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건한 동맹은 없다, 더 이상!

[쿼바디스, 한미동맹](10) 한미동맹과 냉전체제

2018-12-24     장창준 정치학박사
▲ 서해상 적대행위 금지구역(완충수역)에 관한 9.19 남북군사합의가 시행된 첫날인 지난 11월 1일 연평도 인근 해안에서 고속정이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이번 합의로 덮개가 씌워진 포신이 눈에 띈다. [사진 : 뉴시스] 

굳건한 동맹은 없다

2018년 11월1일, 남과 북의 고속정에 장착되어 있는 포신에 하얀색 덮개가 씌워졌다. 해안포의 뚜껑이 닫혔다. 상대방을 향해 포사격을 하지 않겠다는 ‘정책적 신호’였다. 지난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판문점선언 군사분야 이행합의서’가 본격적으로 실천에 옮겨진 날이다. 이 합의만 준수되면 남과 북 사이에 군사적 충돌은 더 이상 없다. 

일각에서는 한반도 평화를 회의적으로 본다. 미국에서, 국내에서 북한(조선)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주장들이 난무하다. 속도조절론이 힘을 얻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조절되어야 할 것은 남북관계 발전의 속도가 아니라 미국의 상응조치이다. 사라져야 할 것은 김정은 북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 환영 분위기가 아니라 미국의 대북 제재이다. 굳건해야 할 것은 한미동맹이 아니라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관계 발전이다.

한반도는 새로운 시대로 이미 접어들었다. 북한(조선)이 미본토 보복공격 수단을 완성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에 구조적 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이제 미국은 북한(조선)을 “때리지” 못한다. 미국 내에서 대북 제재 이야기는 강조되어도 선제공격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이유이다. 북한(조선)의 미본토 보복공격 능력의 확보는 동맹 게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2018년 이후의 한미동맹은 전혀 새로운 동맹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여전히 ‘굳건한 동맹’을 강조한다. 냉전주의자들만의 주장이 아니다. ‘굳건한 동맹’에 관한 한 문재인 정부도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착각이다. ‘굳건한 동맹’은 더 이상 없다. 한미동맹은 굳건해질 수 없다. 

한반도의 안정이 지속되면?

안정과 불안정 동시발생 패러독스(the stability-instability paradox)라는 개념이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상대방을 향하여 핵을 개발했다. 그 결과 두 나라는 ‘공포의 핵균형’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상대방에 대한 핵공격은 핵보복공격을 받게 된다. 두 나라는 핵전쟁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두 나라 사이에 재래식 충돌은 더 빈번하게 발생했다. 아무리 재래식 충돌이 빈번하게 발생하더라도 핵전쟁으로까지는 비화될 수 없기 때문에 양국의 군부세력들이 ‘안심하고’ 재래식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역설적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핵전쟁 가능성이 사라지는 ‘안정 상태’에 놓였지만 재래식 충돌 가능성은 더 높아지는 ‘불안정 상태’가 형성된 것이다. 이란의 핵보유에 대한 정치적 논란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이란이 핵을 개발함으로써 이스라엘과 이란의 핵균형 상태, 즉 안정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주장과 이란의 핵개발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사이에 더욱 빈번하게 군사적 충돌이 야기될 것이라는 주장이 팽팽하다. 

한반도는 더욱 복잡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한반도에는 북미 사이에 핵대결, 남북 사이에 재래식 대결이라는 이중적 군사 상황이 수십년간 지속되었다. 지난해 북한(조선)이 보복공격 능력을 완성함으로써 북미 사이의 핵대결은 ‘공포의 균형’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위에 언급한 패러독스에 의하면 이 경우 남과 북의 군사적 충돌은 더욱 빈번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일부 정치학자들은 북한(조선)이 더욱 공세적인 대남 군사도발을 할 것이기 때문에 국방예산을 대폭 늘려 첨단무기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들의 진단이 틀렸음을 2018년의 상황은 보여주었다. 남북 사이의 재래식 군사충돌 가능성 역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이다. 북미 사이의 핵대결에서도, 남북 사이의 재래식 대결에서도 ‘안정’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미동맹은 어떻게 되는가. 동맹이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 2018년의 한반도 평화는 한미동맹의 ‘필요없음’을 역설하고 있는 셈이다.

남북 군사적 상황이 불안정해진다면?

물론 이상적 접근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남북 사이의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그렇다. 남북 사이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즉 ‘안정-불안정 패러독스’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한반도에 완전하고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런 경우에 문제는 그 이후이다. 남북 사이에 군사적 충돌이 발생한다면 한미동맹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남침이 되었건, 북침이 되었건 제2의 한국전쟁이 재발한다면 미국은 어떻게 나올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의 전략이 ‘동맹 보호’에서 ‘미본토 방어’로 전환했다는 사실이다. 

그 규모가 크건 작건 남북 사이에 재래식 충돌이 발생할 경우 미국은 한반도에서 발을 빼는 수순을 밟게 된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미국은 ‘한국 보호’보다는 ‘미본토 보호’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국의 본토가 핵공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 보호에 나선다고? 착각하지 말자. 미국은 그렇게 ‘착한 나라’가 아니다. 아니, 미국이 아닌 어떤 국가도 그렇게 자기희생적이거나 박애적이지 않다. 특히 강대국들은 더더욱 그렇다. 

냉전주의자들, 동맹론자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담당자들은 이같은 동맹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조선)이 미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보복공격 능력을 보유한 이상, 과거의 동맹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한반도 안정이 지속되는 상황이건, 한반도 불안정이 심화되는 상황이건 미국은 자국 이익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더 이상 미국은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하지 않는다. 유사시 미본토에서 69만명의 증원 병력이 한국으로 오는 시대는 끝났다. 

한미동맹은 한반도 냉전 해체의 최대의 걸림돌 

2018년 4월 판문점선언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환경이 급변했다. 한반도 냉전이 해체되는 과정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가 잃어버린 시간은 9년도 아니고, 10년도 아니다. 국제적 냉전이 해체되던 시기에 한반도 냉전만이 유일하게 강화되었다. 판문점선언 이후 한반도는 ‘잃어버린 30년’을 되찾을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판문점선언 이후 남북관계 그리고 북미관계는 냉전적 규범에서 벗어나고 있다. 한반도 냉전이 남과 북, 그리고 미국을 중심축으로 하여 형성되고 심화되었다는 점에서 한미관계 역시 냉전적 규범에서 벗어나야 한반도 냉전은 사실상 종식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미동맹이야말로 한반도 냉전의 최대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걸림돌을 제거했을 때 한반도 냉전은 완전히 해체된다. ‘굳건한 동맹’이라는 신화에서 벗어났을 때 냉전 해체와 한반도 평화는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