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로동당 중앙위 3차 전원회의 결정서 톺아보기

‘병진노선 결속’의 정치적 의의 언급 없는 이유와 북미정상회담의 상관관계

2018-04-23     김동원 기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의 핵심 화두는 발표된 결정서들에서 보듯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의 승리(결속)’과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 집중’이다.

대부분 언론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중단과 북부(풍계리) 핵시험장 폐쇄에 주목했는데 3차 전원회의의 일부를 전체로 확대해석하는 태도라고 하겠다. 확대해석은 다른 부분을 축소하는 편향을 드러낼 수밖에 없어 이해를 왜곡한다. 왜 그런 결과(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중단)에 이르렀는지는 원인(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의 승리)을 제대로 따져야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엔 관심이 적다. 북의 정치선전 정도로 치부한다. ‘왜’란 물음이 없고 이유를 따지지 않으니 해석이 평면적이고 더욱이 뒤틀려 있다. 꼬리가 몸통이 된다. 언론이 ‘북한(조선) 선 비핵화’ 관점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반도 비핵화’라고 쓰지만 ‘북 비핵화’라고 읽는 버릇은 여전하다. 이번 3차 전원회의를 북미정상회담과 연결해 보는 시각도 작용했다. 모든 게 연관돼 있긴 하지만 앞서처럼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시각을 고집하면 연관관계의 본질을 제대로 규명도, 해설도 못한다. 

▲ 사진 : 로동신문 홈페이지

먼저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의 승리(결속)’을 보자. 일각에선 병진노선의 ‘폐기’라고도 해석하는데 오독이다. 폐기란 오류 또는 실패로 드러나 중도반단한다는 뜻인데 ‘결속’은 그런 낱말이 아니다. 종료, 마친다는 거다. 노선이 제 역할을 다해서, 설정한 목표를 달성(북쪽 평가는 ‘승리’)해 끝낸다는 얘기다. 병진노선을 폐기했다는 해석이 옳으려면 북은 핵무기도 폐기해야 한다. 실패한 노선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속은 폐기가 아닌 거다. 그럼 북은 병진노선의 목표를 달성했는가?

김정은 당 위원장이 목표 달성의 판단 근거로 제시한 건 ‘국가 핵무력 완성에 따른 핵무기 병기화 완결’이다. 핵무력(수소탄 등 다양한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운반수단)을 계속 양산하고 실전 배치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북미 핵공방 과정에서 지켜본 결과들이다.

이는 군사적 측면에서 핵무력 건설을 중심으로 목표를 설명한 것인데 정치적 목표에 관한 표현을 자제한 결과라고 하겠다. 이런 판단의 근거는 5년 전 병진노선 채택 당시를 돌아보면 알게 된다. 김정은 당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병진노선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적들은 우리에게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없다고 위협 공갈하는 동시에 다른 길을 선택하면 잘 살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회유도 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최대의 핵보유국인 미국이 우리에게 항시적으로 핵위협을 가해오고 있는 조건에서 우리는 핵보검을 더욱 억세게 틀어쥐고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억척같이 다져나가지 않을 수 없다.”

병진노선을 결속하는데 ‘노선 유발자’에 관한 언급이 일체 없는 점이 외려 흥미롭다. 이는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북미정상회담을 염두엔 둔 것으로 보인다. 북의 각종 매체를 보면, 북미정상회담 개최 합의 이후 미국에 관한 언급을 가급적 삼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문제에 관한 정치적 목표 달성은 사실 올해 신년사에서 이미 공표됐다.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 국가의 핵무력은 미국의 그 어떤 핵위협도 분쇄하고 대응할 수 있으며, 미국이 모험적인 불장난을 할 수 없게 제압하는 강력한 억제력으로 된다.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 못 한다”고 했다. 그래서 연초부터 평화공세를 펴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한 마당에 병진노선의 정치적 목표 달성을 부각할 필요가 없다고 본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의 핵시험 중단과 핵시험장 폐기에 대해 직접 “매우 좋은 소식”이라고 호평했다. “큰 진전”이라며 “김정은과의 회담을 고대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을 겨냥한 정치적 목표 달성을 강조했다면 이런 반색과 회담에 대한 기대감 표현이 가능했을지 궁금하다.

북은 결정서에서 사실상 핵보유국임을 선언하고 있다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의 승리(결속)’ 결정서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끈 대목은 넷째 항목으로 “우리 국가에 대한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대다수 언론은 둘째 항목인 “주체107(2018)년 4월21일부터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이다.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하여 공화국 북부(풍계리) 핵시험장을 페기할 것”이란 데 시선을 집중했다. 앞서 지적했듯 원인이 있고서야 결과가 있다.

넷째 항목에 주목하는 이유는 북이 사실상 핵보유국임을 표현하고 있어서다.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표현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어야만 가능한 화법이다.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란 표현도 마찬가지. 북미정상회담에서 거론될 비핵화의 범위가 주로 ‘미래핵’에 맞춰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과거핵’의 경우 마치 2008년 6월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와 같은 상징적 범주에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결정서 셋째 항목의 “핵시험 중지는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며 우리 공화국은 핵시험의 전면 중지를 위한 국제적인 지향과 노력에 합세할 것”이란 언명도 같은 맥락이라고 하겠다. ‘핵군축’에 보조를 맞출 핵보유국이란 얘기다. 물론 북은 최근 ‘핵보유국’ 대신 ‘전략국가’란 표현을 주로 쓴다. 

