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을 이어가는 정치

북을 바로보는 키워드 2

2018-11-05     안호국 시사평론가

1. 외국문물을 접한 개방적인 지도자

‘개혁 개방이란 말은 쓰면 안되겠더군요.’ 2007년 평양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하고 온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런 말을 하였다. 북이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가장 소중하게 삼고 있는 현실을 직접 보고 가지게 된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일부에서는 북이 자주노선과 사회주의, 자력갱생에 기초한 자립경제의 길을 버릴 것이라는 기대와 전망이 여전하다. 

수십년동안 자기 운명을 미국에 매어놓고 살다보면 미국이 세계의 주인노릇을 하는 체제에 순응하는 것이 ‘글로벌’한 것이며, 국제사회에서 ‘정상적인 나라’가 가져야 하는 당연한 자세라고 생각하게 된다. 미국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생존 방법으로 되어버리면 다른 선택은 아예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구상에는 그렇게 사는 나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언론과 북한(조선) 전문가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해 말할 때면 외국유학을 했다는 사실을 빼놓지 않고 들먹인다. ‘외국문물을 접한 개방적인 지도자’라는 이들의 주장은 북이 ‘고립과 폐쇄’를 고집하지 않을 거라는 전망, 북이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상황을 만드는 일을 그만하고 미국에 고분고분한 존재로 ‘변화’하기를 바라는 기대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들은 북이 후계자로 될 수 있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어린 시절에 외국에 유학 보낸 까닭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는다. 물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스위스의 베른 국제학교와 공립초등학교, 공립중학교 등을 다녔다는 것은 아직 공식 인정되지 않은 추정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청소년기에 일정기간동안 외국유학을 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2. 존재하지 않는 변화

그런데 ‘북한(조선)전문가’들의 희망과는 달리 이 외국 유학의 목적이 자본주의식으로 나라를 변화시키려는, 이른바 ‘중국식 개혁개방’을 추구하려는 데 있었을 리가 없다. 이는 당시 북의 국가수반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다는 사실만 돌이켜 보면 분명해지는 일이다.

90년대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에 이어 당과 국가의 최고직위를 이어 받자 세계 언론들은 북이 ‘변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쏟아냈다. 최고지도자의 세대교체가 일어났으니 ‘고립에서 탈피하여 개혁개방’의 길로 나설 것이라는, 50년 넘게 고수해온 반미자주노선을 완화하여 미국이 압박과 봉쇄를 풀어주기를 바랄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이런 주장이 하도 무성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나에게서 0.001mm의 변화도 바라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였다. 김일성 주석이 추구해온 이념과 정책, 사회주의와 자주권 수호의 원칙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뜻이었다. 

이런 입장을 가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가 될 수도 있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자본주의에 물들어오라’ 또는 ‘자본주의식 방법에서 길을 찾아보라’고 외국유학을 시켰을 리는 없다.

물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당과 국가의 최고직위를 이어받은 후 북에서 많은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언론과 자칭 북한(조선)전문가들은 이 원인은 ‘변화’에서 찾으려 하지만 그 ‘변화’가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3. 고령화를 거치지 않는 후계자

대부분의 나라에서 60대 이상이 되어야 국가수반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70대도 흔하며 90대에 이르러 국가 최고직에 오르는 경우도 있다. 50대의 사람이 국가수반이 되면 ‘젊은 지도자가 탄생했다’는 뉴스거리가 된다.

빌 클린턴 46세, 조지 W 부시 55세 등 미국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적은 사람이 대통에 당선되는 경향이 있다고 하지만, 로널드 레이건은 70세에 대통령이 되었고, 도널드 트럼프는 71세에 미합중국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미국도 고령화가 결코 만만찮은 것이다.

지금 서구의 국가 수반은 대개 60세 이상의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51살에 독일 수상이 된 잉겔라 메르켈이나 39살에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 같은 경우는 예외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일당체제의 후계제도를 가진 중국이나 베트남같은 나라에서도 사정을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수반에 오르는 사람은 빨라야 60대이다.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의 경우 얼마전에 서거한 쩐 따이꽝 주석은 60세에 국가 주석직에 올랐으며 그 뒤를 이은 국가주석 응웬 푸 쫑은 74세다. 

당과 국가의 최고지도부 연령을 낮추기 위해 연령제한 임기제까지 시행하며 애를 쓰고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시진핑은 60세가 되어서야 최고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물론 나이가 많은 것은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진취성과 개혁성이 젊은 때보다 약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특히 국가의 최고지도력에 젊은 활력이 부족한 것은 큰 제약으로 된다. 

어느 사회에나 낡은 질서와 관습이 사회발전을 가로막고 있기 마련인데 상당한 나이가 되어야 국가 수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구질서와 기득권집단에 더 고분고분해지는 과정과 세월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젊은 층의 정치외면, 정치혐오 현상은 현대 정치의 공통적인 고민거리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정부와 정계의 대표적인 인물들의 고령화와 상당한 관련이 있다.

