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민주주의, 그 혁명적 사상

[민주주의 이론과 쟁점①] 제도로서의 민주주의와 현실의 난점

2017-07-11     손우정 성공회대 사과연 연구위원
진보정치의 부활을 위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 핵심적 가치는 민중이 주체가 되는 직접정치다. 그렇다면 직접정치는 과연 무엇일까? 현장언론 민플러스는 민주주의와 직접정치, 새로운 진보정당의 내부 민주주의에 대한 시사점을 얻기 위해 민주주의의 이론과 쟁점에 관한 손우정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의 글을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흔히 1987년 6월항쟁을 계기로 한국사회가 민주화되었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다시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는 것은 민주화는 ‘되었다’고 표현할 수 있는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지속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동적인 것이라는 점을 말해 준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요구하는 민주주의는 1987년 6월의 광장이 요구했던 것과 동일한 것일 수 없다. 도대체, 민주주의가 무엇이길래?

6월항쟁을 계기로 탄생한 이른바 ‘87년체제’는 우리에게 진보정치의 제도화라는 성과를 가져온 동시에 진보정치의 궤멸적 타격과 주변화라는 한계 또한 안겨줬다. 진보정치의 부활과 재도약을 위한 시도가 계속되고 있지만, 그것이 87년체제의 한계 속에 맴도는 것이라면 곤란하다. 새로운 체제로의 이행과 구성을 위해서는 진보정치가 먼저 새로움의 모습을 구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시, 민주주의와 조우해야 한다.

사고실험 :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데모크라시(demo(s) + Kratia)라는 어원이 의미하는 것처럼 데모스, 즉 인민이 직접 통치하는 체제다. 이 말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고(思考) 실험이 필요하다.

상상해 보자. 만일 개인에게 무한정의 자유가 부여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간 본성의 선함을 믿는 이들은 무한정의 자유에도 시민들의 자발적 자치가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할 법도 하지만, 대체로는 부정적일 것이다. 인간의 욕망과 힘의 불균형은 점차 소수의 악함이 다수의 선함을 짓밟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아무런 규제와 통제가 없다면, 어떤 의미로든 힘이 있는 이들이 주도하는 야만의 상태로 전락할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개개인의 생명조차 유지될 수 없다.

영국 철학자 홉스는 이런 상태를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인 ‘자연상태’로 표현했다. 아무런 통제와 규제가 없으면 인간은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생명까지 위협한다. 이런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홉스가 생각한 방법은 엄청난 힘을 가진 존재에게 복종하는 대신, 자신의 생명을 보장받는 것이다. 홉스는 그 거대권력을 무시무시한 바다괴물인 리바이어던으로 상상했다. 바로 절대국가다.

▲홉스는 만인 대 만인이 투쟁하는 자연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거대한 권력에게 자유를 양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절대국가를 상징하는 바다괴물 리바이어던은 인민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인공적 인간을 만드는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국민은 자신의 생명을 보장받는 대신 그의 자유를 국가에 양도함으로써 지배와 억압을 수용한다.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과연 다른 방법은 없을까? 개인의 자유를 무한정 보장하면 만인과 만인이 싸우는 전쟁상태에 빠지고, 그 자유를 빼앗고 안전과 생명을 보장할 절대권력을 수용하면 억압에 빠져버리는 딜레마를 넘어설 수는 없을까?

하나의 대안이 있다. 그것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어떤 규제를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었다. 어떤 규칙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자유였고, 그렇게 선택한 규칙을 수용하는 것은 억압이 아니었다. 이는 스스로가 규칙을 결정하는 지배자가 되는 것이자, 그 규칙에 종속되는 피지배자가 되는 것이기도 했다. 민주주의가 말하는 ‘인민의 자기 지배’는 이처럼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분리되지 않는, 둘이 ‘동일한’ 상태를 말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투입과 산출이 같아야 한다. 투입은 어떤 상태를 조정하고 규제할 규칙, 산출은 그 규칙으로 영향 받는 범위다. 우리는 그 규칙을 ‘법’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란 법을 쓰는 저자와 그 법의 적용을 받는 수신자가 동일한 체제다.

