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책임자 처벌 전엔 대통령 안 만날 것”… 어머니 눈물

청년 비정규직 김용균 군 범국민추모제… 5천여 명 참가 ‘진상규명·비정규직 정규직화’ 촉구

2018-12-30     조혜정 기자

지난 27일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는 순간을 지켜보며 두 눈을 꼭 감고, 가족들의 손을 꼭 쥐었던 어머니는 29일 다시 광화문광장에 섰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 김용균과 함께 가자. 사람답게 사는 세상 김용균과 함께 가자. 내가 김용균이다. 우리가 김용균이다”를 외치는 아들의 동료들과 시민들과 함께 앉아 아직 다하지 못한 말을 하기 위해서다. 청와대로 가야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청년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군을 추모하는 2차 범국민추모제가 29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 사진 : 뉴시스

“진상규명·책임자 처벌 없인 대통령 만나지 않을 것”

참가자들은 산안법 개정에 대해 “이제 막 첫 걸음을 내딛었을 뿐”이라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한목소리로 외쳤다.

청년 비정규직 고 시민대책위원회(시민대책위)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경자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 먼저 무대에 올라 산안법 개정에 대한 소회와 유가족 및 시민대책위의 요구안에 대해 밝혔다. 김 수석부위원장은 “‘아들의 꿈을 부모로서 우리가 이루겠다’고 누구보다 완강한 투쟁을 하신 김용균 군의 어머님, 아버님이 28년 만에 산안법이 개정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셨다”면서 유가족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어 “진상규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유가족과 시민대책위는 일관되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위해 특별근로감독에 유가족이 모든 권한을 위임한 시민대책위와 전문가들의 참여를 요구했지만 보장하지 않고 있다. 유가족들이 긴급요구로 내건 태안발전소 1~8호기 작업은 중지되지 않고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해서도 따져 물었다. 김 수석부위원장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는 지지를 얻기 위한 쇼였는가, 아니면 대통령이 책임지겠다고 이야기 한 것인가. 왜 발전소 비정규직은 단 한 명도 정규직이 되지 못했나. 왜 지금도 그의 동료들은 비정규직이고, 정규직에 대한 희망이 없이 살고 있는가”라고 추궁하곤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정부가 책임지고 집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아들에게 쓴 편지를 읽어내려가는 고인의 어머니 김미숙씨 [사진 : 함형재 담쟁이기자]

고인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아들에게 쓰는 편지를 들고 무대에 섰다. 김 씨는 사랑하는 아들을 부르며 “비인간적인 학대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죽은 내 아들... 불쌍하고 억울하고 분통이 터진다”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이틀 전 통과된 산안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태안발전소에서 10년 동안 12명이나 목숨을 잃었는데, 발전소 하청에게 일을 시키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용균이의 친구들은 하청노동자로 일을 해야 한다. 이런 절박한 내용을 담아내지 못했고, 원청기업을 강력하게 처벌하지 못하는 것도 너무 화가 난다”면서 개정안에 담긴 ‘도급금지 적용 업무의 제한’과 ‘기업 처벌 조항’에 대한 부족함을 언급했다.

그는 이어 “문 대통령의 약속이 제대로 지켜졌다면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었다”면서 대통령이 유가족을 만나자고 했던 제안에 “대통령이 약속했고 용균이가 이루고자 했던 꿈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아들 용균이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이 철저히 밝혀지지 않고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만나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시민대책위 법률지원단 송영섭 변호사는 “진상규명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송 변호사는 “왜 고인은 혼자 위험한 일에 내몰렸고, 사고가 난 뒤 5시간동안 사고현장에 방치된 채 어둡고 추운 곳에서 혼자 견뎌야 했나. 여기에 이 사건의 본질이 있다. 그 이유를 찾는 것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라며 “2인 근무라는 원칙만 지켜졌어도 ‘피할 수 있었던 구조적인 사고’”라고 꼬집었다.

