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중의 을’ 대리운전기사, 업체 횡포에 시달려도 ‘노동자’ 아니다?

[우리도 노동자다] ③ 대리운전기사

2018-11-09     조혜정 기자

해가 지면 출근해, 해가 뜨면 퇴근하는 사람들이 있다. 위성도시에서 서울 중심가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많아지고, 음주문화·회식문화가 널리 퍼져있는 사회에서 이들은 ‘콜’ 한 통에 번개처럼 달려가 취객들을 태우고, 그의 차량과 함께 집으로 안전하게 귀가시켜 준다. 바로 대리운전기사다. 우리나라의 대리운전기사는 자그마치 20만 명에 달한다. 

밤 시간에 일하기 때문에 ‘투잡(two job)’ 또는 아르바이트로 대리운전을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대리운전기사의 70% 가까이가 ‘전업’으로 일을 하고 있다. 생계형 일자리란 얘기다. 그래서 이들은 하루 10~12시간 일하고, 한 달 평균 휴일도 2.5일밖에 되지 않는다. 

9년째 대리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는 김주환씨는 “대리운전기사들은 건강을 담보로 자발적 착취구조를 스스로 강화하면서 일할 수밖에 없고, 사회적·경제적 안전망에서도 철저히 배제된 채 일하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특수고용직’으로 돼 있는 대리운전기사의 특성 때문이다. 

▲ 대리운전기사 9년차 김주환 씨. 김씨는 대리운전 일을 하면서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위원장도 맡고 있다.

우리가 사장님? “대리운전기사는 ‘을 중의 을’”

“야간노동이 발암의 요인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기사들은 건강을 담보로 일합니다. 장시간 운전에, 때에 따라 장시간 걷기도 해서 근골격계 질환은 물론, 취객을 모시는데 있어서 정신적 스트레스와 손님들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는 것이 일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생계비를 벌기 위해 기사들간 경쟁 속에서 일한다고 했다. 

건강을 담보로 한 자발적인 착취, 생계를 위한 기사간의 경쟁은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이유에서 파생된다. 대리운전기사도 ‘노동자’가 아닌 ‘사장님’이라 불린다. 그런데 대리운전업체에 소속돼야 일을 할 수 있다. 

대리운전기사가 소위 말하는 ‘대리를 뛰기까지’의 과정은, 우선 고객이 대리운전 ‘콜’을 부르면 대리운전업체가 프로그램 업체에 연결한다. 이 ‘콜’이 대리운전기사의 PDA(개인 휴대 정보단말기), 즉 휴대폰에 뜨면, 기사가 그 ‘콜(일감)’을 잡아 일을 하는 것이다. 

기사들은 대리운전업체와 계약해야 하고, 프로그램 업체엔 프로그램비를 지불해야 한다. 기사들은 일하는 ‘콜’ 수를 늘리고 수입을 늘리기 위해 여러 업체와 계약하고, 프로그램 사용료도 여러 곳에 지불한다. 일감과 수입을 늘리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했지만, 업체수수료와 프로그램비용으로 나가는 금액도 만만치 않다. 

“업체와의 수수료는 대리 1건당 20%예요. 대리운전비가 1만원이라고 하면 2000원은 사전에 충전(지불)돼 있어야 콜을 잡을 수 있어요.” 대리운전업체 수수료는 선불이라는 얘기다. 뿐만 아니다. “업체에 지불하는 보험료는 7만원인데, 여러 업체를 이용하면 업체마다 보험료를 내야 합니다. 프로그램 업체에 내는 프로그램비는 한 달 1만5000원, 이 역시 여러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두 배, 세 배로 내야하죠.” 대리운전 일에 필요한 휴대폰 사용료, 고객 차량까지 이동하는 비용 등을 감안하면 결국 대리운전 1건당 35%의 수수료가 나가는 격이라고 했다. 

