 상이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띈 대한민국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해서 사회주의체제에 고위관료로 있었던 김원봉에게는 제아무리 그분이 애국의 공적이 높다하더라도 해당 상의 성격에 부합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논쟁을 하려면 이 정도는 부합해야 한다. 하지만, 건국과 항일에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하기 위해 만든 건국훈장에 김원봉을 자격 시비한다? 말이 되지 않을뿐더러 의도가 다분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위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그들의 태생적 정치토대 때문이다. 

이른바 자신들의 그 ‘구린’ 친일세력의 흠집을 감추고자 하는 단발마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이북정권 수립과 남침에 기여한 인물들까지 독립운동가의 훈장을 줘야 할까? 라는 논쟁으로 그 논쟁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분명 본질을 흩트리는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고 술수이다. 뿐만 아니라 애국이 이념의 문제가 아님을 스스로 역설해준다. 역설적으로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라기보다는 오직 시대문제이자 공적의 문제임을 입증한다. 자한당의 존재이유 없음도 그렇게 증명된다. 

김광수 약력

저서로는 『수령국가』(2015)외에도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그리고 현재는 부경대 기초교양교육원 외래교수로 출강한다.

주요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자문위원/6.15부산본부 자문위원/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