사회주의식 후계구도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당과 국가 지도부의 고령화가 심화되고 최고지도자의 연령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이는 권력 교체기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이념과 정책의 연속성을 위협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후계자로 공식화되고 당과 국가의 최고직위에 올랐을 때는 30세에 이르지 않은 때였다.

나이 지긋한 대통령이나 수상을 봐왔던 사람들에게는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왕조’니 ‘세습’이니 하던 당시의 비난에는 이런 당황함도 함께 묻어 있었다.

그런데 30대의 최고지도자는 북에서 처음이 아니었다. 김일성 주석이 해방 후 국가수반이 되었을 때 나이는 30대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대에 후계자로 선정되었고 30대 초반에 당과 국가의 중요정책 결정과 집행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북에서 후계자는 ‘다음 세대 중에서 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현재 최고지도자와 30살 가량 차이가 나게 된다. 따라서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후계자로 선정되고 그 즈음에 최고권한의 상당부분을 행사하게 된다. 

4. 젊은 정치의 특성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나라를 이끌기 시작하자 사회의 활력이 매우 높아졌다는 것은 당시 북을 직접, 간접으로 접해본 사람들의 한결같은 평가였다. 다들 ‘젊은 지도자에 대한 인민의 반향이 대단하다’고 하였다. 

이런 현상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과 국가의 주요부문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70년대에도 일어났다. ‘청년지도자’에 대한 인기가 높은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통적인 현상인 모양이다. 

물론 이렇게 되려면 젊음이 가지기 쉬운 약점인 미숙함과 경험부족이 없어야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체제에서는 이런 약점은 나타나지 않았고 젊은 지도자가 가진 장점이 주로 발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주로 인물의 자질과 능력에 의한 것이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정치와 사회제도의 특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혹하기 짝이 없는 경제제재 속에서 북은 지난 몇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의 압박과 제재는 개별 국가로서 감당하기 매우 버거운 것이다. 신이 준 선물이라는 무진장한 석유자원을 가진 나라도,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겼다는 나라도, 세계 2위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나라도 달러의 위력 앞에서 모욕을 감수하고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고 있다. 

북은 이 길로 가지 않고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것은 ‘선대수령이 이룩해 놓은 업적’의 덕을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나라의 주권을 지켰고 자력갱생에 입각한 자립경제노선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북이 구현하고 있는 발전상은 국가와 사회를 쉬지않고 혁신시키고 끊임없이 전진시키는 젊은 지도력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30대의 후계자가 국정을 보좌하는 정치, 승계사유가 발생하면 30대의 최고지도자가 나라를 이끌게 되는 정치제도의 장점이다. 

물론 이런 정치가 장점을 발휘하려면 현직 최고지도자와 후계자 사이에 권력을 두고 갈등하거나 대립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새세대와 기성세대 정치그룹간에 자리와 권한을 놓고 암투가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 

북은 이런 과제를 나름대로 잘 해결하였으며 당과 국가가 젊음을 유지하는 정치를 구현해왔다. 젊은 지도력을 가지는 정치는 인민의 높은 활력을 사회에 가득차게 한다. 북에서는 이 장점이 크게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5. 고령화되지 않는 정치에 담겨있는 힘

지난 10년 동안 우리 사회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북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남북관계가 단절된 때문이기도 하고, 대결과 적대의식으로 자기 눈과 귀를 막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북관계가 전환되자 소문으로 들려오던 북의 발전상이 확인되고 있다. 미국이 기침만해도 감기드는 처지에 있는 사회, 무슨 일을 하려고 해도 미국 눈치부터 살펴야 하는 나라에서는 그처럼 혹독한 제재와 압박 속에서 이런 발전을 일궈냈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중국이 제재를 제대로 안했기 때문’이라는 이론을 내놓는다. 중국을 그렇게 용기있고 의리있는 나라로 평가하는 것도 대략 황송하지만, 국가경제가 그런 소소한 비밀거래로 연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낭만적인 생각이다.

북이 발휘하고 있는 놀라운 능력이 외부의 도움이나 지원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그것이 전임 최고지도자와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이에 노선과 사상, 이념과 정책에서 어떤 차이나 변화가 있어서 생기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 분명하다.

지금은 남북이 힘과 지혜를 합쳐서 공동번영을 실현해야 하는 시대다. 북이 가진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잘 생각해 보고 올바른 이해를 가져야 한다.

그 힘의 원천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의 열쇠는 젊은 지도자가 가질 수 있는 단점과 약점이 나타나지 않고, 장점과 특성이 크게 발휘되는 정치에 있다. 달리 말하자면 젊음을 이어나가는 북의 정치에 그 해답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이에 대해 더 가까이 가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