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남편을 집으로 돌려보내 주시면 안 될까요?

[343일차] 5월18일(수) 기아차 비정규직 최정명·한규협 농성일기

2016-05-18     편집국

올해들어 가장 무덥다는 오늘입니다. 여름철을 이미 한차례 겪어본 농성자들은 버틸 만합니다. 철판이 뜨끈해지는걸 보니 더위와의 싸움을 준비해야겠습니다.

농성자 아내들이 쓴 글이 보입니다. 남들 앞에 알려지는 걸 꺼려해 언론사와의 인터뷰도 마다했던 최정명 동지의 형수님과 집사람이 쓴 글들을 보니 미안하고 착잡합니다. 내려가면 고마운 마음 평생 지니고 살아야겠습니다.

- 권현숙(최정명 동지 부인)

사람 살곳은 아니라며 길어야 두 달이면 돌아온다던 남편이 배낭을 메고 집을 떠난지 일년이 되었습니다. 사람 살 곳 못되는 철판위에서 여름나고 겨울나면서 생사람 두 목숨을 잡을 판국인데 이제 와서 조합활동 인정이니 아니니 하는 이야기를 듣자니 어이가 없고 억장이 무너집니다. 엊그제 남편에게 옷가지를 전해 줄려고 인권위 건물에 들어가는데 조합활동 인정을 못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는지 광고회사 직원이 저를 정말 안타깝게 바라보던 표정이 생각나 서글퍼집니다.

땅에 발붙이고 부모로 시민으로 살아가기도 힘에 부치는데 동료들을 위해 한 몸 던지겠다고 고공농성에 나선 남편입니다. 수년간 노조 대의원으로 활동했고 비정규직 대의원으로서 자기본분을 미련스러울만치 충실하게 하고 싶어 고공을 선택한 남편입니다.

고공농성이 공장내부가 아니라서 조합활동이 아니고 노조에 사전승인을 받지 않아서 인정 할 수 없다면 전태일 열사가 봉제공장이 아닌 평화시장 길바닥에서 혼자 분신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노조관계자분들께 묻고 싶어 집니다

그때는 노조가 없었지요. 지금은 노조가 있는데도 조합간부 둘이 외롭게 싸우다 죽어가는 걸 외면한다면 노조가 없을때보다도 못한 세상입니다. 설마.. 비정규직이라서 노조에서도 소외되는 그런건 아니길 바랍니다. 대기업 노조라서 전통이 어떻고 금속노조라서 규모와 힘이 어떻고 늘 자랑스럽게 여기던 노동조합 대의원 최정명씨를 입으로만 동지라 부르지 말아주세요. 대의원대회 결과가 조합활동 인정으로 나오더라도 이런 안건을 농성 일년이 되가는 지금 얘기하는거 정말 실망스럽습니다

이제 남편을 집으로 돌려보내 주시면 안 될까요? 기아자동차 노조 대의원님들! 지부장님! 조합활동으로 노조가 인정해야 회사와 싸우고 그래야 두 사람이 내려오는거 아닌가요. 일년이 되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유가 노조 때문이었나...원망스럽네요. 일단 고공에 올라가면 노조가 함께 싸워 줄거라고 큰소리치던 남편이었는데. 우리집 초등학생 남매는 아빠가 일년 동안이나 우리를 보러 안왔으니 앞으로도 아주 안올것만 같다며 아빠와 함께 있는 아이들을 보면 눈길을 떼지 못합니다.

부지부장님과 기획실장님 통해 기아차지부장님께 가족면담을 요청드렸는데 답이 없으시네요. 대의원대회 중요안건이 많아 바쁘시다고 하는데 사람이 살고 죽는 것보다 바쁜 일이 세상에 또 있는지요.

겨울을 나면서 급속도로 약해진 몸이 입맛도 밥맛도 거둬 가버리고 의지로 버티고 있는 두 사람입니다. 하루 빨리 내려와 병원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민주노조라면 인간적인 측은지심도 있으시겠지요. 가족들 곁으로 남편이 여름 전에 돌아오기를 일년 집중 투쟁 전에 내려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아차지부 대의원들께 옳은 결정을 부탁드립니다.

- 김소희(한규협 부인)

343일.....

세 아이의 아빠 한규협씨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날입니다. 잠깐, 아주 잠깐 기다려주면 돌아온다고 했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한데. 벌써 1년을 코앞에 두고있습니다.

매일 복용하던 고혈압 약을 1개더 추가해서 먹고 있는 남편. 지난해 여름엔 발까지 다쳐 그 높은 곳에서 생으로 살을 꽤매고 화상으로 고통받고, 유난히도 춥던 겨울엔 동상까지.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상황입니다. 지금은 치통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느나 진통제 하나로 버티고 있는 남편입니다. 언제쯤 지상으로 내려와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을까요?

기아자동차에서 일한지 10년!

누구보다 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일했던 남편인데, 늦둥이 딸을 낳고 아이들만큼은 차별 없는 사회에서 살게 해야한다며 더 열심히 뛰던 제 남편은 스스로 하늘 감옥에 갇혔습니다. '왜 당신이냐?'며 붙잡고 싶었지만 모두를 위해 힘든 결심을 한 남편이 아프거나 다치지말고 돌아오기를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차별받지 않도록 지금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남편의 얘기에 저도 공감했으니까요.

남편을 자주 만나러 가지 못하지만 매주 금요일 금요문화제 만큼은 빠지지 않고 함께 하고있습니다. 큰 아이들은 아빠가 고공농성중인걸 알고 처음엔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큰 힘과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해고 이후 어려운 생계를 취업해서 함께 책임지려고 노력하는 둘째도, 군입대를 앞두고 있는 큰아들에게도 아빠의 빈자리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막내 늦둥이는 수시로 제게 묻습니다."아빠는 언제 집에와,, 아빠가 나를 잊은것 같아..아빠가 지구를 떠난데,, "라고 말할때 저는 무슨 답을 해줘야 할까요? 너무나 안타깝지만 가족인 제가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는것같아 더 답답합니다. 1년을 넘기고도 저 위에 계속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면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아빠로 남편으로 돌아올수 있게 도와주세요~

정몽구회장이 법을 지키게 하는것도,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법대로 정규직이 되는것도 결국은 모두가 힘을 모을 때인거 같습니다. 우리 가족들이 기댈곳은 지금까지처럼 함께 해주신 분들과 보이지않는 곳에서 지원해주셨던 분들입니다. 조금만 더 함께 해주시길 다시 한번 호소합니다.

중식 도시락 올려주신 윤푸르나 집사님 잘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