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제 주한미군 철수를 말할 때가 됐다

2018-05-04     김장호 편집국장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에서 종전선언과 함께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문정인 특보가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의 지속적인 주둔은 정당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에 앞서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미군이 한반도에 계속 주둔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아마도 그것은 먼저 동맹과의 협상에서, 물론 북한(조선)과의 협상에서도 우리가 논의할 이슈의 일부”라며 “그 절차를 따라 협상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한 전제나 추정은 하지 않도록 하자”고 답변하였다.

매티스 미국방장관의 말은 평화협정 체결과 연계하여 주한미군 문제가 한미는 물론 북미 사이에서도 의제로 논의한다는 것이며, 현재로서는 어떠한 가능성도 열려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친미보수진영이 벌집을 쑤셔 놓은 것처럼 반발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문제로, 평화협정 체결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선을 긋고 나섰다.

과연 주한미군은 평화협정 체결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주한미군 문제는 평화협정 체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공고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서 필수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는 한국전쟁의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한다고 곧바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기록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인류가 맺은 평화협정이 약 8000건 정도 되는데 그 지속기간은 평균 2~3년에 불과하다. 역설적으로 상당히 많은 전쟁은 상대방이 평화협정을 어겼다는 것을 명분으로 시작되었다. 이런 사실은 전쟁 종식과 불가침협약만이 아니라 전쟁을 할 필요도, 전쟁을 할 수도 없는 상태로 만들어야 공고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는 크게 네 가지 축으로 이뤄져야 한다. 첫째, 한국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이와 관련한 쟁점과 문제를 깨끗이 매듭 짓는 일, 둘째, 남북 사이 불가침 및 군사적 신뢰를 구축하고 군비를 축소하는 일, 셋째 북미 사이 불가침 및 관계정상화와 군사적 대치 및 위협을 완벽히 해소하는 일, 넷째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과 안보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다자간 안보체제(동북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일이 그것이다. 주한미군 문제는 이 네 가지 축에서 모두 필수적이고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먼저, 주한미군 문제는 한국전쟁의 종식과 이와 관련한 쟁점을 깨끗이 해결하는 데서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그간 NLL 문제를 둘러싼 쟁점과 갈등이 끊임없이 남북 사이 군사적 긴장과 충돌을 불러일으켰던 것에서 보듯 전쟁종식 과정에서 쟁점을 깨끗이 해소하지 못하면 두고두고 군사적 충돌과 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전쟁을 완전히 끝내지 못하고 ‘사실상의 전쟁상태’인 정전체제가 65년이나 이어져 온 비정상적인 상황은 주한미군 문제가 가장 일차적이고 핵심적인 원인이다.

정전협정 4조60항은 “3개월 내 정치회의를 소집해 한(조선)반도로부터 모든 외국 군대의 철수 및 한(조선)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협의할 것을 건의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1954년 제네바 정치회담에서 미국이 미군 철수를 거부하는 바람에 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제 65년간의 전쟁도 평화도 아닌 비정상적인 상태를 끝내고 다시는 전쟁이 없는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역사적 대전환을 하는 마당에 교전 당사국의 군대를 그대로 둔다는 것은 정당성이 없다.

일각에서는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유엔사령부라는 점을 들어 유엔사는 해체하더라도 주한미군의 주둔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런 주장은 지극히 형식주의적인 궤변이다. 유엔사는 사실 주한미군이 쓴 또 하나의 모자일 뿐이다. 대북 적대적 무력이자 위협요소인 주한미군은 그대로 둔 채 형식적인 유엔사를 해체한다고 북미 사이 군사적 대결이 종식되겠는가?

다음으로, 남북 사이 군사적 긴장과 대결을 해소하고, 군사적 신뢰와 평화군축을 실현해 나가기 위해서도 주한미군 철수는 필수적인 과제이다.

정전협정 이후 65년 동안 주한미군 주둔의 명분은 ‘북한(조선)의 침략으로부터 한국 방어’였다. 사실 이런 주장은 자체로도 정당성을 잃은 지 오래다. 북한(조선)의 국방예산과 한국의 국방예산의 격차는 2017년 기준으로 40배가 넘는다. 이런 격차는 수십 년간이나 지속돼 왔고 해마다 커져 왔다.

더욱이 남과 북이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은 없다”는 것을 내외에 공약하고 이를 위해 불가침 및 군사적 긴장해소, 나아가 평화군축을 단행해 나가자는 마당에 도대체 주한미군이 무슨 명분으로 계속해서 주둔한단 말인가?

잘 아는 것처럼 주한미군의 지속적인 주둔과 전력증강, 한미합동군사훈련 등은 한(조선)반도에서 외국군 증원과 군비증강을 금지한 정전협정 2조3항과 4항 등 정전체제를 무력화하는 데서도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나아가 주한미군 주둔과 미국의 지속적인 군사적 위협, 특히 핵전략자산의 전개, 핵선제공격까지를 포함한 대규모의 한미합동군사훈련은 북한(조선)의 핵무장을 불러온 결정적 원인이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평화협정 체결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주둔한다면 남북 사이 평화를 공고히 해나가는 데서 결정적 장애물로 작용할 것이며, 평화협정체제의 불안정성을 조성하는 불씨가 될 것은 자명하다.