페널티도 있다. 업체가 콜을 넣었는데 기사가 콜을 승인하지 않으면 주어지는 것이다. 서울엔 (얼마간 콜을 주지 않는)시간페널티가 있고, 지방엔 콜 거부 건당 1000~3000원을 내야 한다. 기사들이 콜을 승인하지 않는 이유는 ‘강제배차’ 때문이다. “기사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느니 운전의 시작점은 있는데 도착점이 없이 콜이 오기도 해요. 운전비가 너무 싸고, 다시 돌아 나올 수 없는 오지일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럴 땐 ‘내가 가겠다’고 나서기 쉽지 않잖아요.” 

소위 ‘오지’에 도착해 고객이 내린 뒤 기사들이 그곳을 다시 나올 땐 교통수단이 있는 곳까지 하염없이 걸어야 한다. 비용도 기사 몫이다. “수도권엔 야간버스도 있고, 택시를 타고 나올 수도 있고, 대리운전기사를 태우는 셔틀이 있어요. 그런데 지방은 열악해요. 셔틀비 명목으로 업체에서 출근비를 받아요. 업체가 실제 셔틀운영비보다 더 많은 비용을 받아서 착복하기도 하고….” 셔틀비용 착복에, 보험료 착복, 운전할 때마다 건당 지불해야 하는 높은 수수료까지 대리운전기사는 “을 중의 을”이자 “이중 삼중 고통 받는 노동자”라고 강조했다. 

대리운전기사들의 ‘자발적 배제’

‘개인사업자’라 불리는 ‘을 중의 을’들이 일감을 늘리기 위해 여러 업체에 수수료를 지불하고, 프로그램비를 지불하면서 버는 한 달 평균 수입은 아래 그림과 같다. 

▲ 자료 :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서울시와 대리운전노동조합이 ‘서울 대리운전기사 노동환경 실태조사’를 한 결과다. 185만원을 벌지만, 순수입은 151만 원 정도다. 한 달 2.5일만 쉬면서, 하루 10~12시간 야간노동을 한 대가다. 떼이는 수수료를 감당하며 조금이라도 월 수입을 올리기 위해 ‘콜’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기사들의 ‘자발적 착취구조’에 이어 기사들 스스로 배제하는 영역은 또 있다. 4대 보험이다. 이 역시 ‘특수고용직’이란 이유 때문이다. 4대 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대리운전기사는 “개인보험에 가입해야 하는데 수입이 적어 스스로 보험에 들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할 수 있는데 못하기 때문에, 사회안전망에서 ‘자발적 배제’라는 표현을 쓴다”고 했다.

“직장의료보험, 지역보험 등 건강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은 기사들이 12.8%나 됩니다. 수입이 적고, 먹고 살기 힘들다보니 아예 가입을 안 하는 경우가 있고, 보험비가 밀리고 밀려 아예 포기해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국민연금 가입률은 38%밖에 안 됩니다. 60% 이상은 노후대책이 전혀 없는 상태죠.” 대리운전기사들에겐 퇴직금도 없다. 

2016년 7월부터 대리운전기사들에게도 산재보험이 적용됐다. 그러나 사업자등록증이 있는 한 업체와 전속으로 근로계약을 맺은 ‘전속 대리운전기사’가 산재보험에 가입할 경우 절반의 보험료를 내지만, 여러 업체의 호출을 받아 일하는 ‘비전속 대리운전기사’는 본인이 100%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 대리운전기사의 거의 대부분이 후자에 해당한다. 

“20만 대리운전기사 중에 산재보험을 적용받고 있는 기사는 전국에 18명뿐입니다. 보험공단에서 나온 공식 자료로 확인한 결과예요. 대리운전 노동자들의 현실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주먹구구, 탁상행정의 결과 때문이죠.” 

대리운전업 규율 법안 ‘전무후무’

대리운전업의 성장과는 달리 기사들은 사회제도와 안전망에서 배제돼 있는 건 여전하다. 노동기본권이 보장되지 않은 것은 물론 대리운전업종에 대한 제도도 보장돼 있지 않다. “화물노동자는 화물운송법이 있는데, 대리운전 노동자들에겐 대리운전법이 아직 없어요. 힘 있는 업체들의 횡포에 시달려도 보호받을 수 없죠. 경제적으로 먹고 살기 힘들어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에 가도 대출이 쉽지 않습니다. 대리운전기사 신분 자체가 사회적으로 인정되거나 신용이 인정되거나 이런 상황이 아니니까요.” 

