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고비 넘긴 북미·남북 회담, 역사의 물줄기 바꾼다

2018-05-28     현장언론 민플러스

현실이 영화보다 더 극적이란 말이 실감나는 나날이다. 어떤 영화도 이처럼 단기간에 전 세계 관중을 놀라고 분노케 하다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진 못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 취소에 북한(조선)의 유연하고 빠른 대처, 곧 이은 취소 번복과 함께 펼쳐진 또 한 번의 남북정상회담은 기존 외교와 남북관계 통념을 완전히 허무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선언한 “완전히 새로운 시작”은 마침내 분단과 고통의 한반도 역사를 끝낼 날이 다가왔음을 확신케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 취소 번복의 배경 등을 놓고 여러 설이 분분했지만, 크게 보면 미 행정부 내 뿌리 깊은 대북적대와 한반도 현상유지 세력을 무력화시킨 조치라는 주장과 북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판 깨기식’ 협상력 제고 방안이란 주장으로 나뉜다. 사실 워싱턴포스트(WP)나 더힐(The Hill) 등 주요 외신과 국내언론들은 후자에 무게를 두면서 “최근 북미 사이에 오간 ‘말의 전쟁’이 (협상)지렛대를 확보하기 위한 일환이었을 수 있다”는 식으로 북미간 협상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분석은 이미 북미간 “만족한 합의”가 됐다는 사실과 북의 강력한 경고가 트럼프 대통령이 아닌 ‘리비아 방식’을 거론해 북미 협상을 방해하려 한 볼튼 국가안보보좌관과 펜스 부통령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보단 볼튼 보좌관이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강경 성명을 북의 정상회담 취소의지로 단정하고 “북이 선수 치기 전에 먼저 선수치자”고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한 결과라는 NBC나 CNN 등의 보도가 더 정확한 분석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각하(His Excellency)’란 유례없는 호칭까지 써가며 최대한 정중하게 표현한 취소 편지는 일방적 취소 통고라기 보단 ‘정말 취소할 의향인가. 아니라면 빨리 연락해 달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그 의도를 파악한 북이 ‘위임’ 담화에서 역시 최대한 정중하고 따뜻하게 정상회담 의지를 밝히자 트럼프 대통령은 하루 만에 번복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는 애초 트럼프 대통령에겐 회담 취소 의사가 없었음을 방증한다.

결국 확인된 건 볼튼 등이 의도적으로 북의 회담 취소 의사라고 단정, 강변했다는 사실이다. 북이 리비아방식 거부의사를 밝혔고 트럼프 대통령도 ‘리비아식’이 아닌 ‘트럼프식’ 비핵화를 언급했음에도 펜스 부통령까지 이를 무시하고 리비아방식을 재론한 건 북의 반발을 유도하려는 의도 아니곤 해석할 수 없다. 예상대로 북이 반발하자 그게 북의 회담취소 선언인양 왜곡 과장해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한 것이다. 이렇듯 한반도 평화 정착을 어떡해서든 방해하려는 세력이 미 정부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 이들을 계속 방치하면 정상회담의 성사는 물론 이후 이행과정도 순탄치 않을 것임이 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경솔하다는 비판을 무릅쓰고 취소-번복 행태를 연출하고, 북이 빠르게 호응한 건 이들을 다잡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이로써 볼튼과 펜스 등 대북 적대유지세력은 북미정상회담에서 발언권을 갖지 못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조선신보가 “미국 내에는 세기를 이어 지속되여온 조미 적대관계를 계속 유지하려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하고, 김계관 제1부상의 담화는 “미국 대통령의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아량”이라고 보도한 것과 트럼프 대통령이 취소를 번복한 27일 “행정부 내 북한(조선)과 어떻게 협상할 것인가에 대해 어떠한 이견도 없고, 있다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도 밝힌 건 맥락을 같이한다.

현재 북미간 실무협상은 세 곳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한 대로 워싱턴 인근이고 다른 하나는 판문각, 그리고 싱가포르에서의 의전, 경호 실무회담이다. 특히 워싱턴 인근에서 실무회담이 진행되고 있다는 건 북의 실무팀이 이미 전에 미국에 있었고, 정상회담 취소소동 와중에도 실무회담이 계속되고 있었음을 뜻한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 회동에) 많은 호의(good-will)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주아주 잘하고 있다”고 밝히고, 폼페오 국무장관이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해 “주목하라. 이것은 결과에 관한 것이다. 미국인들과 세계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보인 건 북미정상회담이 큰 방해 없이 성공적으로 개최될 것임을 예고한다.

이렇듯 북미정상회담 준비가 고비를 넘겨 다각도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한 달 만에 다시 남북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열린 건 ▲남북정상이 “친구처럼” “격식 없이” 수시로 만나는 길을 열었고 ▲그간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고 판문점선언 이행을 다시 추동했다는 데서 큰 의의를 갖는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와 언론들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다시금 북미대화의 중재자이자 촉진자로서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위태로워 보였던 6.12 북미정상회담의 불씨를 살려냈다”거나 심지어 “북미정상회담을 재가동시켰다”는 식의 논평을 내놓는 건 지나친 ‘찬가’일 뿐 아니라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궤변이다. 

남북정상회담의 핵심은 남북관계를 화해협력관계로 정상화하는 것이지 북미회담의 중재가 아니다. 북미회담 관련 정보와 의견을 주고받을 순 있겠지만 보다 중요한 건 판문점선언의 이행이다. 이와 관련해 군색한 건 문재인 정부다. 지난 한 달간 판문점선언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대 규모의 한미 맥스선더 훈련과 태영호 등 탈북자들의 대북 적대행위를 사실상 방치한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제대로 하지도 않고 북미회담 중재를 한다는 것을 누가 믿고 받아 주겠는가. 문재인 정부는 북미관계에 매달릴 게 아니라 판문점선언 이행에 심혈을 기울이고 더불어 남북화해를 방해하려는 자유한국당, 조선일보 등 국내 대북적대세력을 다잡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제 남북, 북미관계의 동시적 화해와 발전의 길이 열렸다. 일시적 진통은 도약의 발판이다. 문재인 대통령 표현대로 “우리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고 있다.” 전환의 시기에 우선 할 일은 문재인 정부부터 더 이상 미국과 국내수구세력의 눈치 보기를 중단하는 것이다. 줏대 있게 판문점선언 이행에 일로 매진해야 한다. 그게 북미정상회담 성공을 담보하고, 민족과 역사의 길에 큰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