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약속이행” 요구에 정부가 답할 차례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사상 첫 총파업… 공공부문 비정규직·차별 철폐, 노정교섭 요구

2019-07-03     조혜정 기자

오늘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교육기관, 공공기관 등에서 일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상 최초 연대 총파업이 열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취임 직후 인천공항을 방문해 ‘비정규 제로(0)시대’를 선언하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문 정부의 최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이 정책은 공공부문, 나아가 민간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기도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3년 차. 정확히 말하면 2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 후퇴’와 ‘노동개악’에 맞서 총파업을 선언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민주일반연맹·서비스연맹에 소속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10만여 명이 쟁의권을 확보했고, 오늘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총파업대회엔 6만여 명이 상경한다.

▲ 사진 : 뉴시스

정부가 고용하고 있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는 100만 명이 넘는다. 공공부문 1400여 개의 기관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무기계약직·기간제·용역·파견·민간위탁·시간제·특수고용·초단시간 근로 등 다양한 형태로 고용돼 일해왔다. 그들의 일터는 행정기관, 지자체, 공항, 학교, 병원, 톨게이트 등 국민들의 생활과 밀접히 연관된 곳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질적인 사용자가 “대한민국 정부와 대통령”이라고 말한다. “20여 년 동안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와 노동조건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통보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를 상대로 예산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노동을 총괄하는 고용노동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총괄하는 행정안전부가 참여하는 ‘노정교섭’을 요구해왔지만 결국 총파업까지 이르게 됐다. 지난 6월 17일 학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100여 명은 청와대 앞에서 집단 삭발을 했고, 30일엔 한국도로공사 소속 톨게이트 요금수납노동자 40여 명은 서울 톨게이트 캐노피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여야 하는 처지다.

파업에 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통령이 약속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은 후퇴했다”, “상시·지속업무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제도 도입, 비정규직 차별해소를 위한 차별금지특별법 제도 마련, 공정임금제 도입으로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 80% 수준으로 축소하겠다는 대통령 공약은 실종됐다”고 주장하며 “정부가 아무런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사태를 극단적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들이 총파업을 하는 이유다.

▲ 민주노총이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을 열어 20만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공동파업 찬반투표 결과를 발표하고 총파업 돌입을 선언했다. [사진 : 뉴시스]

대통령의 약속이었지만 되레 ‘후퇴’의 길을 가고 있다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민주노총 보고에 따르면 공공부문 파견·용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은 아직 43.9%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다(2018년 기준). 자치단체는 76.9%가 정규직 전환이 완료되지 않았다. 국립대병원의 전환율은 0%다. 민간위탁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기존 전환 기조와는 달리 ‘자율적 전환’을 검토하는 것으로 후퇴했다. 상시지속 업무임에도 정규직 전환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생겼다. 학교 교사·강사 등 교육기관에 기간제 형태로 고용된 7만 2천 명 노동자 중 11.8%에 해당하는 8천 5백 명 만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정규직이 되더라도 무기계약직이거나 직접고용이 아닌 용역업체에서 ‘자회사’로 소속만 바꿔 전환을 강요하는 것도 문제다. 서울 톨게이트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노동자들의 상황이 대표적인 사례다.

요금수납노동자들은 2009년까지 국토부 산하 한국도로공사 정규직 직원이었다. 그러나 IMF와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을 거치면서 두 차례 구조조정을 겪으며 용역업체 하청직원으로 전락했다. 열악한 임금과 노동조건, 온갖 인권침해에 시달렸고, 용역회사로 이름 만 바뀌었을 뿐 한국도로공사 정규직으로 일했을 때와 하는 일은 동일했다. 인원 관리 및 근무 지시는 한국도로공사가 했기 때문에 요금수납노동자들은 법원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청구했다. 1심과 2심에서 모두 “한국도로공사가 요금수납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라”는 판결을 받았으나 한국도로공사는 법원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고 상고해 대법원 판결만 남겨둔 상황이었다.

▲ 6월30일, 한국도로공사 소속 톨게이트 요금수납노동자 40여 명이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서울 톨게이트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사진 : 뉴시스]

한국도로공사는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발표에 맞춰 자회사 설립을 추진했다. “자회사로 전환하면 ‘불법파견’이라는 불법을 피할 수 있고, 대법원이 ‘불법파견’을 판결하면 법원의 판결에 따라 요금수납원 6700명을 직접고용해야 하기 때문에 무리하게 자회사를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한국도로공사는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지난 2017년 11월부터 2018년 9월까지 총 9차례에 걸쳐 ‘노사전문가협의회’를 진행했다. 정부에서 파견한 전문가위원들은 한국도로공사의 자회사 일방 추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회의를 종료했지만 한국도로공사 측은 한국노총 등 개별 동의 서명을 진행하며 일방적인 자회사 전환을 추진했다.

