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국이 대화 여지를 스스로 끊었다

테러지원국 재지정, 예상되는 충돌 위험

2017-11-23     현장언론 민플러스
▲사진 : 유튜브 갈무리

미국이 북한을 다시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다.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한 지 9년만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 조치의 의미를 “살인정권을 고립화하려는 우리의 최대의 압박 작전”에 대한 “지원”으로 설명했다. 북을 ‘살인정권’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연이어 북 선박 20척과 이를 운영하는 7개의 해양 선박회사에 대한 제재를 발표해 북에 대한 해상봉쇄에 나섰다. 북의 해상무역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것이다. 이 조치는 사실상 충돌을 각오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적대 발언과 조치가 도를 넘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미국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에 대해 비판은커녕 “금번 미국의 조치는 강력한 제재·압박을 통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할 것”이라는 아전인수식 대미추종 발언만 늘어놓았다. 정부는 이것이 얼마나 반평화적이고 위험한 대응인가에 대한 작은 고려조차 없어 보인다.

트럼프 정부의 이번 조치는 중국의 쑹타오 대북특사가 사실상 빈손으로 돌아온 직후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큰 움직임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보자”며 기대를 표명했던 것처럼,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특사파견은 지난 9일 중·미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사항을 북에 전달하고 북의 입장변화를 유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미가 공동으로 제기하는 북의 비핵화는 북이 이미 수십 차례 발표했듯이 받아들일 사안이 아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두 나라가 근본적인 정책전환 없이 힘에 의한 압박의 일환으로 이를 요구하러 보냈다면 북의 냉대는 불을 보듯 뻔했다. 이런 요구가 통할 것이라고 중·미가 기대했다면 태도는 오만한 것이요, 상황인식은 안이한 것이다. 이에 대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번 방북이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전 세계가 오판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즉 북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로 북이 “비핵화 논의나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해 어떠한 양보도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줬다”는 것이다.

이렇듯 중국의 한계가 전 세계에 드러난 이상 미국은 중국을 앞세운 대북압박을 더 이상 추진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제 미국이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정부가 중국 대북특사의 ‘빈손 귀국’ 직후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비롯해 2주에 걸친 “매우 거대한 추가제재”를 최고 수준으로 하겠다고 한 배경이다. 미국은 실제로 자신들의 제재 압박이 북의 미사일 발사를 두 달 이상 멈추게 한 동력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압박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북이 계속 버티는 한 압박을 극대화해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중국 ‘글로벌타임스’가 “새로운 대북 압박이 핵 문제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바꾸기는커녕 더 거센 반발을 촉발할 것”이라고 우려했듯이 미국의 이런 태도는 충돌 위험을 더 심화시킬 뿐이다. 미국은 대화의 여지를 스스로 끊었다.

북한 외무성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에 대해 “미국은 감히 우리를 건드린 저들의 행위가 초래할 후과(결과)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지게 될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하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역시 “트럼프가 또 한 차례의 선전포고와 같은 특대형 도발을 해온 이상”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분노와 증오가 미국이 바라지 않는 보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대하여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실 이런 반응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바다. 북한이 제재 강도가 좀 더 세진다고 해서 이미 완성단계에 있는 핵을 버리고 굴복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이 정책을 추진하는 미 정부 내에서도 없을 것이다. 트럼프의 ‘최대 압박 캠페인’이든, 틸러슨의 ‘평화적인 압박 캠페인’이든 모두 북의 굴복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성공할 수 없다. 이것은 트럼프 정부 스스로 실패를 인정한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의 확대 강화 이상이 아니다.

이렇듯 미국이 무모할 정도로 제재압박을 밀어붙이는 의도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현상유지 전략이다. 미국이 북과 전쟁을 하기는 부담이 크고, 그렇다고 평화협정을 맺을 준비도 안 된 조건에서 어쩌면 미국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과거와 같은 ‘한반도의 항시 긴장상태 유지’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이 북을 고립, 질식시키려는 제재압박을 가하면서 예상되는 북의 반발을 항시적인 첨단무력 배치와 연합군사훈련으로 막으면 한반도에 상시적인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자신들의 지배적 지위를 지속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또 이를 통해 시간을 벌어 “풀을 뜯어 먹을 정도”의 고강도 제재를 장기적으로 밀고 가면 북 내부가 동요를 일으켜 정권을 교체한다는 이른바 ‘급변사태’도 바라는 바일 것이다. 미국은 자신이 쓰레기통에 버린 고장난 스테레오를 다시 꺼내 틀려 하고 있다. 오만함과 어리석음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북이 두 달 이상 고강도 대응을 자제한 것은 ▲미국과의 ‘힘의 균형 전략’의 달성, 곧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기 위한 준비이자 ▲미국에게 ‘이제 그만하고 평화협상에 나설 것’을 요구한 것이기도 하다. 한동안 북미간 물밑협상이 진행되었다는 보도가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미국이 결국 보여준 것은 거듭된 군사훈련과 테러지원국 재지정, 그리고 해상봉쇄라는 가혹한 대북 적대정책뿐이다. 이것은 미국이 북과 평화협상에 나설 의지가 없음을 말한다. 미국은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중국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21일 사설에서 이제 중국이 해야 할 일은 “유엔의 틀에서 한반도 비상사태에 대응하는 데 좀 더 강조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중국이 더 이상 중재에 나설 일은 없고 예상되는 ‘한반도 비상사태’ 대응에 더 주안점을 둬야 한다는 얘기다.

이제 한반도는 문제해결을 위한 거의 모든 대화여지가 끊긴 상태다. 남은 것은 미국의 거듭된 제재 압박에 북이 언제,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 여부다. 이것은 바로 전쟁인가, 평화협상인가를 가를 것이다. 제재국면이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 가중된 충돌 위험 앞에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의 화해협력을 바라는 모든 이들은 미국의 거듭된 적대정책의 폐기와 평화협상 요구에 더욱 힘을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