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법이란 무엇인가?(3)- 화폐 물신론

마르크스주의 백문백답(47)

2018-11-13     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1) 양질 전환의 법칙

앞에서 모순 개념에 대해 설명했다. 그것은 세계를 불의 비유를 통해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연에서 복합적이고 순환적인 인과 연관을 강조한다.

이제 우리의 두 번째 문제로 넘어가자. 그것은 ‘량질 전환의 법칙’이다. 쉽게 말하자면 양이 누적되면 질이 변화한다는 주장이다. 자주 물의 온도가 100도가 되면 액체가 기화한다는 현상을 예로 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예만 가지고는 이 법칙을 충분하게 이해할 수 없다. 모든 사물에는 한도가 있으므로 그 한도를 넘어서면 사물은 해체된다. 하지만 대부분 그냥 해체되고 말지 새로운 질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양질 전환이 일어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더 나누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구별을 이해하는데 마르크스의 <자본론> 1권의 상품 화폐 관계는 아주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2) 상품 화폐 관계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상품 화폐 관계를 보자. 역사적으로 보면 최초의 화폐는 어떤 상품 중의 하나이다. 예를 들어 조개나 미곡이다. 그러나 이런 화폐는 유통에서 여러 곤란에 부딪힌다. 점차 유통에 적합한 상품으로서 금이나 은으로 대체된다. 마침내는 종이 화폐가 출현하면서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종이가 화폐로 사용된다.

이런 역사적인 화폐의 출현 과정을 마르크스는 이제 논리적인 방식으로 도출한다. 하나의 상품에는 두 요소가 있다.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이다. 하나의 상품A가 다른 상품B와 교환될 때 그 매개가 되는 것이 양자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교환가치이다. 두 상품은 그 교환가치에 비례하여 교환된다.

상품들 사이에 교환이 발전한다. A가 B로 교환되고, B는 다시 C로 교환된다. 또는 A와 C, 그리고 C와 D가 교환될 수 있다. 이것은 교환이 중첩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이다. 이런 관계가 더 발전하면 교환을 매개하는 상품이 하나로 고정된다. 예를 들어 B라 하자. 그러면 B를 중심으로 A, C, D...가 교환되면서 이제 B는 보편적 교환의 매개가 된다.

이 보편적 교환의 매체가 화폐이다. 이런 보편적 화폐를 다른 상품과 비교해 보자. 상품에서는 사용가치가 실제(표면)이며 교환가치는 가능성(이면)에 불과하다. 그러나 화폐는 교환가치가 실제(표면)이며 사용가치는 이런 교환가치를 뒷받침하는 토대(가능성, 이면)에 불과하다. 상품과 화폐가 거울에 비치듯 서로 역전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상품 가운데 화폐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교환이 단순히 중첩된 것이 아니라 교환이 보편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중첩 관계를 직선적 계열로 표시한다면 보편적 교환은 중심에 화폐를 두고 주변과 중심과의 교환이 반복되는 순환으로 이루어진다. 

▲ 마르크스의 <자본론>[사진 : 구글검색]

3) 상품 화폐 관계의 모순

보편적 교환의 체계는 상품과 화폐로 이루어진다. 화폐가 순환적인 교환의 중심점에 있다. 상품과 화폐의 순환적 교환 관계는 생명체의 모습과 비교할 수 있다. 각 기관이 상품이라면 두뇌가 화폐가 된다.

생명체에서 기관은 해체하는 힘을 지니고 개체의 아이덴티티는 통일하는 힘을 갖는다. 마찬가지로 한편으로 화폐는 상품의 교환을 보편적으로 가능하게 해준다. 다른 한편으로 개별 상품은 이미 교환을 벗어나는 해체의 힘을 가졌다. 상품은 생산되어도 아무도 사려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화폐를 통한 상품의 보편적 교환가능성과 교환 불가능성, 즉 이중적 관계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더욱 확대 심화된다. 이런 이중성은 자본과 노동의 교환에서도 출현하며, 생산재 생산 자본과 소비재 생산 자본 사이의 재생산 구조에서도 출현한다. 마침내 자본주의 경제에서 호황기와 불황기라는 순환 주기가 등장한다.

4) 물신주의

화폐는 원래 상품의 하나였다. 그러나 상품과는 다른 속성을 지닌다. 상품은 사람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성질을 갖고 있다. 화폐는 사람의 욕망을 직접 충족시키는 것은 아니다. 배고프다고 화폐를 먹을 수는 없다.

화폐에도 교환가치를 담지하는 상품적 속성(금, 미곡 등)이 있다. 이런 속성은 다만 교환가치를 걸어놓는 옷걸이(담지자)로서의 역할만 수행하지 그 자체로서는 무의미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담지자의 역할이 거의 완전히 사라지는 신용화폐가 출현할 수 있다.

금이 일정한 교환가치(예를 들어 그램당 10만원)를 지니는 이유를 금이 지닌 어떤 보이는 속성에서 찾을 수 없으니 금의 어떤 보이지 않는 속성, 예를 들어 금의 ‘혼’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금의 혼이라면 사람들이 웃겠지만 독일 낭만주의자들은 모든 찬란한 빛을 내는 광석에는 모종의 신비한 혼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금의 신비한 속성을 상정할 때, 그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말한 화폐 물신론이다.

사실은 내재적으로 생성된 것인데 어떤 신비한 속성 또는 초월적인 속성이라고 생각한다면, 철학에서는 이것을 실체화라고 한다. 그것은 마치 영혼이 물질로부터 생겨난 것인데 어떤 초월적인 힘에 의해 물질 속에 심어진 것으로 간주하는 종교적 세계관과 유사하다.

이런 식으로 실체화하는 일은 자주 일어난다. 대통령 앞에서 사람들은 대개 아우라(기운. aura)를 느낀다. 대통령은 국민을 대변하는 보편자일 뿐이다. 대통령의 아우라는 내재적으로 발생한 보편성을 신비화면서 생겨난 것이다.

5) 반유태주의

마르크스의 상품 화폐론은 반유태주의를 분석하는 기본틀로 사용되기도 했다. 조금 전 말했지만 화폐가 보편적 매개가 되면서 보편적 교환가능성이 출현한다. 이런 화폐의 교환 체제 속에서 상품의 교환 불가능성도 동시에 존재한다.

교환가능성만큼이나 교환의 불가능성도 사실 내재적인 것이다. 교환 가능성을 신비화하는 것, 즉 물신화가 가능하다면, 마찬가지로 교환의 불가능성도 신비화할 수도 있다. 즉 이런 교환의 불가능성이 우연히 외부의 악마적인 힘이 개입해서 일어난 사건으로 본다.

거의 모든 음모론이 이런 신비화에 속한다. 예를 들어 1920년대 독일 자본주의 사회가 내적으로 혼란에 처하자, 히틀러는 이를 독일 사회의 외부적 존재인 유대인이 보이지 않는 음모를 꾸몄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지젝은 인간의 심리도 마찬가지라 한다. 사람들의 욕망은 자주 충족하지 못하고 좌절된다. 이런 경우 어떤 사람들은 무슨 악마가 개입해서 자기를 방해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건 과정이 심화되면 악마가 출현하는 편집증이 발생한다.

결론적으로 변증법적 설명이란 내재적인 설명이다. 양적 발전의 끝에 새로운 질적인 발전이 등장한다. 이때 끝이라는 것은 보편적 순환 관계가 형성될 때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