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위원장의 파격적인 정치스타일

4.27시대연구원의 ‘북 바로알기 100문100답’ 맛보기(1)

2019-03-26     4.27시대연구원 김동원 연구위원

4.27시대연구원이 한반도 정세 변화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성큼 다가온 북한(조선)에 대한 대중적 이해를 돕고자 올 상반기 중에 (가칭)<북 바로알기 100문100답> 단행본 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맛보기로 몇 꼭지를 민플러스에 공개하오니 많은 관심과 지적 부탁드립니다. 첫 순서는 김정은 위원장의 정치스타일에 관한 것입니다. [편집자]

[문] 김정은 위원장의 정치 스타일, 국정운영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무엇인가요? 

한마디로 표현하면 ‘파격(破格)’이 아닐까 싶은데요. 새것에 민감한 젊은 지도자이기에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기존 관행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행보가 두드러진다고 하겠습니다.
 
가까운 예로는 이달 중순 치러진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687명의 명단을 발표했는데 김정은 위원장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북의 최고지도자가 1948년 정권 수립 이래 처음으로 최고주권기관인 최고인민회의에서 빠지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왜 그런 걸까요? 북의 공식 설명이 없어 추측만 가능한데 아마도 형식주의를 싫어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성격이 반영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은 각 지역 선거구에서 뽑는 만큼 실제 지역을 대표할 인물을 뽑는 게 맞다고 판단한 건 아닐까요? 물론 다음달 14기 최고인민회의 첫 회의 자리에서 김 위원장을 ‘전 인민의 대의원’으로 선출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지켜볼 일입니다. 

그 직전 있는 제2차 전국 당 초급선전일꾼대회에 보낸 김 위원장의 서한 역시 놀랄만합니다. 최고지도자(수령)의 위대성을 교양하는데서 나타난 ‘신비화’ 경향을 꼬집었습니다. 이 역시 전례 없는 일이지요. 김 위원장은 서한에서 “위대성 교양에서 중요한 것은 수령은 인민과 동떨어져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민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헌신하는 인민의 령도자라는데 대하여 깊이 인식시키는 것”이라며 “만일 위대성을 부각시킨다고 하면서 수령의 혁명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우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위대성 교양 역시 인민의 눈높이에 맞게 ‘진실’에 근거한 인민대중제일주의를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즉 “수령의 사상리론도 인민들을 존엄높이 잘살게 하기 위한 인민적인 혁명학설이고 수령의 령도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 그 힘을 발동시키는 인민적 령도이며 수령의 풍모도 인민을 끝없이 사랑하고 인민에게 멸사복무하는 인민적 풍모라는 것을 원리적으로, 생활적으로 알게 하여야 한다”는 겁니다. 

앞서 신년사 발표에서의 잇단 파격도 눈길을 끌었지요. 
올해 1월1일 신년사를 집무실 소파에 앉아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하듯 발표한 것도 이채로웠지만 사실 더 놀라웠던 건 두 해 전인 2017년 신년사였습니다. 
그는 조선중앙TV로 전국에 중계된 신년사 말미에 “또 한해를 시작하는 이 자리에 서고 보니 나를 굳게 믿어주고 한마음 한뜻으로 열렬히 지지해주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인민을 어떻게 하면 신성히 더 높이 떠받들 수 있겠는가 하는 근심으로 마음이 무거워진다”고 운을 떼곤 “언제나 늘 마음뿐이였고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해를 보냈는데 올해에는 더욱 분발하고 전심전력하여 인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찾아할 결심을 가다듬게 된다”고 토로했습니다. 반성과 다짐을 밝힌 건데요, 이 역시 전례 없던 일입니다.  

김 위원장의 파격은 내치(內治)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의 거침없는 언행은 남북,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더 두드러졌습니다.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 기억하겠지만, 남북 정상이 11년 만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만난 지난해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첫 악수를 나누면서 김 위원장이 건네 화제가 됐던 말입니다. 문 대통령이 분계선을 넘어 방남하는 그에게 “나는 언제쯤 (북에)넘어갈 수 있을까요?”라고 묻자 즉석에서 분계선 북쪽으로 함께 건너갔다 오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이어 판문점 남쪽 평화의집에서 열린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선 점심식사를 위해 평양에서 냉면을 준비해 온 사실을 알리다가 “(평양이)멀다고 말하면 안 되겠구나”하고 말해 첫 상봉에 긴장된 회담 분위기를 일순간 누그러뜨리기도 했지요. 

이뿐이 아닙니다. 이후 9월18~20일 평양 정상회담은 파격의 절정이었습니다. 
남쪽 정상이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정상회담을 한 것도 처음이고, ‘9월 평양공동선언’을 채택한 이튿날 저녁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을 함께 관람하고 문 대통령이 평양 시민들 앞에서 직접 공개 연설한 것도 처음입니다. 더욱이 문 대통령의 연설 내용엔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네요. 
김 위원장은 또 리설주 여사와 함께 이날 점심(옥류관)과 저녁(대동강수산물식당) 모두를 문 대통령 부부와 함께하기도 했습니다. 당초 예정에 없던 일정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날 백두산 산행도 마찬가지지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파격은 이어졌습니다. 
지난해 6.12싱가포르 정상회담 전날 밤 예정에 없던 싱가포르 쥬빌리 다리 산책은 물론, 지난 2월27일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중국대륙을 종단하는 4500km 기차여행도 그렇습니다. 또 두 차례나 현장 미국 기자의 질문에 대답한 것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특히 확대정상회담 직전 기자가 “비핵화할 것이냐”고 물은데 김 위원장이 “그럴 의지가 없었다면 여기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능란하게 답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최고의 대답”이라고 감탄하기도 했지요. 북의 최고지도자가 미국 기자의 즉석 질문에 답변한 건 처음입니다. 
잇단 김 위원장의 파격적인 외교행보는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지난해 4.27 판문점회담 이후 4차례 중국 방문과 싱가포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및 베트남 방문 등 숨 가쁘게 일정을 이어왔지요. 

이런 김 위원장의 파격 행보들은 어쩌면 그가 집권한 때부터 예견됐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선출돼 공식 집권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2012년 5월초 평양 만경대유희장 현지지도에서 그가 격노했다는 사실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보도됐습니다. 김 위원장이 직접 보도블록 사이 잡풀을 뽑으며 “일꾼들의 눈에는 이런 것이 보이지 않는가.…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려는 양심이 있다면 이렇게 일할 수 있는가”라고 엄하게 질책했다는 내용인데요, 선대 최고지도자들의 현지지도 보도에선 없던 양상입니다. 일부러 공개한 거겠는데요, 김 위원장이 “이 기회에 (일꾼들의)인민들에 대한 복무정신을 똑바로 간직하도록 경종을 울려야 하겠다”고 한 데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형식주의와 무사안일에 경고장을 날린 셈이지요. 

그리고 두 달 뒤인 7월초 북의 조선중앙TV와 로동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이 모란봉악단 시범공연을 관람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그와 한 여성이 나란히 선 모습을 영상과 사진으로 공개했습니다. 부인 리설주 여사였습니다. 리 여사의 신원은 10여일 뒤 조선중앙TV 등이 김 위원장의 릉라인민유원지 준공식 참석 소식을 전하며 “환영곡이 울리는 가운데 김정은 원수가 부인 리설주 동지와 함께 준공식에 나오시였다”고 해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이 또한 선대 지도자들 시대엔 전례 없던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