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미 정상회담, 제한된 성과 깊어진 우려

한미동맹 강화의 틀 안에서 제한된 남북관계의 길 선택한 문재인 정부

2017-07-04     현장언론 민플러스

문재인 대통령의 첫 한미 정상회담이 마무리되었다. 보수적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대북정책에 대해 “한치도 빛 샐 틈 없는(No Daylight) 공조를 구축”했다고 평가하듯이 트럼프 대통령과 거의 완전한 합의를 이룬 모양새다. 이를 두고 정부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하고, 국내 대다수 언론들도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심지어 일부 수구언론은 문재인 대통령의 “한국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이식시킨 나라는 미국”, “한국의 성공은 미국의 보람이 될 것”이라고 한 발언을 두고 보수정권과 별 차이가 없는 대미·대북 인식이라며 반겼다. 

회담 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철저한 한미공조에 기반한 대북정책의 추진’이다. 이것은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대북정책 기조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음을 의미한다. 달라진 것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로 미 본토가 위협받는 근본적 상황변화가 발생하여 미국으로서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한반도 문제에 대처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미국이 제재와 압박을 강도 높게 유지하면서도 적절한 여건 아래서의 북미 정상회담을 거론하고 북의 선비핵화가 비현실적 목표임을 여러 경로를 통해 밝히면서 한반도 문제의 단계적이고 포괄적 해법을 인정한 이유이다. 이러한 미국의 처지와 입장의 변화는 문재인 정부가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보다 훨씬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독자적인 대북 화해의 길보다 기존의 익숙한 한미동맹 강화의 틀 안에서 제한적인 변화의 길을 택하였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총평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번 회담 결과와 관련하여 ▲미국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국의 주도권 인정 ▲미국의 핵동결 이후 폐기라는 한반도 문제 2단계 해법 동의 ▲조건에 기초한 전시작전권 조기 전환을 위한 협력 등을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성과를 논하기 앞서 냉정히 짚어봐야 할 게 ‘미국의 인정하는 범위’라는 전제조건이다. 

공동성명은 “한반도 평화통일 환경 조성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에 합의하고, ‘인도주의적 사안을 포함한 문제들’이라는 전제 아래 남북대화 재개에 대한 지지를 담았다. 이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를 우리가 대화를 통해 주도해 나갈 수 있도록 미국의 지지를 확보했다”고 자평하였다. 하지만 문 대통령 스스로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서조차 “지금은 쉽게 할 수 없다.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가 필요한 문제”라고 미 의회 지도부와 간담회에서 밝혔듯이 미국의 사전 동의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이것은 남북대화를 미국이 인정하는 범위 안에서 추진하겠다는 것인데, 과연 얼마나 주도적으로 대화를 추진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한다.

또 한반도 문제의 2단계 해법은 문재인 정부의 독자적 견해가 아니라 이미 미국 내 정파를 불문하고 상당수 현실론자들이 제시해 온 방안이다. 문 대통령 방미 직전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책사인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 회장이 방한하여 이런 단계적 해법을 강연하고 문 대통령을 만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정부는 자신들이 독자적으로 이 방안을 제시하면 기존의 북한 선비핵화 원칙에서 후퇴한 것으로 비쳐질 것을 우려한 때문인지 문재인 정부가 제안한 방안을 합의해 주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물론 이 방안은 북핵 문제의 현실적 타개책을 모색하고, 단계적 포괄적 협상을 준비한다는 점에서 기존 선비핵화 주장보다는 진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방안을 문 대통령이 총대를 메고 앞장서려 한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를 전제로 한다고 밝혔지만 북과의 대화 조건으로 북의 핵·미사일 시험 중단이나 구금돼 있는 미국인 3명 석방 등을 제기해 북한을 자극하였다. 더 나아가 오바마 전 대통령을 만나서는 “북이 대화의 문으로 나설 마지막 기회”라고까지 말해 진정 북과 대화할 의지가 있는지를 의심케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북미간 문제인 핵과 미사일 문제를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처럼 제기하고, 대화 자체가 무슨 보상인 것처럼 북에게는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다. 이것은 미국의 강경 매파들과 박근혜 정권이 선비핵화 조치가 있어야 북과 대화하겠다던 태도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공동성명은 이밖에도 곳곳이 모순되고 충돌된다. 북에 대해 적대정책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하면서도 북에 대한 압박 강화와 기존 재제의 충실한 이행, 나아가 새로운 조치의 시행 등 사실상 적대정책을 계속하겠다고 한다. 또 전시작전권의 조기 전환에 협력한다면서도 연합방위태세를 강화하기 위한 각종 외교·군사 회의의 정례화와 군사능력의 강화, 나아가 일본을 포함한 한미일 3국의 협력 증진 등을 강조했다. 적어도 북에 대한 적대정책을 하지 않고, 단계적 포괄적 대화의 문을 열겠다고 하면 그에 상응한 기존 제재의 완화나 한미군사훈련의 중단 등 누가 보더라도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조치를 언급해야 할 것이다. 이런 조치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한미 양국이 동의한 ‘4NO’ 원칙(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추진하지 않고, 북한을 공격할 의도가 없으며, 북한 정권의 교체를 원하지 않으며, 인위적인 한반도 통일을 가속화하지 않는다)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귀국 인사말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촛불민심의 절박한 바람이다. 지난 역사가 보여주듯이 한반도 평화체제에 가장 큰 이해를 가진 집단은 우리 민족이다. 남북이다. 미국, 중국, 일본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바로 이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남북문제를 북미간 문제와 구별하여 접근하여야 한다. 남북문제를 북미간 문제의 하위에 놓아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문 대통령은 전제조건 없이 6.15, 10.4선언 정신에 따라 북에게 좀 더 과감하고 통 크게 다가가야 한다. 그래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길이 열린다. 이것이 역사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