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있지 못하고 앉아 있기도 버겁다

[농성일기] 건설노동자 이영철·정양욱 고공농성 4일차

2017-11-15     이영철 건설노동자

14일 오늘은 아침부터 바람이 심하게 분다. 여의도 샛강에서 부는 바람 때문에 광고탑 위에 서있지 못하고 앉아 있기도 버겁다. 갑자기 광고탑이 흔들거려 놀란 가슴이 진정이 되지 않는다. 설마 광고탑이 흔들릴 줄은 생각도 못했다. 

바람에 광고탑이 흔들리고 내걸었던 ‘노동기본권 보장’ 현수막이 광고탑 위로 올라오고야 말았다. 노동기본권 보장이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다. 

바람이 잦아들기를 바라면서 현수막 내릴 궁리를 한다. 이것이 뭐라고 정양욱 동지와 갑론을박하며 대책을 논의하다 정 동지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일단 2리터 생수를 더 매달아 현수막을 내리니 안정감이 있다. 태풍에도 견딜 수 있으려나? 그것을 확인하려면 여름까지 농성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너무 불어 점심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도 힘들지만 아래에서 지원하는 동지들이 많은 고생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 한곳에 부채감이 쌓인다.

정 동지의 부인과 아들이 고공농성 소식을 듣고 광주에서 찾아왔다고 한다.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속내도 못 전하고 농성 중이라 식구들의 걱정이 클 것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정 동지의 7살 된 아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아빠를 자세히 보려는 듯 더 가까이 오려 한다. 옆에서 지켜보며 애잔한 마음을 가진다. 

아빠를 한창 찾을 나이인 7살 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빠와 영상통화를 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도 해맑다. 자식들에게는 올바른 세상, 노동이 존중받고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더 노력해야한다. 

오후 5시쯤 바람이 잦아들면서 점심 겸 저녁을 올려 받아 찬바람을 맞으며 먹는다. 아래에서는 동지들의 집회소리가 들려온다. 

기쁜 소식이 알려졌다. 부영투쟁으로 영장실질심사를 받던 대구경북건설지부 오인덕 지부장 동지가 영장 기각으로 동지들 품으로 되돌아 왔다. 건설노동자의 정당한 투쟁, 소박한 요구를 탄압할지라도 더욱더 힘내서 투쟁하자고 마음을 다 잡는다. 

타협할 수도 있고 적당히 할 수도 있지만, 정당하고 소박한 요구마저 타협할 수는 없다. 그것이 건설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지역에서 투쟁하는 단 하나의 이유이다. 

<14일(화). 이영철 건설노조 수석부위원장 · 정양욱 광주전남 건설기계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