한국도로공사는 자회사에 동의하는 노동자들에겐 ▲임금 30%인상 ▲정년 61세 연장 ▲임금피크제 적용 제외 등을 약속했고, 반대로 직접고용을 주장하는 노동자에겐 ▲대법원 판결 전까지 기간제 고용 ▲정년연장 불가 ▲승진 미적용 ▲경력 미인정 ▲임금피크제 적용 등을 제시하며 자회사 전환을 강요했다.

결국 6월30일, 자회사로 전환을 거부한 1500명에 달하는 톨게이트 요금수납노동자들은 대량해고 됐고, 그들은 해고된 다음날인 7월1일 서울 톨게이트 고공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1일에 이어 2일엔 정규직 전환의 책임자인 청와대를 찾아 대책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자회사 전환 거부는 노동자들의 선택”이었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현재까지 진행된 정규직 전환 시행 결과, 기간제(25만7천→18만4천), 파견·용역(17만4천→6만7천)은 줄었지만, 무기계약직은 21만 5천 명에서 36만 명으로, 자회사 소속은 8천 명에서 4만 2천명으로 늘어났다. 인천공항도 1만여 명이 정규직이 됐지만 인천공항 소속은 3천 명, 나머지 7천 명은 자회사 소속이 됐다. 온전한 정규직 전환이 아닌 셈이다.

그래서 3일 파업에 나서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첫 번째 요구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철폐’, 즉 ▲상시·지속 업무 예외 없는 정규직 전환 ▲직접고용이 아닌 간접고용 구조를 유지하는 자회사 전환 중단 ▲공공부문 비정규직 사용제한 시행이다.

▲ 사진 : 뉴시스

오늘 역대 최장기간, 최대규모 파업을 결의하고 광화문광장에 모이는 학교비정규직(학비) 노동자.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약 50%에 달하는 35만 명이 학비 노동자다. 전체 학교 교직원의 41%가 비정규직이다. 이날 4만여 명의 학비 노동자들이 상경해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과 함께 ‘차별해소’를 외친다.

그들에게 “공정임금제 도입으로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 80% 수준으로 축소하겠다”는 대통령의 공약은 유명무실하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을 상대로 교섭을 벌이고 있는 학비 노동자들의 요구는 2020년 기본급을 최저임금인상률 이상(기본급 6.24%)으로 적용하라는 것, 정규직과의 근속급 차별을 해소하라는 것, 복리후생 차별을 해소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용자인 교육부와 교육청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인상률(기본급 1.8% 인상)을 제시하며 이 외엔 수용을 거부했다. 임금인상률 1.8%는 2019년 공무원 평균임금인상률로 해마다 교섭 없이도 적용되던 금액이니 학비 노동자들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최저임금 노동자이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약 50%인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가 큰 만큼 지난해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따라 가장 큰 규모의 피해를 봤다. 단체교섭으로 어렵게 만든 복리후생비가 산입범위에 포함되면서 작년보다 임금이 줄어들었다(1년 81만 4천 원).

학비 노동자들은 정부 임기 내에 ‘공정임금제’를 실현해 정규직과 학교비정규직의 차별적 임금 구조를 개선하고, 최저임금 1만 원 이행과 산입범위 확대에 따른 대책을 수립하라고 요구한다. 공정임금제 시행과 최저임금 1만원은 모두가 알다시피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다.

▲ 지난달 17일 청와대 앞에서 “대통령 공약이행”을 촉구하며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100명이 집단 삭발했다. [사진 : 뉴시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노동자들이라고 차별 문제에 있어서 사정은 다르지 않다.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전환 이후 임금수준이 16.3% 인상됐다고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16.4%, 10.9%)과 유사한 수준이다. 복지수당이 일부 신설된 것을 제외하고는 임금 인상은 거의 없으며, 전환 후에도 처우개선 대책역시 부재하다고 노동자들은 주장한다. 2020년 정부 예산편성 세부 지침엔 인건비 인상 기준을 설정하지 않고 있는 등 정부와 공공기관의 예산편성과 집행과정에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임금 격차를 완화하고 차별을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없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주52시간 노동 시행과 그에 따른 인력충원 역시 정규직과는 달리 무기계약직, 자회사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에겐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공공부문 비정규직 철폐, 차별 철폐, 공공부문 노동시간 단축과 좋은 일자리 창출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모두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공약하고, 당선된 후 약속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비정규직 차별해소’, ‘공정임금제 실현’ 등과 같다. 지금 그들의 요구는 한마디로 ‘대통령의 약속이행’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는 정부가 그들의 요구에 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