민주주의의 근본적 의미가 이렇다 하더라도 이를 현실에서 구현할 때는 여러 가지 난점이 발생한다. 우선, 민주주의가 ‘인민의 자기 지배’라고 할 때, 그 인민의 범위가 어디까지냐는 문제가 있다. 알다시피 그리스에서는 노예와 여성, 외국인에게는 결정권이 없었다. 즉,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에 비춰보면 투입(남성 자유시민)과 산출(남성 자유시민 + 노예 + 여성)이 일치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의 민주주의는 남성 자유시민의 민주주의에 불과했고 피지배자는 지배자의 범위를 초월했다.

이 문제는 인민(데모스)의 범위를 조정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보통선거권 조차 그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1964년 연방대법원이 수정헌법 제14조 평등보호 조항에 따라 폐지하기 전까지 세금을 낼 수 있는 사람에게만 투표권을 줬던 인두세가 살아 있었다. 게다가 지금까지도 까다로운 절차를 통해 ‘유권자 등록’을 한 이들에게만 투표권을 준다. 직접민주주의 메카로 불리는 스위스에서는 1971년에서야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어려운 난점은 도처에 깔려 있다. 두 가지만 살펴보자.

직접민주주의와 간접민주주의?

첫째, 흔히 민주주의의 원형이 현실에서 구현된 사례로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를 이야기한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는 중요한 결정을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직접 결정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직접민주주의와 간접민주주의를 구분하고, 아테네와 같은 사례를 직접민주주의로, 오늘날의 대의제 민주주의를 간접민주주의로 부른다. 과연 타당할까?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는 남성 자유시민들의 민주주의였다. ‘누가 데모스인가?’는 민주주의의 핵심 질문 중 하나다. 사진은 영화 ‘아고라’의 한 장면.

기원전 4세기 아테네에는 여성과 외국인, 노예를 빼고 성년에 이른 시민들이 3만 명 정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3만 명이 어느 정도 규모일까? 서울의 일개 동 단위 인구가 대략 3만 명이다. 게다가 거주지와 근무지가 분리된 구조,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과노동(over-work) 상태를 고려하면 국가와 광역 차원은커녕 동단위의 직접민주주의도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1년에 40회 이상 회합했던 그리스의 민회는 공공질서의 유지에 관한 법적 틀, 재정, 직접과세, 도편추방, 대외 업무 등과 같은 주요 의제를 심의하고 결정했지만, 늘 안건을 준비하고 법안을 기초하였던 것은 아니고 3만 명이 모두 모인 것도 아니었다. 여러 기록의 차이는 있지만 민회에 참여했던 성인 자유민 남성은 대략 6천 명 정도였다.

사실 보다 일상적인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보울레’로 불린 대의체에서 진행되었다. 여러 차례 개편과정을 거친 보울레는 민회의 대의체였는데, 10개 부족에서 추첨으로 선발된 500명으로 구성됐다. 상임의장 역시 10개 부족에서 돌아가며 추첨으로 선발했다. 이 보울레는 민회와 같은 직접민주주의의 비효율성을 모집단에 대한 대표성이 가장 과학적으로 보장된 샘플(대의원)이 보완해 주는 방식이었다.

<법의 정신>을 저술한 몽테스키외가 “추첨에 의한 선발은 민주정의 특성이요, 선거에 의한 선발은 귀족정의 특성”이라고 말할 정도로 추첨으로 선발한 대의체는 그리스 민주주의의 핵심적 기능이었다. 그리스에서는 행정관(오늘날의 공무원)의 다수도 추첨으로 선발했다. 자유시민이면 국가와 시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의무와 권리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가 오로지 민회를 중심으로 한 ‘직접민주주의’로 운영되었다고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문제는 직접민주주의냐, 간접민주주의냐 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간접민주주의(대의체)와 어떤 직접민주주의가 더 민주적이냐는 것이다. 대의체의 구성방식과 성격도 다양하고 직접민주주의 역시 그 형식과 내용 면에서 천차만별이다. 우리 역사에서 선거를 제외한 국민투표가 제일 처음 도입된 것이 박정희의 5.16쿠데타 이후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스의 보울레가 민주주의의 특징적 기관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잘 묘사했듯이 “내일이면 내가 앉아 있을 수도 있는 자리에 오늘 앉아 있는 이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민주주의는 ‘선거’와 동일시되기 시작했으며,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동일하거나 교체되는 것이 아니라 매우 견고하게 분리되었고 직업 정치인과 전문가들이 정치를 독점하기 시작했다. 사회와 분리된 정치가 민주적일 수 있는가?

