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숲으로 만든 아파트 안 작은 도서관

[박미자 샘의 혁신교육, 길을 찾다. 5] 작은 도서관

2016-06-28     편집국
획일적인 교육과정에서 탈피하고 새로운 교육을 지향하기 위해 시작된 혁신교육은 참교육 실천이다. ‘박미자 샘의 혁신교육, 길을 찾다’에서는 교육현장에서 진행되는 혁신교육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민주적인 배움의 길이 무엇인지 찾아본다. 

아파트 숲 안의 작은 도서관에서 영훈이와 영훈 엄마를 만났지요. 여러 엄마들과의 만남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호응해주신 홍윤 엄마와 여러 엄마들 덕분에 낯선 환경에서도 더욱 즐거운 마음으로 강의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영훈이는 엄마랑 작은 도서관에 와서 엄마가 강의 들을 자세로 책상에 앉자마자 그림책을 들고 구석진 곳에 앉아서 책을 읽었습니다. 차를 마시러 가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었지요.

강의가 끝나고 도서관을 나와 다소 어두운 주차장에서 영훈이가 저에게 이름을 불러주었습니다. "박미자 선생님!"하고 이름을 불러주던 자유롭고 맑은 영훈이의 목소리는 저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아파트 숲 안의 작은 도서관이 아이들과 엄마들이 즐겁게 만나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것이지요.

많은 우리 아이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숲에서 생각을 나누고 서로 소통하는 작은 도서관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의논하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들이 서로 만나고 소통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하여 공부하고 상상하는 공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공간인지에 대하여, 그리고 그러한 공간은 우리네 생활이 진행되는 가장 가까운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저에게 새로운 깨달음과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나의 이름을 불러주고 새로운 배움을 일깨워준 고맙고 사랑스러운 영훈이에게 작은 선물을 보냅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린 시절에 아껴가며 읽었던 책들을 몇 권 우편으로 보냈습니다.

영훈이와 영훈이 친구들, 영훈이 엄마를 만난 곳은 작은 도서관입니다.

전남 무안교육희망네트워크에서는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서 무안 남악지역의 작은도서관에서 부모교실을 하였습니다. 무안교육희망네트워크 박진홍 사무국장님께서 강의 요청을 하신 것이 지난 봄이었으니 오래 준비한 일이었지요.

무안교육희망네트워크 박진홍 사무국장님과 오전 10시에 무안남악지구의 아이파크 아파트 앞에서 만났고, 함께 아파트안의 작은 도서관으로 이동하였습니다. 혼자서 빔프로젝트와 노트북, 다과 상자를 들고 나르시는 사무국장님을 지켜보면서 지역으로, 아파트라는 숲 안으로 들어가서 풀뿌리교육활동을 만들어가는 한 사람의 힘을 느꼈습니다. 이 한 사람의 노력이 아파트 안, 작은 도서관으로 사람들을 불러내고 그에게 화답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풀뿌리교육운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는 웃으며 빔프로젝트를 연결하고 노트북에 자료를 깔고 다과와 차를 준비하였습니다. 이 교육활동가의 차분한 준비과정을 보면서 마치 ‘나무를 심은 사람’에서 노인이 도토리를 고르는 대목에서 느껴지는 평화로움이 연상되었습니다.

첫 번째 아파트 숲 안의 도서관에서는 8명의 엄마들과 1명의 할머니, 무안교육희망네트워크대표님, 사무국장님과 나 이렇게 두 시간 동안 열심히 사춘기 아이들의 발달과정에 대한 이해와 소통, 그리고 우리가 살아갈 사회에 대하여 알아보고 토론하였습니다. 중2가 된 손녀딸을 돌보고 계시는 할머니께서는 그저 아이라는 생명이 내 곁에서 함께 살고 있고, 자란다는 점에 대하여 고맙게 생각한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웃으며 크게 배웠습니다.

두 번째 방문하는 도서관에서는 7시부터 9시까지 두 시간 동안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배아체아파트 관리사무소 내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 6시 30분쯤 미리 도착하여 준비하고 기다렸습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아파트 주민들에게 방송을 하였습니다.

“오늘 저녁 7시부터 우리 아파트 도서관에서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님들을 위한 부모교실이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이 아파트에서는 일주일 전부터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부모교실 안내문을 붙이고 홍보하였다고 합니다. 어린 아이들의 손을 잡은 엄마들이 한 분 한 분 도서관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반갑게 만나고 책을 꺼내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점점 더 많은 엄마들이 오면서 작은 도서관은 북적거렸고, 즐거운 분위기로 술렁거렸습니다. 준비된 책상과 의자가 부족하였고 바닥에 앉기도 하였습니다. 전교조 무안지회 선생님들이 참가하여 동네 엄마들의 만남을 축하하고 응원하였습니다.

엄마들은 오래전에 아파트 관리사무소 안에 작은 도서관을 마련하였고,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들을 준비해주었지만 부모들이 모여서 공부할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용기를 내어 이곳에서 지난해부터 부모교실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영훈이와 영훈이 엄마를 만난 곳이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강의와 토론을 마치고 영훈이 엄마와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영훈이가 초등학교 1학년인데 너무도 독립적이고 자유로워서 힘들었는데, 이제 좀 더 긍정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겠다는 말도 하였습니다. 저는 영훈이가 정이 많고 자유롭기 때문에 아직 학교라는 규율의 공간에 적응하기 어려운 점이 있을 수 있다고 응원해 주었습니다. 우리 큰 아이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 산만하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늘 자주 안아주고 아이의 말에 경청해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노라고, 지금은 고집스럽게 자신의 일에 몰두할 줄 아는 청년으로 성장했노라고 소곤거리면서 말해주었습니다. 아마도 영훈이는 내가 자기 엄마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나에 대해서 가깝게 느꼈던 모양입니다.

“박미자 선생님! 우리 같이 사진 찍을까요?”

나는 아이 사진을 한 장 찍을 수 있었습니다. 아파트 숲 안의 작은 도서관 마당에서 쨍하고 나를 흔들어 깨우던 아이의 보석과 같은 맑은 표정과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 아이의 이름은 가명임을 밝혀둡니다.

 

박미자 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지금은 잠시 쉬며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공부하고 있다.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 상임이사로 있으며 담쟁이 조합원이기도 하다. 저서로 ‘중학생, 기적을 부르는 나이’와 ‘중학생, 아빠가 필요한 나이’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