다음으로, 북미 사이 군사적 대결을 종식하고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서도 주한미군 철수는 필수적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위험의 근원은 남북보다는 북미 사이 적대관계와 군사적 대결에 있다. 최근 전쟁접경을 넘나든 첨예한 군사적 대립과 전쟁위험이 북미 사이에서 발생한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러므로 북미 사이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군사적 갈등과 대결의 불씨를 제거하는 일은 한반도의 평화정착에서 가장 중요하다.

북미 사이 핵문제를 둘러싼 해묵은 갈등을 해소하고 관계를 정상화하며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마당에 대북 적대적 무력이자, 북한(조선)에 가장 심각한 군사적 위협인 주한미군을 그대로 두고선 결코 공고한 평화체제가 정착되기를 기대할 수 없다.

북한(조선)이 주한미군 철수를 일관하게 요구해 온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북한이 5월 북미정상회담 과정에서 주한미군 문제에 어떤 입장을 가질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북한(조선)이 설사 평화협정과 주한미군의 철수를 동시적으로 연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는 미국과 남측이 주한미군 철수를 완강히 고수하는 상황에서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수교 후 상호신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단계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조선)의 유연하고 대범한 조치에 상호주의적으로 화답하는 것이 아니라 주한미군 주둔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삼는 것은 궁색함을 넘어 민망하기조차 하다.

다음으로 동북아 다자간 안보체제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도 주한미군 철수는 필수적이다. 동북아 다자간 안보틀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국제적으로 보장하는 틀일 뿐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 데서 필수적이다. 날로 격화되는 동북아에서의 중미 패권각축과 이로 인한 군비증강, 군사적 충돌의 위험을 해소하지 않으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또한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문현 정부 때부터 이른바 평화체제 구축과 연관해 주한미군의 지위변경을 연구 검토해 왔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대북 적대적 무력으로서 주한미군은 주둔의 명분을 상실할 것임으로 주한미군의 지위를 ‘평화유지군’으로 변경해 동북아에서 ‘전략적 균형자 역할’을 한다는 발상이다.

‘평화유지군’, ‘전략적 균형자’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주한미군을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함으로써 극동에서 미국의 군사패권을 유지하는 군사력으로 영구 주둔시키겠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주한미군은 이미 ‘전략적 유연성’이 부여됨으로써 한반도를 넘어 어디든지 투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평화협정 체결 이후에도 한국이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유지하고 한국을 대중국, 대러시아 전초기지로 제공한다면 중미, 러미 사이 패권각축에 휘말리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욱이 사드배치로 인한 한중 갈등에서 보듯 중미 패권다툼의 틈바구니에 끼어 국익이 침해당하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세계적인 패권각축의 중심무대로 되고 있는 동북아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동북아 평화체제를 선도해 나갈 것인가, 아니면 강대국들의 패권각축의 희생양이 될 것이냐 하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그리고 이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주한미군 문제이다.

끝으로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주한미군 문제는 북미 사이 문제, 평화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의 군사주권과 자주권에 관한 문제이다.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 말대로 주한미군 문제는 한미동맹 문제이기도 하다.

잘 아는 것처럼 군사력 세계 10위로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은 주한미군사령관이 갖고 있다. 작전통제권도 온전히 갖지 못한 나라에 군사주권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당연히 군사주권이 없는 나라를 주권국가라 할 수 있겠는가?

일찍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기 군대 작전통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놔놓고 나 국방장관이오, 나 참모총장이오, 그렇게 별들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얘깁니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며 작통권 단독 행사에 반대하는 전직 국방장관들과 군장성들을 질타했었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참담하다. 얼마 전 한미FTA 재협상이 진행되고 있을 때 트럼프 미대통령은 “우리는 그들(한국)과의 무역에서 매우 큰 적자를 보면서 그들을 보호하고 있다”며 “우리는 무역에서 돈을 잃고, 군대(주둔 미군)에서도 돈을 잃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두고 “현재 진행 중인 한국과의 한미FTA 개정협상에서 원하는 이득을 얻지 못할 경우 한국에 주둔한 미군을 철수하는 위협을 가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보도했다.

이런 참담한 상황은 두말할 것 없이 70년을 넘긴 분단, 65년 넘게 지속돼 온 비정상적인 정전체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기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우리에게 평화와 번영의 기회일 뿐 아니라 군사주권조차 행사 못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끝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미국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주한미군이 나가면 세상이 끝날 것처럼 발악하는 친미보수세력이 아직도 국회의 과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남북, 북미관계를 풀어나가는 문재인 대통령의 고충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역사의 대전환이 일어나는 지금이야말로 국민의 힘, 민족의 힘을 믿고 담대하게 나갈 때이다. 국민은 “이제 주한미군철 수를 말할 때가 되었다”고 당당히 선언하는 대통령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