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농사’ 준비하는 겨울철 농민

[새해 인터뷰] 민플러스가 만난 진보(1) 전농 박행덕 신임 의장

2018-01-31     강호석 기자
전국농민회총연합(전농) 박행덕 신임 의장을 지난 29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전농 사무실에서 만났다. 올해 투쟁방향과 통일농업, 농민헌법, 정치방침, 1천 간부육성 등 전농의 중장기 계획을 들을 수 있었다. 박 의장 인터뷰 자리엔 김기형 사무총장과 강광석 정책위원장이 배석해 보충설명을 하기도 했다.[편집자]

17기 출범 뒤 첫 월요일, 전농 사무실은 아직 어수선했다. 그러나 올 한해 ‘아스팔트 농사’를 준비하는 겨울철 농민의 분주함은 사무실 공기를 데우기에 충분했다. 

▲ 박행덕 신임 의장은 전남 장흥군 농민회 출신으로 13, 14기 전농 광주전남연맹 의장을 역임했고, 2016년부터 전농 감사와 전남진보연대 상임대표를 맡아왔다. 

전남 장흥농민회 출신 박행덕 의장과 마주앉았다. 농사꾼이 주는 평온함과 상대를 겸손하게 만드는 진솔한 말투는 경직될 수 있는 인터뷰 자리를 사랑방 분위기로 만들었다. 

전농 의장이 된 소감부터 물었다. “압박감…, 책임감…” 짧은 답변에 전농의 정세인식과 박 의장의 각오가 묻어났다. 

박 의장은 2018년도 전농의 주요사업을 소개하다 말고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농민들은 지난 정권 때보다 더 못해졌어.” 잠시 당황했다. 문재인 정부로 말하면 백남기 농민과 전봉준 투쟁단이 불씨가 된 촛불항쟁으로 탄생한 정권인데 박근혜 시절보다 못하다니? 이유를 물었다. 

“농업적폐의 대명사(농민들은 ‘미국의 X’라고 부른다)인 김현종을 한미FTA 통상본부장으로 임명한 것. 밥쌀용 쌀수입을 재개한 것, 곡물 자족률 목표치를 32%에서 24%로 하향 조정한 것,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농업예산을 5% 줄인 것, 특히 2018년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에서 농민에 대해선 한마디 언급조차 않은 것은 문재인 정부가 우리 농민들과 척지겠다는 것 아니냐.” 말을 듣고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지난 24일 전북 순창향토회관에서 17기 신임 지도부를 선출했다.(왼쪽부터 김기형 사무총장, 박행덕 의장, 강광석 정책위원장) [사진 : 전농제공]

전농은 현재 농정개혁, 농민헌법 등 2018년 사업구상을 구체화하는 단계다. 그래서 일정별 세부 계획을 수립하기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다. 다만 평창올림픽과 통일농업, 6월 지방선거 방침 , 1천간부 육성사업 등 현안에 대한 입장은 들을 수 있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오랜기간 준비한 전농의 통일농업 구상이 구체화되는지 물었다. 박 의장은 “북 신년사에서 밝힌 우량종자, 다수확농법, 능률적인 농기계를 대대적으로 받아들이고, 축산물과 과일, 온실남새와 버섯생산을 늘린다는 정책적 방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며 ‘남북 농업농민 교류와 협력’ 사업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강광석 정책위원장이 설명을 더했다. “2월22일과 23일 평창, 민족공조 실현 전국농민 통일문화제를 계획하고 있다. 22일 오후 문화제에선 통일노래자랑, 8도 민요자랑, 달집태우기 및 통일소원 기원제를 진행하고, 이날 저녁엔 ‘밥상부터 통일하자’는 뜻으로 이남을 찾은 북측 손님에게 농민들이 직접 키운 농산물로 따듯한 밥한끼를 정성스럽게 대접하려고 한다.” 우리 정부의 허가와 북쪽의 호응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박 의장은 이어 “민중당과 함께 농민 정치세력화와 진보정당 확대강화를 추진한다”는 전농 대의원대회의 정치세력화 방침에 따른 지방선거 전략을 말했다. 

“이번 지방선거 후보 중엔 무소속, 정의당 또는 민주당으로 출마하는 (전농)회원들이 일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회원들이 전농 정치방침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당선전략일 뿐이다. 정당투표에서 민중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정치방침은 정확히 구현되리라 믿는다.”

정치위원장을 지냈던 김기형 사무총장이 보완했다. “진보정당은 대중단체(전농)를 확대 강화하는데 도움을 준다. 사실 농민들의 투쟁이 어느 것 하나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있나. 그래서 전농의 정치방침은 생활력이 있다.” 전농의 단결력과 저력이 느껴졌다. 

▲ 전농 신임지도부 후보 포스터(왼쪽부터 강광석 정책위원장, 박행덕 의장, 김기형 사무총장) [사진=전농제공]

박 의장은 ‘1천 간부 발굴 육성’ 사업을 힘주어 강조하기도 했다. “전농의 역량은 결국 간부 역량이다. 간부 없이는 투쟁도 없다는 마음으로 임기 2년 내에 반드시 튼튼한 전농 간부 1천명을 육성해내겠다.” 

인터뷰에선 작은 일도 부풀리는 경우가 흔한데, 씨를 뿌리고 땀흘려 일한 뒤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농민 특유의 지혜일까? 박행덕 의장과 임원들은 조직의 구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뿐 어떤 포장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의 결심에선 남다른 신뢰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