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용균이가 돼 싸우자”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 1만여 노동자 “진상규명, 비정규직 철폐·외주화 금지” 촉구

2019-01-19     조혜정 기자

민주노총이 19일 광화문광장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어 2019년 첫 투쟁을 시작했다. 이날 민주노총의 요구는 ▲비정규직 철폐, 위험의 외주화 금지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인력 확충이다.

발전5개사 비정규직 직접고용 등 민간과 공공영역의 상시고용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한 구조적·근본적 대책 마련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정부-유족-시민대책위원회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진상조사를 벌이고, 발전소 비정규직 작업의 안전 확보와 주52시간제 준수를 위한 인력충원에 대한 내용이다.

▲ 사진 : 선현희 기자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무대에 올라 발전소 외주화와 민영화 실태를 지적했다. 최 위원장은 지난 16일 노동부가 발표한 태안발전소 특별근로감독 결과에 대해 “유족들과 노동자들의 참여는 배제한 채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한 근로감독에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행위가 무려 1029건이 적발됐다. 도대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왜 이런 안전사고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인가”라고 따져 묻곤 “지난해 3월 실시된 안전보건 진단에서도 ‘하청구조가 살아있는 한 발전소 사고는 막을 수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고 꼬집었다.

이어 “발전회사도 알고, 노동부도 알고, 산업통상자원부도 아는데 하청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공공부문 하청구조, 특히 에너지부분의 하청구조는 철저하게 민영화와 함수관계가 맺어져있다”면서 한국발전기술의 민영화 문제를 지적했다. 최 위원장은 “김용균 노동자가 소속된 한국발전기술은 원래 남동발전의 자회사였다. 방만경영을 뜯어 고친다는 명목으로 최대주주를 민간자본에 넘겨버렸다. 태안화력 1~8호기를 돌리는 한전산업개발은 어떤가? 제1대 주주가 자유총연맹”이라며 “발전소를 외주화·민영화시킨 세력들은 혜택을 받았고 특정자본이 배를 불리는 사이 노동자들의 안전은 철저히 외면 받아왔다”고 규탄했다.

시민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김용균 노동자의 유가족과 함께 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 대표는 “세월호 사고를 두고 단순한 교통사고인데 왜 호들갑을 떠느냐고 말했을 때처럼, 김용균 노동자의 사고에 대해서도 안타깝긴 하지만 산재사고는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에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 우리 국민들이 분노했던 것만큼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은 심각한 사안”이라며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에 가담했기 때문에, 정부가 공공부문을 외주화하고 비정규직을 마음대로 쓰게 했기 때문에 김용균이 죽었다”고 분노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유가족를 욕했던 세력에 대항해 국민들이 유가족을 지켜줬던 것처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유가족을 지켜 달라”고 말했다.

고 김용균 군이 지난해 말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고 싶다’며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에 참가를 신청했을 당시 자신도 대표단 참여를 신청했다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무대에 올랐다.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8~19일, 열아홉살 청년노동자가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구의역을 출발해 청계천 전태일 동상을 지나 청와대까지 행진했다.

차헌호 아사히 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어제 비정규직 노동자 6명이 청와대 앞에서 손 현수막을 펼쳐 항의행동을 하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5명은 풀려났고 남은 1명은 구속영장을 신청한다고 한다”면서 “이 노동자를 구속한다면 3년차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노동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차 지회장도 “어머님이 비정규직 대표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끝날까 두렵다’고 이야기하셨다. 하나뿐인 자식을 잃고 세상을 다 잃은 어머니는 또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가 이대로 죽으면 안 된다면서 싸워보겠다고 하신다”면서 “사람들은 용균이 어머님이 민주노총이라고 이야기한다. 용균이 어머님이 어떻게 민주노총의 역할을 대신하시는가? 우리 어머님이 우릴 위해 싸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용균이 어머님을 위해 싸워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호소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문재인 정부와 국회를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민주노총의 요구를 전달했다.

김 위원장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정부와 국회는 고 김용균 노동자의 비참한 죽음이 있고서야 겨우 움직였다”고 비판하며 “산안법 전부개정으로 우리의 투쟁과 요구는 끝난 것인가, 지금도 시커먼 석탄을 떨구며 돌아가는 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는 더 이상 청년 노동자들의 목숨을 위협하지 않는단 말인가, 한 노동자가 목숨을 잃으면 또 다른 하청노동자를 투입하는 죽음의 외주화는 끝났다는 말인가, 하청구조·이윤중심의 공공부문 민영화는 끝났단 말인가”라고 추궁했다.

이어 “법과 제도가 사고를 부추기고 범죄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고 치료할 수 없다면 이제 정부가 나서서 그 공백을 메우고 강력한 정책 추진으로 중단시켜야 한다”고 강조하곤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책임자를 처벌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부터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겠다는 약속을 철저히 살피고 점검해야하며,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지고 노동자의 목숨을 담보로 이윤을 내는 공공부문의 외주화를 즉각 중단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같은 장소에서 열린 5차 범국민추모제에 참가했다.

한편,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시민대책위)’는 18일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 대해 입장문을 내고 “진상규명의 목적인 재발방지책은 찾아볼 수 없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내용이 대책에서 사실상 삭제됐다. 유족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잔치를 거두고, 재발방지를 위한 진상규명과 정규직화에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정부는 유족과 시민대책위가 추천하는 현장노동자와 전문가들로 ‘특별산업안전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태안발전소를 포함해 전국 12개 석탄발전소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발전소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대해서는 “앞으로 본격적으로 논의하겠다”고만 밝혔다.

앞서 시민대책위는 11일, 정부를 향해 ‘권한 있고 독립적인 <진상규명위원회> 구성’을 요구했다. 정부, 유족, 시민대책위가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정부위원으로는 노동부·산업통상자원부·기획재정부에서 산업재해 조사와 예방, 발전산업 운용, 공공기관 예산을 총괄하는 국장급 이상의 참여를 요구하는 한편, 죽음의 외주화를 중단하고 발전소 비정규직을 직접고용으로 전환하기 위한 결단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