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대선의 당선인에게 바란다

도시빈민의 삶과 투쟁(6) : 민주주의 확대 위한 우리 투쟁, 새 대통령에 향하지 않기를

2017-05-04     최인기 빈민해방실천연대 집행위원장
▲사진제공 : 빈민해방실천연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이 말은 지난 18대 대통령선거 이후 많이 회자되었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공약을 꼼꼼하게 따져 보지 않아서 초래한 비극적인 사태(박근혜 당선)를 놓고 했던 말이다. 이번 대선도 수많은 공약이 세상을 떠돌고 있다. 세상에 믿을 수 없는 게 정치인의 약속이라니,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다가는 지난 대선처럼 또 뒤통수를 맞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조기 대선으로 전국이 분주하다. 이제 곧 대통령 당선인이 확정될 것이다. 대통령 당선인에게 무작정 바라기 전에 우리는 대선이 끝난 이후에도 아래와 같은 사항을 관철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러니 도시빈민의 요구가 무엇인지 대통령 당선인과 독자들도 알았으면 하는 취지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원주민의 재정착이 가능한 순환식 개발 보장

보통 개발구역은 낙후된 지역이 대부분이다.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영세한 가옥주나 자영업자 및 임차상인 또는 노점상, 비정규직 노동자 등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일단 개발이 확정되면 투기자본들이 모여들어 주변 지역의 전·월세가 상승한다. 가난한 주민들이나 세입자들은 비싼 전·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빚을 내어 이주할 수밖에 없어 원래 생활권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들이 정착하는 곳 역시 개발이 필요한 지역으로 얼마 안 가서 다시 이주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사람들은 점점 삶의 낭떠러지로 내몰리게 된다.

이런 사이클의 원인은 도시 공간이 상품으로 전락하고 건설자본의 이윤을 확보하는 대상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구조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전국철거민연합은 ‘선(先) 대책, 후(後) 철거’의 원칙을 주장한다. 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임시 주거공간과 상가를 보장하여 개발이 끝난 이후 재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순환식 개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개발 후 공급되는 주택과 상가는 해당 지역의 원주민들이 입주가 가능한 규모와 가격이어서 세입자를 포함한 주민들이 재정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의 이런 주장은 제법 오래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 사회는 이런 원칙들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철거민들은 싸우고 있고, 이들의 주장은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집은 ‘사는 것’(Buy)이 아니라 ‘사는 곳’(Live)

부동산 건설경기가 미치는 파급력 때문에 규제정책을 펼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사회를 위해서는 고질적인 주거 불안은 시급히 해결되어야 한다. 집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곳만이 아닌 내일의 노동을 위한 충분한 휴식과 안정이 보장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은 집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2312채를 가지고 있는 현실은 기가 막힌 일이다(2014년 기준). 미성년자인 임대사업자도 전국적으로 817명에 달한다. 주택을 둘러싼 빈익빈부익부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런 다주택 보유자에게 세금을 누진적으로 징수하고 무주택자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하는 것은 상식이요, 기본이다.

▲사진제공 : 빈민해방실천연대

박근혜 정권이 추진했던 임대주택 정책인 ‘뉴스테이’로 서울 용산의 경우 84㎡ 평균 임대료 시세가 200만 원에 육박했다. 끝을 모르고 올라가는 전·월세는 주기적으로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가난한 이들의 가슴에 피멍을 들게 한다. 건설자본이 임대주택마저 돈벌이 수단으로 할 수 있도록 특혜를 준 뉴스테이 정책은 폐기되어야 한다.

‘공공임대주택 확대’ 공약은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이번에야말로 공급과 관리체계를 단일화하고 통합적으로 운영해야 하며, 주거급여의 확대와 함께 공공임대주택을 제대로 보급해야 한다. 무분별한 주택담보대출로 가계부채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분양가상한제 확대와 분양원가 공개 및 후분양제 도입, 그리고 서민들의 전·월세 문제 해결을 위한 임대료상한제 등이 필요하다. 이는 부동산 규제정책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지키는 정책이다.