그래서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21일 미국의 인터넷매체 <악시오스>와 인터뷰에서 북의 중앙위 전원회의 결정서에 대해 “책임 있는 핵보유국의 모든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즉 시험 금지, 선(先) 사용 금지, 이송 금지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면서 “이는 비핵화 선언이 아니며, 북이 책임 있는 핵무기 보유국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이라고 분석했다. 주한미대사 일보직전에 낙마했지만 노회한 전문가인 건 분명해 보인다. 

3차 전원회의의 ‘병진노선 결속’과 북미정상회담의 관련성은 다른 측면에서 분석해 볼 수 있다. 

지난 12일 한겨레는 복수의 소식통을 최근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에서 북측이 비핵화에 상응한 대가로 ▲미국 핵전략자산의 한국 철수 ▲한미연합훈련 때 핵전략자산 전개 중지 ▲재래식 및 핵무기로 공격 않는다는 보장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북미수교 등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사실 지난 2016년 북이 정부 대변인 성명으로 발표한 ‘조선반도 비핵화’에 관한 5개 대미 요구사항(▲남조선 내 미국 핵무기 공개 ▲남조선 핵무기와 기지 철폐 ▲조선반도 주변 핵타격수단 전개 중단 ▲핵사용 전쟁위협 중단 ▲주한미군 철수 선포)과 적잖이 겹친다. 북측이 주한미군 철수(선포)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빼면 대동소이다.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북미간 협상이 진행 중이란 사실은 지난달 16일 뉴욕타임스(NYT)의 보도에서 확인됐다. CIA가 막후협상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북쪽 상대는 통일전선부라고 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북미정상회담 개최 합의 사실을 발표한 게 3월9일이고 보면 곧바로 북미간 실무협상에 착수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흥미로운 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8일 확인한 폼페오 국무장관 지명자의 비공개 특사 방북 사실이었다. 폼페오 지명자가 4월 초 북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고 “만남은 매우 순조로웠고 좋은 관계가 형성됐다”고 트럼프 대통령은 결과를 긍정 평가했다. 

북미정상회담 준비와 관련해 언론 등에 공개된 일련의 정보들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 걸까? 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할 막후 실무협상이 늦어도 3월 중순 본격화됐는데(NYT) 여기서 북은 미국에 비핵화의 대가로 5개항을 제시했고(한겨레), 협상 내용을 확인 내지 중간 점검하러 대통령 특사인 폼페오 지명자가 방북해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만났다. 그런데 “만남은 매우 순조로웠고 좋은 관계가 형성됐다.”(트럼프 트윗)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 북이 병진노선 종결을 선언할만한 노선유발자와의 관계에서 변화 요인이 조성됐다고 하겠다. 미국과 협상과정에서, 대외적으론 어떻게 표현됐든 북이 병진노선의 ‘정치적 승리’라고 판단할 기준과 요건들이 충족됐다고 볼 대목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병진노선은 채택된 이래 북이 일관되게 지속할 노선으로 받아들여졌다. 김정은 위원장도 지난 2016년 5월 열린 조선로동당 7차대회에서 병진노선을 두고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한 일시적인 대응책이 아니라 우리 혁명의 최고 이익으로부터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나가야 할 전략적 노선”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혁명의 최고 이익과 직결된 항구적인 전략노선이 완료됐다는 것은 말 그대로 최고 이익 구현에서 제기된 정치적 목표 달성 없인 설명이 불가능하다. 물론 구체적인 내용은 시간이 알려줄 일이다. 

‘경제건설 총집중’ 노선, 병진노선 결속의 자연스런 귀결

다음으로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 집중’ 노선의 채택은 병진노선이 결속된 만큼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하겠다.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에 동시에 힘을 쏟는다’는 게 병진노선이고, 여기서 핵무력 건설을 완성하고 노선유발자인 미국에게서 정치적 승리라고 할 조건들을 얻어냈다면 모든 힘을 경제건설에 집중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란 얘기다. 

또한 병진노선과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집중 노선은 아무런 연관도 없는 별개가 아니다. 긴밀히 연관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병진노선 종결(승리) 결정서에서 “나라의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하여 강력한 사회주의 경제를 일떠세우고 인민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투쟁에 모든 힘을 집중할 것”이라고 뒤이을 경제건설 총집중 노선의 내용을 담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전원회의 보고에서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여 우리 혁명의 전진을 더욱 가속화하자!’는 구호를 제시하곤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당면목표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 수행기간에 모든 공장, 기업소들에서 생산 정상화의 동음이 세차게 울리게 하고 전야마다 풍요한 가을을 마련하여 온 나라에 인민들의 웃음소리가 높이 울려 퍼지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이 국가목표로 설정한 사회주의 강성국가의 3대 지표, 즉 정치사상강국, 군사강국, 경제강국 가운데 마지막 목표인 경제강국 건설에 총매진하겠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특히 지난 2016년 당 7차대회에서 공표된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 기간(2020년까지)에 “인민경제 전반을 활성화하고 상승궤도에 확고히 올려 세우며 나아가서 자립적이고 현대적인 사회주의경제, 지식경제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제시하곤 “과학, 교육사업을 중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의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은 “인민경제 전반을 활성화하고 경제부문 사이의 균형을 보장해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게 목표란 정도가 김 위원장 발언을 통해 확인됐을 뿐 내용이 공개한 적은 없다. 구체적인 사항을 알 수 없지만 김 위원장이 “인민들에게 남부럽지 않은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마련해주는” 경제건설 총집중 노선이 채택된 만큼 이를 적극화하리란 예상은 어렵지 않다. 

북이 이번 전원회의에서 ‘과학교육사업에서 혁명적 전환’을 결정서로 채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위원장이 “과학, 교육사업을 중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물론, 북은 해당 결정서 첫째 항목에서 “과학기술의 위력으로 경제강국 건설의 대통로를 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