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현장은 '데마찌'다, '데마찌'

[농성일기] 건설노동자 이영철·정양욱 고공농성 12일차

2017-11-23     이영철 건설노동자

새벽부터 비닐 위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바람과 비는 농성을 힘들게 한다.
농성뿐이 아니라 건설현장도 힘들어진다.

대부분 공장에서 비가 오면 현장은 ‘데마찌’다. 데마찌. 이것 역시 어원을 알 수 없는 현장 용어다. 데마찌 나면 건설노동자들은 하루 일당을 공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 돌아가기 먹먹한 동료들은 모여 현장 앞 해장국집에서 술국 한 그릇에 소주잔 기울이며 아침부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술국에 쏟아낸다.

하루 일당을 못 버니 가족에게 미안하고 수십 년 일만 하고 살아 다른 취미도 없으니 시간을 보낼 방법도 몰라 그저 술타령 아니면 밀린 잠을 자는것으로 데마찌난 날을 보낸다.

건설현장에서 벌어지는 착취의 구조는 건설노동자들이 계획없이 살게 한다. 

일용직 초단기 계약서는 현장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쓰이고 다단계 불법 하도급은 내 임금과 안전마저 담보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하루하루를 견디며 사는 것도 다행일 것이다. 

비 단도리 하다 보니 하나 있는 장갑이 젖어서 손이 시렵다. 핫팩을 꺼내 손등에 올려본다. 

점심부터 바람이 거세진다. 아래의 동지들이 안전 밧줄이 위험하니 두세 줄 더 만들어서 하라고 한다. 
걱정이 많이 되나 보다... 위에 있는 우리보다 동지들이 고생을 더한다. 
납작 엎드려 광고탑 흔들림에 몸을 맡긴다. 그리고 눈을 감는다. 

그대는 충분히 먹고 있는가
그대는 충분히 입고 있는가
그대는 충분히 쉬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결코
그대는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적게 먹고 있다
그대는 가장 따뜻하게 만들고 가장 춥게 입고 있다
그대는 가장 오래 일하고 가장 짧게 쉬고 있다

- 김남주 <민중> 일부

언젠가 읽은 김남주 시인의 시 구절이다.

건설기계노동자의 삶을, 민중의 삶을 너무도 절절히 시에 담고 있어 내 마음 한편에 담아두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삶, 건설기계노동자의 삶은 온몸을 내어주고 재 한 줌 받는 삶일 것이다. 

바꿔야 한다. 바꿔야 한다. 

* ‘데마찌’는 손해, 손실을 뜻하는 영어 ‘데미지(damage)’의 일본식 발음이라고 합니다. 작업이 중단돼 손실을 보는 것을 일본인들이 ‘데미지를 입었다’고 표현했다는데, 건설현장에서 영어 ‘데미지’를 일어 발음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