장기불황 속에 600만을 웃도는 자영업자 문제도 심각하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삶의 터전이 불어나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폐업하는 숫자도 덩달아 많다. 환산보증금 폐지, 기간 제한 없는 계약 갱신, 임대료(월차임) 인상 상한선 제한, 권리금 회수 기회 보장 등을 골자로 한 맘상모(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의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 통과가 시급하다.

노점상 감축정책 중단하고 생계형 노점상 보호하라!

노점상이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 경제상황이 호전되고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과 더불어서 실업 등의 고용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라면 노점상 조직의 집행부인 필자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겠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원인은 소위 ‘노점상 관리대책’의 일환으로 지방자치단체에 상생위원회를 구성하여 노점상을 감축하려는 정책 때문이다. 평범한 시민들은 ‘상생’을 하자는데 왜 반대냐고 의문을 갖겠지만, 지자체가 내세우는 ‘상생’의 취지는 무색해지고 단속하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어 반대할 수밖에 없다.

상생위라는 이름과 절차만 있을 뿐 정작 노점상은 그 안에서 소수에 불과하여 노점상을 감축하는 목적의 조례가 만들어지는데도 아무런 의사 개진을 할 수 없다. 이런 노점상 관리대책이 가동된 지 불과 10여 년도 되지 않아서 서울시내 노점상의 절반이 사라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각 지자체의 노점단속예산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노점상들의 입에서 ‘맞아죽으나 굶어죽으나 매한가지’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진제공 : 빈민해방실천연대

노점상 감축을 정책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경제가 어려울 때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하지 않는가. 세계적으로도 도시의 활력을 되찾고자 벼룩시장이나 풍물시장 등 노점상을 문화적으로 이용한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노점상이란 존재를 인정하고 순기능을 강조하고 역기능을 줄여나가는 정책방향이 필요하다. 도시의 역사와 함께해온 이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면서 시민들과 더불어 살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박근혜가 아무런 생각 없이 추진한 ‘푸드카’도 마찬가지다. 기존 노점상은 단속하면서 푸드카는 또 웬 말인가? 형평성 없이 졸속으로 추진된 푸드카마저 표류하고 있는 형편이다. 현실에 맞게 재검토되어 안정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에 민주노점상전국연합은 ‘노점상보호특별법’ 제정을 제안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식품위생법과 과태료 부과 방식 등 서로 부딪치는 법률은 현실을 반영해 보완하고, 관련된 처벌 조항은 유예하거나 완화하자는 것이다.

경비업법 개정도 필요하다. 노점상이나 철거민에게 경비업법의 가장 큰 문제는 용역회사 직원이나 회사의 불법이 적발되더라도 처벌조건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경비용역의 자격은 물론이거니와 휴대용품과 복장, 그리고 행위에 대한 엄격한 규정을 세워 준수하게 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이들이 저지르는 현장에서의 폭력과 위법행위에 대해 경찰 개입과 제지를 의무화하고 의무를 불이행할 경우 경찰도 처벌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세계 11위 경제대국이고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용역깡패가 국민들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더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먼저인 도시, 민주주의가 삶속에서 넘쳐나는 민주공화국

선거 때마다 수많은 후보가 노점상이나 영세상인들 찾아가서 떡볶이나 어묵을 먹는 기념사진을 찍는 서민 ‘코스프레’를 하다가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탄압을 한다. 그들에게 도시빈민의 삶이란 그저 자신의 얼굴이 나오는 신문지면의 배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 때는 웃는 얼굴이다가 선거가 끝나고 난 이후에 화난 얼굴이 되는 거짓말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도시에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인정해주길 바란다.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노점상, 철거민을 비롯한 도시빈민들을 무작정 배제하거나 외면하기 전에 그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들어주길 바란다. 도시빈민도 이 나라의 구성원이고 헌법적 기본권이 보장된 국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상인 도시빈민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미루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접근과 해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지난해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광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항쟁은 박근혜를 구속시켰다.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질서를 무너뜨린 박근혜가 구속되었지만 삶의 현장 속 민주주의는 아직도 요원하다. 우리는 광장의 민주주의를 우리의 삶과 사회 곳곳의 민주주의로 확대해 나갈 것이다.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확대하기 위한 우리의 투쟁이 새롭게 당선된 대통령에게 향하지 않기를 간절히, 진심으로 바란다.