송 변호사는 또 “현장에 있는 비상 멈춤 장치는 컨베이어가 돌아가는 밖에 설치가 돼 있다. 기계를 멈춰야 하는 상황이 돼도 한명이 일하면서는 멈출 수 없다. 설비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동절기에 설비가 한번 멈추면 계속 멈추게 된다며 24시간 움직이는 상태에서 작업하도록 구조화 돼 있다. 이것이 고인이 혼자 어두운 곳에서 작업을 하고, 사고 당일 5시간 방치된 이유”라고 알리곤 “죽음의 원인을 제공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은 사고 다음날 물청소를 하면서 증거를 인멸하고 현장을 훼손됐다”면서 “반드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구속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초에 불을 밝히며 유가족들에게 “진상규명·책임자처벌, 발전소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해 함께 싸우겠다”고 약속했다.

▲ 사진 : 함형재 담쟁이기자

제2의 김용균이 없도록… “비정규직 없애자”

경기도 분당 한국발전기술에 소속돼 김군과 똑같은 작업복을 입고 현장을 정비하는 노동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노훈민 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유가족들에게 쓴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김군의 어머니·아버지의 심정을 어루만졌다.

“만지고 싶고, 보고 싶은 내 아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같이 울었다”면서 “노동자를 내 아들과 같다며 국회에서 며칠 동안 절박한 심정으로 애써주시고, 유가족분들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신 것에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그러면서 “용균이와 같은 젊은 청춘들에게 다시는 이런 죽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현장 노동자로서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에 온 힘을 다하겠다”고 다짐을 전했다.

12년째 학교에서 급식을 만드는 노동자로 일한다는 비정규직 노동자 김영애 씨도 “비정규직 노동자를 없애는 일에 함께 나서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1년이면 1만 명이 잘려나가는 학교비정규직, 그 1만 명 중에 한명이 나였다. 학교에서 밥을 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밥 먹는 모습을 보면 고된 노동도 정말 행복했다. 아이들이 자라서 세상으로 나가면 그 아이들은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된다. 아이도 비정규직, 엄마도 비정규직인 세상”이라고 분노했다.

그는 이어 “해고를 당하고 알았다. 뭐 이런 거지같은 제도가 있는지… 열심히 사명감 갖고 일하면 당연히 일할 수 있는 나라인줄 알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는 걸 밥하는 노동자도 이제 알고 있다”면서 “용균이는 12년 급식노동자가 밥을 나누던 아들 중 한명이었다. 제가 용균이의 엄마다. 나를 위해, 내 자녀와 내 형제들을 위해 잘못된 나라, 잘못된 제도를 바꾸기 위해 여러분들이 용균이의 아빠가 되고 형제가 돼 함께 싸우자”고 외쳤다.

▲ 발언하는 류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4.16합창단은 노래공연으로 김군의 부모를 위로했고, 김군의 어머니는 공연을 마친 세월호 가족 한명 한명을 꼭 끌어안으며 울었다. [사진 : 함형재 담쟁이기자]

류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김군의 부모를 향해 “문 대통령 만나 용균이가 원했던 것, 어머님 아버님이 바라시는 것 당당하게 이야기하시라. 그것이 용균이의 권리였고 어머님 아버님이 당연히 하실 수 있는 이야기다. 대통령이 언제까지,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 확답을 들으시고 점검하시라”고 독려했다.

류 집행위원장은 “산안법이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약속한 법도 아니고, 모든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보장한 법은 아니지만 첫 출발의 의미가 있다. 용균이와 같은 비참한 일을 다시는 겪지 않도록, 용균이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힘을 보탰다.

그리곤 자유한국당을 향해선 “산안법 개정안 통과 과정을 지켜보면서 지난 5년의 과정이 오버랩 됐다. 자유한국당이 ‘나라가 망하는 법’이라며 끝까지 반대했다. 그런데 막판에 통과시켰다. 산안법을 이용해 조국 민정수석을 국회로 끌어내는 게 목적이 아니었나”라고 꼬집곤 “산안법 개정으로 부모님의 눈물을 닦아드릴 수 없지만 이것이 정치에 의해 이용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참가자들에게 호소하기도 했다.

추모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진상규명·책임자 처벌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것”이라며 청와대를 향해 행진했다.

▲ 사진 : 함형재 담쟁이기자

 

▲ 사진 : 함형재 담쟁이기자

 

▲ 사진 : 함형재 담쟁이기자

 

▲ 사진 :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