2016년 원혜영 의원이 ‘대리운전자의 처우개선과 대리운전업의 서비스 향상을 위한 대리운전업법 제정안’을 발의했으나 대리운전업을 규율하는 법은 아직 전무한 상황이다. 

그 사이 업체들은 계약서 이름을 변경하면서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고, 대리운전기사들은 더 ‘사장님’화 되고 있다고 김씨는 전했다. 계약서도 업체와 업체(사장)과의 관계로 바뀌고 있다. 

“처음엔 ‘고용계약서’를 쓰다가 ‘업무계약서’로 이름이 바뀌고, 요즘엔 ‘동업계약서’로 바뀌었어요. 내용은 같은데 이름을 바꿔서 업체들이 표면적으로 ‘사용자’ 책임에서 벗어나는 방식을 더 강화하는 거예요. 대리운전 시장 점유율 20% 이상을 차지하는 ‘카○○대리’의 경우, 업체이면서 프로그램도 관장해요. ‘플랫폼 사업자’죠. 여긴 업체 가입도 웹상에서 이뤄져요. 업체에 들어가려면 면접도 보고 교육도 받아왔는데, 자신들의 책임 권한을 회피하기 위해 면접도 보지 않습니다. 자신들은 힘이 있으니까 명문화된 형식을 명문화되지 않은 형식으로 만들어 책임을 회피하는 겁니다.” 

▲ 사진 : 뉴시스

“우리들의 절박함, 외면하지 마세요”

대리운전기사를 향한 고객의 보복운전으로 대리운전기사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종종 들린다. 쉼 없는 야간노동에 건강도 챙기지 못하고, 음주 고객들의 폭언과 폭행으로 대리운전기사들 중엔 1년도 안 돼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단다. 반면, 하루 벌어 하루를 생활하는 대리운전기사들의 경우엔 하루하루 현금 수입이 생기기 때문에 대리운전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대리운전 일을 하면서 대리운전노동조합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기사들의 사망 소식이 들린다”고 했다. 

업체의 횡포, 고객의 횡포를 견디며 개개별로 일하고 있는 대리운전기사들. 한 자리에 모이기도 힘든 조건에서도 2012년 전국대리운전기사들의 노동조합을 만들었지만 아직 ‘설립필증’을 받지 못했다. 고용노동부가 설립필증을 반려한 이유는 대리운전기사 중에 한 업체와 계약하지 않고 여러 업체와 계약한 기사들이 있다는 이유, 즉 ‘전속성’ 때문이다. “정부가 이유를 만들려고 하니 별의 별 이유를 갖다 붙인 거죠.” 

제도적으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노조 할 권리마저 보장되지 않다보니 노조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업체에게 문제제기를 했다고 해서 콜(일감)을 주지 않거나 부당하게 계약해지를 당하기도 한다. 업체와의 교섭에서 맺은 협약도 손바닥 뒤집듯 쉽게 뒤집어진다. 

전국대리운전노조는 지난해 8월 노조 설립신고서를 제출하고 같은 해 10월엔 ‘설립필증 교부’를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도 했다. 

▲ 지난해 10월 전국대리운전 노조, 전국택배연대 노조가 국회 앞에서 단식노숙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 설립필증 교부’를 촉구했다. 그해 11월 전국택배연대 노조는 설립필증을 받았지만 전국대리운전 노조는 아직까지 설립필증을 교부받지 못했다. [사진 : 뉴시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을 약속한 문재인 정부가 약속을 지키면 될 일이에요. 설립필증 여러 번 접수한다고 가능한 일일까요?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노동권이 절실히 필요한데, 그런 절박함으로 노동조합 하면서 싸우고 있는데 그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면 계속 요구하고 싸워야죠.” 김씨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독립운동을 하는 마음으로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싸우는 걸 정부가 외면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