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협정(선언)과 미국식 유체이탈화법

[기자수첩] 한반도 종전 문제, 남의 일 대하듯 하는 트럼프

2018-04-20     김동원 기자

구속된 이명박근혜 전 대통령들이 재임시절 유행시킨 화법이 있다. 유체이탈화법.

네이버 국어사전의 뜻풀이는 이렇다.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건이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를 하듯 말하는 화법을 뜻하는 신조어.’ 나무위키는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과 관련된 얘기를 마치 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남 얘기하듯 하는 말하기 방식.’ 

유체이탈화법이 최근 미국에서도 유행하는 것 같다. 남북에 이은 북미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거론되는 종전(終戰) 문제와 관련해서다.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을 했고 오바마 정부 땐 국방부 수장을 지낸 척 헤이글 전 장관은 지난 19일(현지시각) 미국의소리(VOA)와 인터뷰에서 최근 남북정상회담 의제의 하나로 종전선언이 거론된다는 소식과 관련해 “그렇게 된다면 한반도에 좋은 일이고, 한국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도 좋은 일이며, 그것이 우리(미국)가 원하는 것”이라는 말했다. 그러나 헤이글 전 장관은 북한(조선)과 미국이 종전협정을 논의할 가능성에 대해 기자가 묻자 “종전 문제는 남북 간의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어 “미국도 한국전에 참여했고 한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었으며 굳건한 동맹국이기 때문에 관련돼 있긴 하지만 ‘원칙적으로’ 남북 간의 문제”라고 주장하곤 “미국은 종전을 돕고 촉진할 수 있지만 이는 남북한 사람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미국도 한반도 종전을 원하지만 종전 문제에서 미국은 직접 당사자가 아니란 주장이다. 

종전협정(선언)에 관한 이런 입장은 헤이글 전 장관만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비슷하다. 헤이글의 입장도 어쩌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현지시각) 미국 플로리다 마라라고 별장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회담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선 한반도 종전 문제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이 북한(조선)과 만남을 갖고 전쟁을 종료할 수 있는지 보고 있는데 나는 그들에게 축복을 빈다.” 그러곤 “사람들은 한국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서 “현재 한국과 북한(조선)이 종전에 이르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 그들은 분명히 내 축복을 받을 것이고, 그 축복을 가지고 논의할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헤이글 전 장관처럼 “원칙적으로 남북간의 문제”라고 직접 선을 긋진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의 “(종전 논의에서) 그들은 분명히 내 축복을 받을 것이고, 그 축복을 가지고 논의할 것”이라고 한 대목은, 헤이글의 “미국은 종전을 돕고 촉진할 수 있지만 이는 남북한 사람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발언과 오십보백보다. 한반도 종전 문제를 마치 남의 일인 양 발언한 것이다. 

헤이글은 앞서 미국이 한국전에 참여했다고 말했지만, 한국전에서 미국의 역할이 단순 참가 정도가 아니라 전쟁 당사자였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전쟁의 ‘중단’을 합의한 휴전(정전)협정서에 서명한 전쟁 당사자 3국 가운데 동맹간인 북한(조선)과 중국의 적이 바로 미국이었다. 그래서 휴전(정전)협정서에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이자 미국 육군 대장인 마크 W. 클라크가 서명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때문에 지난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0.4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4항에서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한 것이다. 종전(선언) 문제의 ‘당사자’가 남북만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을 포함해 3~4자이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람들은 한국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럼 본인은 휴전(정전)협정서에 자국의 육군 대장이 당사자로 직접 서명한 사실을 망각한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유체이탈화법. 어디서든 말썽이다. 

1953년 7월27일 문산에서 클라크 유엔군사령관(미군 육군 대장)이 정전협정에 서명하고 있다.[사진 : 국방홍보원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