▲ 간접민주주의냐 직접민주주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간접민주주의, 어떤 직접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근본정신에 더 부합하느냐를 물어야 한다. [사진출처 : 국회 홈페이지]

민주주의는 절차(과정)인가, 내용(결과)인가?

두 번째 문제는 민주주의를 절차와 제도로 보느냐, 어떤 결과나 상태로 보느냐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87년체제의 민주주의적 한계를 말할 때 흔히 ‘절차적 민주주의는 완성되었지만 실질적 민주주의의 완성은 과제로 남아 있다’는 평가를 듣게 된다. 여기에서 실질적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역시 다양하지만, 대체로 절차와 대립시키는 어떤 상태, 즉 절차를 통해 작동한 결과를 의미하게 된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절차와 결과를 모두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보게 되면 여러 가지 혼란이 발생한다. 이 둘은 꼭 같지 않기 때문이다. 아주 잘 설계된 민주적 방식을 통해, 구성원들이 매우 정교한 룰을 따라 토론하고 내린 결론이라도 최악의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 개개인은 잘못된 판단을 자주 하는데, 우리 전체도 그럴 수 있다.

문제는 민주주의를 결과나 어떤 ‘좋은 상태’로 보게 되면 절차와 과정은 부차적인 중요성을 가지는 것으로 인식하기 쉽다는 점이다. 특히나 사회적 견해와 가치가 서로 다른 경우, 스스로의 가치와 다른 결정은 ‘좋지 않은 결과’로 이해된다. 이런 경우의 극단적 결과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실질적 민주주의(결과로서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절차적 민주주의를 제한하거나 중단하는 것이다. 이런 사례에서 독재와 민주주의는 교묘하게 서로를 참칭한다.

이런 문제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민주주의’와 ‘정치’를 구분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인민 스스로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규칙을 결정하는 절차이자 제도이며, 정치는 데모스가 좋은 결과를 내릴 수 있도록 경주하는 실천적 활동이다. 서로 다른 지향을 갖는 정치는 민주주의의 틀 내에서 활동해야 하며, 그 절차가 최선의 민주주의였다면 그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만일 이 두 가지가 뒤바뀔 경우 우리는 역사 속의 독재권력, 심지어는 진보정치의 일부 경향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권위주의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항상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가능성을 높이는 제도다. 각자의 상이한 주장들이 서로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들 대안’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무엇이 실제로 좋은 결과를 낳는지는 사후적으로만 판단될 수 있기 때문에 집단적 토론과 심의를 통해 그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결과는 그 정치공동체의 문화와 관습, 정치적 질, 경제적 조건에도 크게 영향 받는다.

동일한 제도와 규칙이라도 모든 데모스에서 동일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질문이 허용되지 않는 정치문화에 익숙한 이들은 참여를 부담스러운 의무로만 받아들이며, 가치보다 계파, 인물에 따라 결정하는 문화에 익숙한 이들은 스스로 고뇌하기보다 누군가의 입만 본다. 최소한의 공적 사안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볼 여력조차 없는 과로 일상사에 놓인 이들은 민주주의를 중산층의 향락꺼리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다.

이제 앞으로 진행될 연재에서는 민주주의가 현실에 적용되면서 나타나는 두 가지 편향과 왜곡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하나의 조직이나 정당 내부에 민주주의를 적용할 때 나타나는 몇 가지 쟁점과 대안을 파악해볼 것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